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1
최근 뇌과학이 유행하면서 책을 읽을 때 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책을 읽으면 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되고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재구성된다고 하는데, 막연히 “책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 거야”,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 시기에 책을 읽으면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될 거야”라고 했던 말들에 대한 근거가 정교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박정희 시절이었는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학교 교문 앞에서 손을 들고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나는 매일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외우면 그만인데, 그게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았다. 그 때부터 나는 소문난 문제아로 찍혔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이 학교 자료실 열쇠를 나에게 주셨다. 이유는 모른다. 그렇게 처음 자료실에 갔을 때, 그림책과 동화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유독 문제아였던 나에게 학교에서 내린 거의 마지막 조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생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컨대, 나는 지금도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이 매우 두렵다. 두꺼운 책은 지금도 가슴을 내리누르고, 어떤 핑계를 대고라도 그 순간을 피하고 싶다. 책? 사실 안 보고 싶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기는 한다. 좋아서 읽거나 즐거워서 읽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내가 보는 책 중에는 무지 어려운 책들이 많고, 흔히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전화번호부만 한 책들이 많다. 책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아직도 책이 무섭다. 평생을 책을 읽으며 살았는데, 아직도 책읽기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책과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것이 설탕이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원래 단 것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곤충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많은 열량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 본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모든 동물이 그런 것은 아니다. 육식 야생 동물이었다가 사람과 함께 살게 된 고양이는 대표적으로 단맛을 인지하지 못한다. 단맛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핵심 유전자 중 하나인 T1R2가 고양이를 비롯한 사자나 호랑이에게는 없다고 한다. T1R1과 T1R3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면 감칠맛을 느끼게 되고, T1R2와 T1R3가 함께 작용해야 비로소 단맛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단맛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책은 인간 본능에 진화적으로 포함되기에는 너무 늦게 역사에 등장했다. 그래서 도파민을 비롯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보상 체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내가 여전히 책을 무서워하고, 책 첫 장을 넘길 때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매번 큰맘 먹고 도전하게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만화책조차 읽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노안 때문이다. 〈은하영웅전설〉이 마지막으로 읽은 만화책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통해서 뭔가 얻어내는 능력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며 억지로 갖춰야 하는,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능력이고 개별적인 노력의 결과다. 그냥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 그런 건 없다. 나는 평생 책을 보고, 결국 책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이 나를 설레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피하고 싶어서 매번 꾀를 낸다.
인간은 각자 태어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스스로 독서 능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에서 도서관이 생겨난 이유다. 농노에서 시민으로, 경제 주체가 하는 역할이 바뀌었다.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필요한 책을 원하는 만큼 사줄 수는 없다. 필라델피아에서 최초로 생겨난 작은 도서관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결국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도서관의 효능감을 경험한 신대륙 전역에 도서관이 쫙 퍼져나갔다.
2
도서관 경제를 다루기에 앞서 도서관의 역사에 대해 몇 년간 살펴보았다. 특히 공공 도서관이 왜 미국에서 먼저 생겨났는지, 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대서양 너머 신생국에서 시작된 공공 도서관 모델을 채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도서관의 역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한 번 톺아본 뒤 한국의 상황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조선총독부 초기에 실시한 조선의 무無도서관 정책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에서 뭘 더 가져가기 위해 조선에 이것저것 만들어줬고, 그게 훗날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그게 맞고,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잡히자마자 죽어버리는 멸치를 삶아서 보관하는 방식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는 멸치를 그냥 건조시켰다. 도서관에 관해서는 그런 일반적인 일본 유래설이 잘 안 맞는다. 철도와 항만 등 일본이 적극적으로 조선에 건설한 시설들과 달리, 총독부는 도서관만큼은 아예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 시절에는 사실 일본도 도서관이 뭔지 제대로 몰랐다. 일본 또한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만든 나라가 아니라, “이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껍데기만 갖다 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일본의 도서관 정책이 비로소 본궤도에 올라가는 것은 패망 후 미군정 시절이다.
한국에 도서관 붐이 분 것은 6·25 때였다. 국회도서관과 건대 등 대학 도서관 그리고 고등학교에 일었던 학교 도서관 붐이 모두 정확히는 1·4 후퇴 이후에 생겨났다. 이때 생겨난 사회적 힘이 군사정권과 만나면서 진짜로 도서관을 대규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 보수가 진정으로 한국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정말 열심히 도서관을 만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도서관들을 살펴보면서 처음에 나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 도서관 정책에 대해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미세하게 있을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는 그런 차이가 별로 없었다. 무시한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전두환도 도서관만큼은 열심히 지었다. 도서관을 진짜로 싫어했던 대통령은 김영삼과 윤석열, 두 사람이다. 김영삼은 도서관만 싫어했던 것이 아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프린터로 출력된 보고서조차 읽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김영삼은 문화부에 ‘도서관과’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박물관과’와 통합시켰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주재하도록 되어 있는 국가도서관 위원회를 대통령이 하지 않는 일로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걸 도와줄 국회의원을 충분히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대통령령을 바꾸어서, 도서관이 책을 덜 사게 만들었다. 도서관이 껍데기만 남고, 내부는 텅 비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꾼 것이다. 생각보다 꼼꼼했다.
