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역 신문,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가 실리는 곳
진안신문
80대 어르신도, 발달장애 청소년도
기자가 될 수 있다
전라북도에 있는 대다수 지역 일간지는 전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역 일간지에서는 주로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등의 소식을 보도한다.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처럼 전라북도 안에서도 인구가 적은 지역은 취재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 지역 안에서도 소외되어 취재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지역의 이중 소외 현상’이라고 한다.
지역 안에 더 소외되는 지역이 있는 것처럼, 지역민들 가운데도 목소리를 듣기가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진안의 풀뿌리 지역 주간지 〈진안신문〉은 공론장에서 배제되어 있던 사람들을 공론장 안으로 끌고 오기 위해 직접 나선 지역 신문이다. 〈진안신문〉의 류영우 편집국장은 글을 배울 기회가 없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지역의 노년 여성들,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직접 글쓰기 교육을 하고 있다.
류 국장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진안신문〉의 지면에 고정적으로 싣는다. 보통의 기자들은 취재원이 글을 모르거나 소통이 어려운 사람인 경우 대개 당사자가 아닌 그의 대리인과 인터뷰를 한다. 하지만 〈진안신문〉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내고 있다.
글 배울 기회 없던 노년 여성, 목소리를 찾다
처음 〈진안신문〉을 취재해야 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22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주관하는 지역신문컨퍼런스에서 지역의 노년 여성들,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는 류영우 국장의 발표를 들었다. 지역신문컨퍼런스는 매년 전국의 지역 언론인들이 모여 각자 의미 있었던 보도와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다. 컨퍼런스에서 류 국장의 발표를 듣고는 그 글쓰기 수업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 신문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편집국장이 매주 글쓰기 수업을 한다니 그 자체로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학생들의 글은 교실 밖으로 나와 〈진안신문〉 지면에도 실리고 있었다. 수업을 얼마나 주기적으로 하는지, 류영우 국장이 하는 수업은 몇 개나 되는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류영우라는 사람의 생각이 알고 싶었고, 그가 이끌고 있는 〈진안신문〉에 대한 궁금증도 덩달아 커졌다.
그렇게 나는 진안으로 향했다. 진안에 도착한 직후 첫 일정은 류 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타 지역 신문과의 총선 연대보도 기획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한 류 국장은 내게 서두르라고 손짓했다. 진안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동향면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할머니들의 글쓰기 수업이 있다. 동향면은 류 국장이 2009년부터 줄곧 수업을 해온 곳으로, 진안 시내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차로 30분 거리였다. 류 국장은 15년 넘게 꾸준히 수업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차로 이동하는 30분 동안 그에게 글쓰기 수업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이것저것 물었다.
류 국장이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것은 충청북도 옥천군에 위치한 〈옥천신문〉에 근무하던 2007년부터이니 어느덧 햇수로 18년째다. 이후 〈진안신문〉으로 옮겨 온 그는 동향면 할머니들과 한글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할 무렵 30대였던 류 국장은 50대가, 60대였던 학생들은 80대가 되었다. 그간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병원에 간 학생도 있고, 아파서 도시에 사는 자녀 집에 가서 생활하는 학생도 있다. 현재 수요일 동향면 수업의 학생 수는 다섯 명, 화요일 마령면 수업의 학생 수는 일곱 명 정도라고 한다.
류 국장은 〈오마이뉴스〉의 ‘시민 기자 제도’를 보며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는 2000년 창간 당시부터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시민 개개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뉴스로 싣는 시민 기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본 류 국장은 지역에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말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나 어린이들은 공론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할머니, 청소년, 결혼 이주 여성 등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평생 글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노년 여성들이 한글을 배우고, 〈진안신문〉은 이들이 쓴 글을 그대로 신문에 싣는다. 글을 몰라 신문을 읽을 수조차 없었던 노인들이 지역 신문의 기자가 된 것이다. 이들의 글은 매주 〈진안신문〉 7명의 ‘어울림’ 코너에 실린다. 처음에는 글을 몰라 창피하다며 한두 줄 쓰기도 힘들어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앉은 자리에서 A4 용지 한 장을 거뜬하게 써낸다.
류 국장에게는 세 가지 수업 철칙이 있다. ‘맞춤법 신경 쓰지 말고 자신 있게 쓰자’,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전하자’, ‘내가 쓰는 글이 지역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나 혼자 힘들면 되지 괜히 안 좋은 얘기를 쓰면 지역 사람들이 불편해진다며 걱정하던 할머니들에게 류 국장은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다 같이 힘들게 된다, 안 좋은 걸 고쳐서 개선이 되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이야기해줬다. 평생 공론장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런 변화를 이끌었는데도 글쓰기 수업에 새로 들어오는 학생은 별로 없다. 글 모르는 걸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30분을 달려 어느새 차가 동향면에 들어설 무렵 류 국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글 모르는 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알게 된 게 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동향 가는 버스를 타시는 분들 중에서 버스에 동향면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이거 동향면 가는 버스 맞지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은 거의 다 글을 모르는 분들이에요. 그 창피함만 깨고 뛰어넘으면 농협 가서 자기가 직접 돈도 찾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도움 되는 점이 많은데 같이 공부하러 가자고 해도 그렇게들 안 오시네.”
