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정말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을까?
‘너희는 기후 변화 때문에 죽게 될 거야.’
요즘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폭염이 지구를 휩쓸지 않는다면 산불이, 또는 허리케인이, 또는 홍수가, 그것도 아니라면 대규모 기아가 그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다. 그러니 젊은 사람 대부분이 자신들의 미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지구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다.
나는 이런 내용의 메일을 매일같이 받는다. 이런 심리는 전 세계 연구에도 잘 나타난다. 2021년 전 세계 16세부터 25세 사이 청년층 1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4분의 3이 넘는 사람들이 미래가 두렵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이 ‘인류는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은 영국과 미국은 물론 인도와 나이지리아에도 만연해 있다. 부유하거나 안정된 삶을 사는 이와는 무관하게 전 세계 젊은이는 자신들이 죽을힘을 다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여겼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청년 가운데 5분의 2가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2022년 미국에서 자녀가 없는 전 연령대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11퍼센트의 응답자가 아이를 낳지 않은 주요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았으며 기후 변화가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대답한 비율도 15퍼센트나 되었다. 18세부터 34세 사이 청년층에서는 이 비율이 훨씬 높았다. 젊은 층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 종말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라고 강요하는 일은 양심상 할 수가 없다’라고 답한 응답자도 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대답한 응답자도 6퍼센트나 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그저 말뿐인 것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문 조사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최근 한 연구만 보더라도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환경 보호에 적극적인 사람들보다 아이를 가질 확률이 60퍼센트나 높았다. 물론 환경 보호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단지 ‘기후 변화에 비롯될 위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통계를 통해 ‘요즘 아이 낳기가 두려워졌다’는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이를 갖기 망설여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 역시 거짓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심정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전의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 역시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확신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의 환경 문제를 고민하며 보낸다. 그것이 나의 직업이고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포기할 뻔한 적이 있었다.
2010년 나는 환경지질과학 전공으로 에든버러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한 열여섯 살의 나는 전 세계가 맞닥뜨린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배우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 답을 찾기는커녕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제에 짓눌리기만 했다. 학부 시절 4년은 인류가 지구를 얼마나 파괴했는지 매일매일 깨닫는 시간이었다.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 사라지고 있는 산호초와 북극곰, 삼림 파괴, 산성비, 대기 오염, 어류 남획, 해상 기름 유출, 생태계 파괴 등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다.
대학 학부 시절 나는 최신 뉴스를 섭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지구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와 가뭄, 기근이 발생하고 있었다. 죽는 사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 배를 곯는 아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앞에서 그래프로 정리한 설문 조사에 나와 있는 가정은 모두 틀렸다. 사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세상은 정반대로 변화하는 중이다.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한다면 그런 기초적인 오해쯤은 해소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강의를 들을 때마다 인류가 생태계에 저지른 해악에 대한 죄책감이 깊어지면서 오해도 따라서 깊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학위를 따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언제든 나를 짓누르는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력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환경 과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에서 한 남성이 버블 차트를 좇으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독립하고 점점 번창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이 발전한 모습을 보세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서구를 따라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프 위 빨간색과 초록색의 원들은 서로 포개져 마치 홀로그램처럼 보였다. 그는 팔을 요란하게 흔들며 원들을 화면 이리저리 밀어내고 끌어다 놓았다. 그가 흥분해 말하는 통에 악센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스웨덴 사람인 듯했다. “자, 이제 아프리카를 보시죠!” 그가 소리쳤다.
그의 이름은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이다. 그를 이미 아는 독자라면 그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의 이름을 처음 듣는 독자라면, 조금은 부럽다. 이제 마법과도 같은 그의 강연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로슬링은 스웨덴 출신의 의사이자 통계학자이며 대중 강연자다. “한스 로슬링과 3분 이야기를 나눠 보면 당신의 세계관이 바뀔 것이다”라는 《네이처Nature》의 비평이 그를 잘 설명한다. 그는 정말로 내 세계관을 바꿔 놓았다.
나는 이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조금 틀린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모든 문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 로슬링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연단을 연신 뛰어다니며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실을 보여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완전히 정반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자책하지 않도록 설명해 줬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로슬링은 이를 주요 활동으로 삼아 TED와 구글 및 세계은행에서 학자들, 경영자들, 과학자들 심지어 세계적 보건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이 세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모두가 열광했다. 그의 강연 영상을 보면 청중이 자신들의 무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터뜨리는 웃음을 들을 수 있다. 로슬링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교사’로서의 통솔력을 지니고 있었다.
로슬링은 여러 강연을 통해 극빈층 비율, 아동 사망률, 여아 진학률, 아동 백신 접종률과 같은 데이터들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 복지 지표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전 지구적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와 관련된 데이터를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매일 뉴스에 나오는 기사 제목들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이래서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뉴스는 독특한 이야기, 흔치 않은 사건, 최근 일어난 재해와 같은 새로운 소식을 전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소식들을 너무 자주 접하면서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사건들도 꽤 있음직한 일처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희귀하고 특수한 사건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다.
흔치 않은 사건들과 이야기는 중요하며 나름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독특한 사건을 다루는 뉴스만으로 세계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세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희귀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사건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러한 변화는 수십 년이 지나야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질 때까지 매일, 매년 꾸준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축적된 결과다.
우리가 이런 변화를 인지하는 방법은 한 걸음 물러나 장기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길밖에 없다. 바로 한스 로슬링이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취했던 방식이다. 현재 인류가 처한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이런 지구적 동향을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나는 옥스퍼드대학교에 기반을 둔 연구 단체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의 연구 책임자이다. 우리 단체는 빈곤, 보건, 전쟁,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를 모두 다룬다. 나는 옥스퍼드대학교의 괴짜 연구자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한 단체 구성원들이 ‘괴짜’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학계에 기대하는 일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는 문제를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고 세세히 분석하지만, 우리는 한발 물러서서 문제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하는 일은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연구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가진 정보를 적절하게 연구했다면 알 수도 있었던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신문 기사, 라디오, 텔레비전, 정부 기관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정보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스 로슬링이 뉴스 머리기사에 나오는 소식들이 세계 빈곤, 교육, 보건 문제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 것처럼, 나 역시 최근 발생한 ‘산불이나 허리케인’을 근거로 환경 문제를 논의하려는 시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 에너지 시스템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최신 뉴스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문제를 큰 틀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문제를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거리를 두고 문제를 바라보면 매우 근본적이고 희망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현재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이룩하는 데 유례없이 좋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비관적인 전망이
비극적인 미래를 만든다
“사람들이 각성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파괴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이 이야기가 더 널리 전파되어야 하는 이유라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 그들은 인류 멸망이 기정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해는 간단하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많은 환경 문제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실천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 문제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수십 년도 더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고, 그 영향들이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논의에 앞서 먼저 한 가지 명확히 밝히고 가야 한다. 나는 절대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거나 그 영향을 축소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환경 문제를 연구하고 그에 관한 글을 쓰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지금껏 세계는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후 변화가 지구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너희 미래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단 인류 멸망이 억측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억측이 정말 해로울까? 그럴지라도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일이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긍정적이며 정직한 해결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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