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식물의 의식이라는 문제
식물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당신에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통통한 해바라기의 휠캡 같은 얼굴과 털로 뒤덮인 굵은 줄기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할머니 집 마당에서 지지대를 감고 올라가는 콩덩굴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처럼, 주방 창가에 늘어선, 얼른 물을 줘야 할 것 같은 상태의 스킨답서스를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 매일같이 보는 초록 존재들을.
물론 당신 생각이 옳다. 우리 인간이 인류 역사 내내 문어를 가리켜 문어라고 불렀던 것이 옳다고 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까지도 알지 못했다. 문어가 다리로 맛을 볼 수 있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우리가 우리 세계를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자기네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몸 전체에 뉴런이 골고루 분산되어 있어서 마치 개별적인 미니 뇌를 여러 개 달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자, 그렇다면 문어란 무엇일까? 그 답이 무엇이든 우리가 상상해 온 것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가 아닐까.
그 답은 이제야 막 우리에게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결정적 측면에서는 인간 외 생물의 지능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이미 혁명을 일으켰다. 진화의 나무에서 문어가 자리한 가지는 동물의 역사에서 아주 일찌감치 우리의 가지와 갈라졌다. 문어와 우리의 마지막 공통 조상은 5억 년도 더 전에 바다 밑바닥을 훑고 다니던 편형동물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돌고래와 개, 그리고 우리와 훨씬 가까운 사촌인 영장류처럼 인간과 진화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동물들에게서만 지능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온갖 생물의 대단한 영리함이 인간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지각 변동이 식물과 관련된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단, 이 격변은 (아직은) 그보다는 더 조용하게, 생명과학계 내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지 않는 분야의 실험실과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앎의 무게는 우리가 우리 머릿속에서 식물들을 담아둔 용기의 벽을 터뜨릴 기세다. 언젠가는 그 앎이 생명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깡그리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식물이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식물이 무엇인지 안다고 확신했다. 그런 상태로 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환경 전문 기자로 일하던 내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 업무의 대부분은 기후 변화의 꾸준한 진행, 그리고 오염된 공기와 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두 가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달리 말해 나는 인류를 향해 가차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무거운 발걸음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 박자에 맞춰 오륙 년을 보내고 나니, 스멀스멀 다가오는 두려움이 나를 어둠 속에 담가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최근 나온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기후 대재앙을 막아낼 시간이 얼마나 적게 남았는지 알려주는 그 보고서를 설명해 줄 때면 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으스스한 희열을 느끼고는 했다. 오전 내내 기록적인 산불과 허리케인에 관한 뉴스를 흡입하고는 점심시간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사무실 내 가십거리에 관해 잡담을 나누었다. 구획화가 어찌나 철저히 이루어졌는지 이제는 환경의 격변에 대해 어떠한 감정적 반응도 끌어낼 수 없었다. 그린란드의 빙상氷床이 녹고 있다는 것도 그저 좋은 기삿거리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경이롭고 생동하는 느낌이 드는 뭔가를 자연과학계에서 찾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이었다. 나는 식물을 좋아했다. 밤에 꽃 피는 재스민이 내 방 창틀을 타고 오르는 모습도, 몇 달 동안 아무 변화도 없던 우리 집 떡갈잎고무나무가 갑자기 새순을 세 촉이나 밀어내며 급속히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정말 좋았다. 나의 아파트는 내 컴퓨터 안에서 전개되는 드라마보다 훨씬 좋은, 식물의 풋풋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안식처였다. 그래서 나는 내 기자의 뇌를 식물 쪽으로 돌려 써 보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면 기후 관련 논문을 찾을 때 쓰던 바로 그 온라인 포털에서 식물학 저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포털은 최신 연구를 대중에 공개하기 전에, 정해진 공개 날짜 이전에는 관련 기사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리 저널리스트들에게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식물학 저널에는 식물에 관한 기본적인 발견들이 가득했다. 이를테면 바나나의 진화적 기원을 밝히고, 일부 꽃들이 미끄러운 이유꽃꿀을 훔쳐 가는 개미들을 막기 위해서다를 마침내 알아낸 발견 등이었다. 흡사 지난 시대의 과학을 염탐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렇게 많은 기본적 사실들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고? 이 새롭고 매혹적인 관심사에 뛰어들고 2주가 지났을 때, 나는 한 양치식물의 전장 유전체 분석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에 관한 논문이 곧 발표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게 얼마나 괄목할 만한 성과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양치류는 엄청나게 오래된 식물이어서 (겨우 23쌍인 인간의 염색체에 비해) 염색체가 무려 720쌍이나 되는 것도 있다. 유전체학 혁명이 양치식물에 도달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다. 나는 보도 엠바고가 걸린 해당 논문에서 그 양치식물의 이미지를 보자마자 매료되었다. 어느 연구자의 엄지손톱에 놓인, 물개구리밥Azolla이라는 아주 작은 물풀 모양의 식물을 찍은 사진이었다. 내부에서 빛을 발하나 싶을 만큼 아주 선명한 초록색이었다.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주름물개구리밥, 학명 아졸라 필리쿨로이데스Azolla filiculoides, 혹은 짧게 물개구리밥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양치식물 중 하나로 습한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식물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크기를 보고 복잡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물개구리밥은 대략 5,000만 년 전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을 때 북극해에서 자라기 시작해 거대한 담요처럼 수면을 덮었다. 이후 100만 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다. 그래서 고식물학자들은 지구를 식히는 데 물개구리밥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고, 일부 연구자들은 현재 이들이 다시 지구를 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아보는 중이다.
