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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서교사
정태영
학교도서관의 진흥을 통하여 공교육을 내실화하고 지역사회 평생교육 발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도서관법」 제2조
나쁜 도서관은 장서를 만들고
“도서관이 작아요.”
사진작가와 나를 앞세워 도서관으로 향하며 정태영은 은근한 걱정을 한다. 하지만 막상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간 공간은 감탄을 자아낸다.
“너무 예쁜데요?”
오래전 내가 졸업한 학교의 도서관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책 읽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자습실로 쓰였다.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도서관은 알록달록한 키 낮은 소파와 그에 맞춰 배치된 서가를 갖추고 있다. 잘 정돈된 공간에 밝은 색감이 더해져 아늑하다. 어쩐지 그의 귀여운 멜빵바지와 어울리는 도서관이다.
“예쁘다고 해 주시니 좋네요. 내 자식 안 예쁘다고 말하는 그래도, 사실 속으론 예쁘다고 생각하잖아요. 저한테 도서관이 그렇거든요.” 자식 같은 도서관이라니. 정태영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처음 이 고등학교로 왔을 때만 하더라도 도서관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기 와서 책만 1만 8,000권을 버렸어요.”
첫 발령지였다. 사서교사로 처음 만난 학교 도서관이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먼저 쌓인 수만 권의 도서였다. 도서관에는 오랫동안 사서가 없었다. 사서가 없으니 도서관을 찾는 학생도 없었다.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에 사서교사를 강력하게 요청해서 제가 이 학교로 발령받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고, 독서 프로그램도 내실 있게 갖추고 싶다는 학교의 바람이 컸어요.”
오랜만에 학교에 온 사서교사를 모두가 환영했지만, 정태영은 막막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도서관은 미개척지 같았다. 씨앗 하나 들어갈 싹 틔울 자리 없이 책들로 빽빽했다.
“1982년에 개교한 학교예요. 학교가 세워진 뒤 책이 채워지기만 하고 버려진 적은 없는 거죠.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책들이더라고요. 한글이랑 한자가 섞여 있고, 뒷면을 보면 바코드가 아니라 도서 대출 종이 카드가 있는 책들.”
3만여 권의 책을 추리고 분류했다. 버릴 책을 교실 밖에 내놓았더니 복도를 지나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도서관 내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놀러 오듯 와서 여기 소파에 누웠다 가도 돼요.”
자신도 연두색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 뒤편 책장에 그가 엄선했다는 ‘사서 선생님이 읽은 만화책’ 코너가 보인다. 옆에는 고양이들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도 놓여 있다. 한 명이라도 더 도서관에 오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덕분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제법 늘었다. 점심시간이면 하나둘 모여들어 도서관이 시끌벅적하다. 여기서는 조용히 할 이유도,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그는 학생들이 애용한다는 ‘셀카 존’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책등 색이 유달리 예쁘게 배열된 책장이다. 서가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라니. 아무래도 책보다는 영상이, 도서관보다는 핸드폰 속 세상이 더 가까운 요즘 학생들이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그의 일이다.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편했으면 좋겠어요.”
이쯤에서 준비해 간 질문을 꺼내 든다. 사서교사라면 수십 번은 받았을 질문이다.
“사서 선생님의 꿈이 무엇이었나요?”
좋은 도서관은 서비스를 만들고
“중학생 때부터 꿈이었어요. 그때 사회 선생님이 새로 도서관 담당이 되신 거예요. 도서반을 만들어서 우리더러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자꾸 권하니까 ‘한번 해 보자’ 하고 갔어요. 책 읽고 토론하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그러면서 ‘도서관은 되게 좋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다니던 학교는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다. 볼만한 것도 놀 만한 것도 없었다. 술과 담배로 소소한 일탈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는 큰 재미를 못 느꼈다. 그러던 그가 도서관을 출입하면서 즐거움을 발견했다.
“도서관을 하면서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전까진 나의 길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여가용으로,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좋아지고 이 공간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게 기쁘면서 책을 읽는 방식도 달라졌죠.”
