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 줌의 재
1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재로 변해 항아리에 담겼다. 로스가 죽었다. 케니와 심, 그리고 나는 이제 한 줌 재가 된 로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은 전적으로 심의 아이디어이다. 케니와 나는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이 무렵에는 10시 반이 넘어야 어두워진다. 우리는 11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역사 선생 집 앞마당의 바싹 마른 전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앉아 속닥거렸다. 나뭇가지들이 몸을 찔러대고, 뾰족한 침엽수 잎이 머리에 달라붙거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쭈그린 채 앉아 있어도, 나무 그늘은 우리를 가려줄 만큼 크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검은색 장례식 복장이었고, 그건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케니가 계속 꿈틀거리면서 나와 심을 밀어내는 통에 가로등 불빛에 우리 그림자 일부가 어룽어룽 비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매의 눈으로 우리가 있는 곳을 보았을 법도 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차 한 대가 지나갔고, 우리는 고개를 처박았다. 내가 진땀이 난 것은 따뜻한 6월의 밤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심이 소곤거렸다.
“이건 로스를 위한 일이야. 잊지 말라고. 이제 와서 흩어지면 안 돼. 다들 동의했잖아. 너도 동의했지, 케니. 그런 적 없다고 하기만 해봐.”
케니는 긍정이라고도, 부정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문에다 쪽지 같은 것만 붙여놓고 오면 안 될까? 농담 아닌데. 만약 우리가 붙잡히기라도 하면…….”
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이, 씨! 야, 케니! 카드에다 시라도 써놓자는 거야? 하트 뿅뿅에다 모자 쓴 토끼들 그려진 카드를 현관문에 붙이자고?”
심은 고개를 저으며, 손에 쥐고 있던 현관 스프레이 페인트의 뚜껑을 땄다.
“안 돼. 크게 써야 돼.”
케니는 입을 열어 반박하려고 했지만, 내가 팔을 쿡쿡 찌르며 입을 막았다.
파울러 선생의 집은 브레러턴 가 구석에 있는, 작고 볼품없는 정원이 딸린 테라스식 주택이었다. 해안가를 향해 늘어선 술집과 클럽 들까지 걸어서 갈 만한 번잡한 길거리였다. 금요일 밤에 클리소프스 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 곳이라고는 술집과 클럽뿐이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인도를 걸어 다니는 여자애들이 킥킥거리며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전나무 아래에서 몸을 좀 더 구부렸고, 잎사귀가 또다시 우수수 쏟아졌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자애 가운데 하나가 발이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제 거의 다 왔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여자애들이 결정 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땅바닥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는 한, 그 애들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기를 바라면서.
결국 여자애들이 총총 사라진 뒤, 내가 소곤거렸다.
“하든 안 하든 상관없지만, 여기서 하다 마네 하면서 밤을 샐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내 목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상관없었다. 신경질적이기보다는 날이 서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들키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그보다 지금 하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로스를 위해서 말이다. 파울러 선생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두 대, 석 대, 자동차가 지나갔다.
“난 안 할래. 하지 말자.”
케니가 말했다.
“난 할 거야.”
심이 말했다.
“어, 그렇지. 네 아이디어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야지.”
케니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심은 나를 바라보았다.
“블레이크, 너는?”
“너는 내가 뭐라고 하든 할 거잖아.”
심이 씩 웃었다.
“맞아.”
케니는 용기가 났는지, 낮게 늘어진 나뭇가지 아래로 고개를 쑥 내밀고 파울러 선생 집의 어두운 창문을 바라보았다.
“안에 있는 것 같아?”
심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불이 안 켜져 있어.”
내가 말했다. 바로 그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거실 커튼 뒤에서 불이 켜졌다. 나는 고개를 수그리며 욕을 내뱉었다.
“있어! 안에 있다고!”
케니가 싹 싹거렸다. 케니는 나와 심을 탁 트인 곳으로 밀어내면서, 허둥지둥 전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나도 팔꿈치로 밀치며 다시 숨어들었다.
우리는 그 커튼 뒤에서 비쳐오는 불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파울러 선생은 거기서 뭘 하는 거지? 티브이 보나? 책을 읽나? 피자를 사와서 먹고 있나? 우리의 절친이 죽었는데 어떻게 여전히 저럴 수 있지?
로스는 차에 치여 자전거에서 굴러떨어졌다. 장례식에서 목사는 “사고”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로는 충분치 않았다. 사고라는 말은 거대하지도, 강력하지도 않다. 로스의 죽음은 그 말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로스는 찻잔을 엎은 것도 아니고,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니다. 인생이 처참하게 박살난 것이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어 하나가 생겨나야 할 것만 같았다.