이렇게 한국 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본 뒤, 나는 감동을 느꼈다. 우리의 도서관은 아직 어수룩한 데가 있고, 건물만 있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독립한 수많은 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하나의 사이클을 도는 자체적인 도서관 스토리를 가진 나라는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을 ‘위대한 도서관 서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에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정말 많다. 지금 있는 도서관 한 곳 한 곳마다 눈물 나는 사연을 한 트럭씩 가지고 있다. 도서관이 만들어질 때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후에 몇 번이나 문을 닫을 위기를 스스로 넘기면서 버텨내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종로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은 경찰이 몇 번씩이나 그 건물을 가져가려고 했었다. 그곳에 있던 ‘비밀경찰’들이 나중에 양지로 나온 게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박근혜는 이 도서관을 아예 없애려 했지만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1930년 김인정 여사가 평양에 만든 인정도서관은, 감동으로만 보면 한국 도서관 역사에서 단연 최고다. 일제는 이곳을 눈엣가시로 생각해서 갖은 훼방을 놓았고, 절대 여기에 지원금이 가지 않도록 했다. 소련이 진주한 후에는 이 도서관 건물을 소련 문화부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남한에서는 북한에 있었던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했고, 북한에서는 나중에 월남한 반동분자의 일이라며 외면해 결국 묻혀버린 역사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김인정 여사에게 건국 훈장 같은 서훈을 추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사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에도 위대한 도서관 서사가 생겨났다. 일본한테 뭔가 배운 것을 한국식으로 응용한, 그런 시시한 역사가 아니다. 2차 경제발전5개년계획이 시행된 바로 다음 해에 공공도서관설치 5개년 계획이 같이 움직였다. 한국 경제를 일구는 과정에서 한국 도서관이 했던 역할은 지금껏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분명 도서관 서사는 경제 발전과 함께 움직여 왔다.
3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현대식으로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은, 시민들이 도서관을 만들자고 하고 돈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중에는 지방 정부가 돈을 대고, 결정적으로는 강철왕 카네기 같은 사람들이 대규모 기부를 하게 된다. 그런 다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도서관을 경영하는 것으로 한 사이클이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도서관 시민들이 생겨났다. 이 도서관 시민이 미국 도서관의 진짜 힘이다. 미국 도서관이 세계 최고인 이유다.
우리나라는 순서가 조금 달랐다. 건국 초기에 생겨난 한 줌의 사서들이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시민 단계를 생략하고 도서관이 먼저 생겼다. 도시에 대규모 공공 도서관이 들어서는 동안, 농촌 지역 등 도서관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문고 운동이 일어났다. 소설 〈상록수〉로 널리 알려진 야학과 같은 민중 흐름이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 시민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한국에서 시민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이다. 그러다 보니 위대한 도서관 서사가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시민의 형성은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그래도 아주 없지는 않다. 도서관마다 독서 동아리를 비롯해서 시민들이 만든 모임이 하나씩 늘어가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도서관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과정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순서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도서관 서사도 비로소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도서관이 엄청나게 중요한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제 어떤 단체장이 와서 흔들더라도 바로 문을 닫지 않고 얼마라도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나니,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말은 인도의 도서관학자 랑가나단의 도서관 법칙 중 하나인 ‘유기체적 도서관’에서 나온 표현이다. 처음 공공 도서관이 출발할 때, 한국 도서관은 군인의 얼굴을 가졌었다. 조선총독부도 군인들의 기관이고, 유신 시대도 군인들이 만든 것이다. 총독부 시절에는 한국말로 된 책을 못 읽게 했고, 군인들은 금서를 못 읽게 했다. 정말로 군인 얼굴을 한 도서관은 일본에 있었다. 일본의 도서관에서는 잠이 들면 수위가 와서 깨웠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잠자는 것 정도는 봐 줬다. 군인의 얼굴에서 이후 공무원의 얼굴로 한국 도서관의 얼굴이 한 번 바뀌었다. 지금은 바리스타의 얼굴로 바뀌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요즘 시대에는 카페가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장 군인스럽던 일본의 도서관에조차 카페가 생겨날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한국 도서관의 위대한 서사가 한 번 더 역할을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이 책을 마무리할 때 들었다. 미국의 많은 도서관이 코로나 때 돌봄 기능을 톡톡히 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일수록 주민들이 모일 수 있고 공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데, 도서관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은 도서관 시민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겠지만 다행히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나름대로 도서관 시민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서관의 위대한 서사가 한발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따뜻한 자본주의’로 한국 자본주의가 전환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일 것이다. 지금의 질문이 ‘카페와 도서관’이라면 다음 단계의 질문은 ‘돌봄과 도서관’일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거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히키코모리 파트를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히키코모리 파트는 왠지 다른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마지막 순간에 빼려고 했었다. 사서들과 상의를 해 보니, 그래도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도서관 경제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나니 잘난 사람들의 도서관, 똑똑한 사람들의 도서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도서관에서, ‘따뜻한 자본주의’를 열어 나간 도서관, 그런 흐름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책을 정말 싫어하던 대통령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도서관과 함께 따뜻한 자본주의를 펼쳐나가는 시대가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런 마음을 모아서 한마디 외친다. 힘내라, 도서관!
지겹도록 물어보는 수많은 얘기에 언제나 꼼꼼하게 대답해 주신 많은 사서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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