물개구리밥은 또 하나의 기적 같은 묘기를 부릴 수 있다. 약 1억 년 전, 몸에 특수한 주머니를 만들어 질소를 고정하는 남세균Cyanobacteria 한 꾸러미를 그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약 80퍼센트가 질소이며, 우리를 포함해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구성단위인 핵산을 만들기 위해 질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체 형태로는 질소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질소가 사방에 널려 있는데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분자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반전은, 식물들 역시그리고 식물로부터 질소를 얻는 우리 모두도 사용 가능한 형태로 질소를 재조합할 줄 아는 세균에게 질소의 공급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물개구리밥은 제 몸을 세균들을 위한 호텔로 개조한 셈이다. 이 자그마한 양치식물은 남세균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당분을 먹이고, 남세균은 부지런히 질소를 변환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농부들은 이 점을 알아차리고 수 세기 동안 물개구리밥을 갈아서 자기네 논에 뿌렸었다.
나는 양치식물 안내서들과 양치식물에 관한 지식에 파고들었다. 살면서 몇 번밖에 가동된 적 없는 이토록 왕성한 지식 욕구는 내가 느끼기에도 꽤 뿌듯했다. 물개구리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왼팔에 작은 물개구리밥 문서까지 새겼다. 저널리스트들은 여러 대상에 짧게 관심을 느끼고 거기 푹 빠졌다가 금세 다른 대상으로 넘어가는 얕고 넓은 지식의 소유자들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 소문 없이 살아온 듯한 이 흔하디흔한 식물군에 대한 의문들이 갑자기 마구 솟아났다. 물개구리밥은 세상을 바꾼 식물이었다. 나는 또 무엇을 모르고 있었을까?
이 탐구의 일환으로 나는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을 사서 집어삼킬 듯이 읽었다. 이 얇은 책은 색스가 버스 한 대를 가득 채운 열성적인 아마추어 양치식물학자들모두 미국양치류연구회 뉴욕지부 소속이었다과 함께 멕시코 남서부로 양치류 탐사를 떠났을 때 보고 느낀 바를 쓴 책이다. 탐사대를 이끄는 사람 중 한 명은 뉴욕식물원의 양치류 큐레이터인 마흔네 살의 로빈 C. 모런Robbin C. Moran으로, 오악사카주 곳곳으로 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며칠 동안 여러 마을과 풍경들을 둘러보고,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과 붉은 연지벌레색소코치닐 염색통, 그리고 당연히 온갖 종류의 우산이끼liverworts와 고사리들을 보며 경탄한 뒤, 어느 시점에 색스는 황홀경이라는 말 외에 달리 묘사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오후의 비스듬한 햇빛이 자란 옥수수 줄기 위로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식물학자이자 오악사카 농업에 관한 전문가인 나이 지긋한 신사가 옥수수 밭 옆에 서 있었다. 색스는 찰나의 섬광 같은 그 신비의 순간을 겨우 반 문장 정도로 표현했는데, 읽는 순간 그 단어들은 더없는 진실함으로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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