역사 선생이 집에 있으면 자신의 계획이 위험해지는데도 심은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다. 하긴, 여태껏 심이 무언가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다. 심은 화를 내는 쪽이 더 편해 보였다. 화를 낼 때면 심의 짙은 갈색 눈동자는 포켓볼 공처럼 단단해졌다. 그리고 항상 짧은 머리였지만 어제는 1밀리미터 길이로 짧게 깎았다. 드러난 두피는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다. 장례식에서 다 함께 일어나는 순간, 심은 해안가에 늘어선 시끄러운 클럽들을 지키는 조폭 경비원 이 열여섯 살이라면 저렇지 않았을까 싶어 보였다.
“변장할 걸 갖고 왔어야 하는데.”
케니가 구시렁거리자 심은 눈알을 부라렸다.
케니는 심을 무시하고 말했다.
“농담 아닌데. 귀를 덮는 털모자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잖아. 너희 둘은 괜찮아.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되니까. 하지만 나는 너무 명백하게 나잖아.”
나는 케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학년에서 자기가 가장 작고 금발이라는 얘긴가. 케니는 복슬복슬 대걸레 같은 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의 동안이어서 열여섯 살이 아니라 열세 살처럼 보였다. 케니는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있는 걸 질색한다. 케니는 다리 사이에서 알짱거리며 발목을 핥고 계속 왈왈 짖어대는 강아지 같은 아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 셋의 짓인 건 세상이 다 알 거야.”
내 말에 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왜 우리가 숨어야 하는지도 난 잘 모르겠어.”
심은 그 집과 거리에서 다 보이게 벌떡 일어서더니 어깨와 머리에 쩍쩍 달라붙은 나뭇잎을 털어냈다.
케니는 겁에 질렸다.
“으악, 심. 제발 앉아, 이 멍청아!”
심은 옷깃을 높이 올려 얼굴을 감쌌다.
“내가 뛰라고 하든 뛰기나 해.”
케니는 출발선에서 뛰는 데는 재빨랐다.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네가 먼저 출발하는 게 좋을 거야.”
케니가 내게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순간 나는 케니를 한 대 쳤다.
나는 늘 내 덩치, 몸무게에 민감했다. 누구든 나보고 뚱뚱하다고 하면 싸우곤 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이 있었다. 비대한, 통통한, 굵직한……. 나는 내가 좀 무거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케니도 나에게 악의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게 심술궂은 애는 아니니까. 단지, 너무 정직해서 가끔 주먹을 부를 뿐이다.
택시가 지나가자 심은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그 택시가 저 멀리 사라져갈 때까지 기다렸다.
“절대 나 두고 가지 마.”
심이 경고했다.
그러고 나서 심은 현관문을 향해 잔디밭을 내달렸다. 심은 마치 총잡이처럼 스프레이 페인트를 꺼내들었다. 페인트를 따고 쉭 쉭 뿌려대는 소리가 엄첨 크게 들렸다. 케니와 나는 심을 보다가, 창문을 보다가, 거리를 보다가, 또다시 창문을 주시했다. 파울러 선생이 갑자기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속으로 빌고 또 빌면서.
우리 학교에는 상냥하고 품위 있는 선생님이 몇 있다. 교사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고, 지금 당장이라도, 그리고 나중에 수업에서도 언제든 하하 웃을 수 있는 사람도 두 명 있다. 파울러 선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선생으로서는 젖비린내 나는 나이이지만, 뒷머리는 벌써 환하게 벗겨져 빛나고, 볼록 나온 올챙이 배는 몸의 다른 부분보다 몇 초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 집이 파울러 선생의 집이란 걸 알고 있었다. 심이 등굣길에 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파울러 선생한테 역사 수업을 들었던 심은 옛날 옛적에는 “안녕하세요.” “굿모닝.” 같은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한 번 듣는 척하면서 전혀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자 곧 그만두었다. 파울러 선생은 학생들을 수업 시간 이외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기회가 오자마자 케니와 내가 역사 수업을 수강 포기한 것은 그 사람 때문이었다. 로스와 심은 그렇게까지 재빨리 대처를 못 했다. 지난 2주 동안 그 사람은 로스의 인생 막바지를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렇게 되돌려준다. 심이 하고 싶은 대로. 복수다. 단순하고 명백한 복수.
엄청 오래 걸린 것 같았지만, 기껏해야 30초 정도였을 것이다. 심은 뒤돌아서 정원을 가로질렀고 브레러턴 가 쪽으로 전나무 사이를 헤치며 나섰다. 케니와 나는 심을 따라 죽어라고 뛰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달리기 전에, 역사 선생네 집 현관문에 심이 남겨 놓은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날카롭게, 거칠게 스프레이로 쓴 검은색 글자가 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로스 펠의 저주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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