지역의 변화를 이끈 할머니 기자들
동향면에 들어서자마자 류 국장은 버스 정류장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할머니 두 분을 차에 태웠다. 87세 정이월 어르신과 81세 권정이 어르신이다.
“점심은 드셨어요?”
“쌔가 빠지게 바빠서 점심도 못 먹었다.”
“숙제하셨어요?”
“기사만 쓰라더니 시키는 게 많다.”
권정이 어르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한다. 동향면의 교회 옆 작은 공간에는 할머니들의 글쓰기 교실이 마련돼 있다. 할머니들이 걸어서 오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어 류 국장이 할머니들을 직접 차에 태워서 온다.
이번 주 숙제는 ‘올해 반드시 이뤄야 할 것 쓰기’. 할머니들은 저마다 공책 한 장씩을 꽉 채워 왔다. 서울에서 온 젊은 기자인 나를 반기는 할머니들 가운데 최한순 어르신이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숙제로 써 온 글을 읽어보라며 내게 보여주었다. 봉곡박물관 방문기였다.
옛날 태레비전도 있고 풍구도 있고 쟁기도 있고…… 한심하지요. 내가 쓰던 도구통도 있고 도구때도 있을마 한심하지요. …… 거기다 쌀 빠시서 떡도 해 먹고 거기다 벼리찌서 밥도 해 먹고 살았다.
자꾸만 반복되는 “한심하지요”라는 문장이 눈에 밟힌다. 왜 한심하다고 쓰셨는지 묻자 어르신은 “내가 평소에 쓰던 물건들인데…… 그걸 몰랐으니 한심하지”라고 답한다. 최한순 어르신은 이날 간식으로 준비한 시루떡 두 접시 중 한 접시 반을 내 앞에 놓고 “많이 먹으라” 하며 내 입에 떡을 넣어주었다. 정이월 어르신은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2024년 새해가 밝았는데 왜 내 몸은 더 아플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인 것 같아요. ……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신문에 글도 냈고 시 낭송도 해보고 감사합니다. 내 마음엔 더 많이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할머니들의 글은 매주 지면과 온라인에 실린다. 85세 배덕임 어르신의 글은 팔순이 되던 해에 자녀들이 모아서 책으로 출간했다. 권정이 어르신의 아들은 〈진안신문〉 기사에 댓글을 단다. 한 주라도 기사가 안 올라오면 어디가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전화가 온다. 처음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을 때 류 국장에게 ‘경남 진주’를 종이에 써달라던 한 할머니는 글씨를 보곤 한참을 울었다. 그는 “글씨만 알았어도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가는데, 저 글씨를 몰라 이 나이가 되도록 친정에 못 갔다”라며 울었다. 노년 여성들에게는 글을 몰라 한恨이 된 이야기가 많고도 많았다.
그렇게 목소리를 낸 할머니들이 진안을 바꾸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당시 74세였던 정이월 어르신은 여름날 버스를 놓친 이야기를 글로 써서 냈다. 어르신이 쓴 글은 2011년 8월 29일 〈진안신문〉에 「사람 태우지 않는 버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진안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동향면에는 버스가 한쪽에만 선다. 맞은편 승차장에 버스가 온 것을 본 정이월 어르신이 뛰어 나갔지만 버스는 그냥 지나가버렸다. 대도시에에는 5분에 한 대씩 버스가 오지만, 동향면에서는 몇 시간 만에 겨우 오는 버스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을 바드라는 연락을 바닸다. …… 아침식사도 않고 20일 토요일날 아침 7시 50분 버스로 동향면 학선리 을곡마을 앞에 승강장에서 버스가 오기에, 손을 들고 흔들며 소리쳤다. 버스는 그양 지나간다.
김생년 할아버지도 소리쳤다. 봉곡 이창순이가 올라오다가 할아버지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버스를 잡아 줄라고 손을 들고 스라고 해도 안 스고 가버렸다.
버스가 왜 사람을 안 태우고 가? 나뿐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래서 다음 11시 버스로 가서 검진을 받는데, 늙은이는 허기 나서 죽는 줄 알았다. 늙은이라고 이렇게 골탕 주어도 되는 건가?
너무하다. 그 기사도 엄마가 있을 것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자기가 잘했는지, 잘못했는가 생각해보고, 뉘우치고 반성하라고 이 글을 올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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