책에서 미래를 찾는 일이 익숙해질 즈음, 사서교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꿈이 생겼다.
도서관이 이토록 정답게 꾸며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의 권유로 얼떨결에 독서반에 합류했던 학생이 10년 뒤 직접 도서반을 만들고, 그때의 자신처럼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 갈 사람들을 모은다.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아오도록 이런저런 행사를 많이 하거든요. 도서관 학생들은 그 행사를 같이 기획하고, 진행을 돕는 역할을 해요. 또 도서관 당번이 있어요. 그 친구들은 다른 학생들이 왔을 때 책을 찾아 주기도 하고 추천도 하고 그래요.”
작년까지 도서반원들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활동했었다고 한다. 이때의 ‘무엇’은 단지 찾고 있는 책이 어디 있냐는 질문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도서관은 말 그대로 무엇이건 물을 수 있는 공간이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면 무엇을 물어야 할지 떠올리느라 대화가 잠시 멈춘다.
“사서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자원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사서라는 인물 그 자체가 정보 자원이라니. 생소한 이야기다. 정태영의 설명이 이어진다. 도서관은 신뢰할 만한 정보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고,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사서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예비 사서들은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서지학은 물론 문헌문화사, 정보자료조직론, 기록관리학 등을 두루 배운다. 믿을 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선별하고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는 법을 익혔다.
“사서라면 누구나 책, 기사, 인터넷 검색 정보 등을 종합하고 추려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이라 고 생각해요.” 정보의 흐름을 꿰고 있는 사서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 자원이다. 정태영은 사서인 자신을 도서관에 잘 배치해 둔다.
“삶을 꾸려 나간다는 건 배우는 일인데,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막막할 때가 있잖아요. 뭔가를 배우고자 하거나 인생에 있어 알고자 하는 부분이 생길 때, 그럴 때 찾아와 물어보면 그에 대한 균형 잡힌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저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자신에게 다가와 물어볼 수 있도록 스스로가 편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제가 하도 ‘뭐든 물어보라’고 홍보해서 그런가, 요즘은 엄청나게 물어봐요. 가벼운 고민부터 무거운 상담까지. 학생들이 저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게 제 자부심이기도 해요.”
도서관 사서 업무를 서가 정돈과 책에 바코드를 붙이는 일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동료 선생님들도 사서가 도서관에 있을 땐 책을 보거나 한가롭게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나도 여기 와서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서 업무 분장에는 ‘독서’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서의 일은 수서收書, 책을 구하고 분류 하는 일와 도서 배열인데, 이마저 책장에 새 책을 꽂아 넣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사서는 아마도 세상에서 서평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일 걸요?”
우리나라에서 1년에 출간되는 신간은 대략 6만 종 정도다. 매달 5,000종의 책이 나오는 셈이다.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도서관에 들일 수는 없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을 찾는다. 도서관 사서는 책을 읽고 소개 글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을 찾아본다. 한가롭게 책이나 보는 직업이라는 세간의 편견과 다르게, 책 하나를 선정하는 데도 꼼꼼한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보는 건, 교육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책인 지예요. 그렇다면 앞서 알아야 하는 건 주 이용자들의 욕구와 정서죠. 학교가 설정한 교육 목적만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지닌 상황과 목표를 보는 거예요.”
그러니 사서는 많이 읽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많이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전이나 전기傳記 책이 있다고 해 볼게요. 그 책을 같은 장르인 전기 도서를 모아 놓은 곳에 배치할 수도 있고, 각 인물의 특성에 맞춰 주제별로 펼쳐 둘 수도 있거든요. 넬슨 만델라 평전을 전기 도서로 분류할 건지, ‘인종차별’ 주제 서가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사서의 몫이에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어떤 용도로 이 책을 찾을 것인가’를 고려해서 결정하죠. 그런 판단의 근거를 알려고 책을 빌려 간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요.”
선별된 정보는 이용자의 접근성과 관심사를 고려하여 배치한다. ‘이 책 어땠어? 재밌었니?’ 단지 친해지려고 던지는 질문은 아니다.
“사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 끊임없이 파악해야 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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