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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기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붓다의 설법은 모두 해탈이라는 목적으로 귀결됩니다.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풀어주는 것이지요. 《반야심경》뿐 아니라 불교 경전이나 설법의 내용 대부분은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고, 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밝혀주며,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 전체가 담겨 있는 것이 사성제입니다.
붓다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고통의 순환 고리에서 돌고 돌아 고통을 무수히 반복합니다. 이 돌고 도는 과정을 윤회輪廻라 하지요. 윤회는 원래 불교의 사상이 아니라 힌두교의 사상이라고도 하는데, 그보다도 당시 인도의 보편적인 사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이 개념을 받아들여 쉽게 교리화할 수 있었지요.
윤회에는 ‘계속되는 흐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윤회전생輪廻轉生이나 생사유전生死流轉이라고도 합니다. 번뇌와 업業을 쌓느라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끝없는 이 생사의 순환을 끊는 것이 깨달음이며 열반입니다. 해탈은 바로 윤회의 순환을 벗어나는 것이죠.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업을 쌓기 때문입니다. 업은 주로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탐진치 때문에 쌓입니다. 그러면, 업을 쌓게 하는 탐진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바로 무명無明, 다시 말해 무지無知입니다. 모르니까 업을 쌓는다는 말이지요. 가짜를 진실로 알기 때문에 업을 쌓고, 그 업의 결과로 윤회의 고리를 돌고 돌아 해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탈하려면 가짜를 진실로 아는 무지에서 벗어나, 세계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세계의 진실을 진실로 아는 것, 이것이 해탈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업이 계속 쌓이고, 결국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진실한 모습, 실제 모습을 실상實相이라고 합니다. 실상을 알면 해탈할 수 있습니다. 실상을 아는 것이 해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 최진석, 『건너가는 자』, 쌤앤파커스2024, 62~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