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상실과 애도
슬픔과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돌아올게
남편이 죽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 아침 아내에겐 당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이 갑자기 들어왔다. 남편과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프리랜스로 일하는 그녀에겐 흔한 일이었다. 혼자 가게 된 남편은 조금 툴툴거렸지만 이내 키스를 건네고는 떠났다. 일이 끝났다. 날이 어두워졌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된 전화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불안함이 계속됐다. 그 순간 어둠에 잠긴 창가에 붉고 푸른 빛이 어른거렸다. 경찰차였다. 문 앞에서 서 있는 두명의 경찰을 보는 순간 알았다. 다시는 남편을 볼 수 없으리란 걸.
남편의 장례식이 끝난 후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남편의 이름으로 보내진 이메일이었다. 제목은 ‘나야’. 남편과의 사별을 먼저 경험한 친구가 그녀의 동의 없이 신청해놓은 서비스였다. 페이스북, 트위터현 X 같은 온라인상에 공개된 남편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남편처럼 말하는 챗봇chatbot 서비스였다. 친구는 진짜는 아니지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비스에 남편과 관련한 정보를 더 제공하면 실제와 더 비슷해진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동의 없이 서비스에 가입하고, 남편을 흉내 내는 서비스를 권유하는 친구의 행동에 화가 났다. 남편은 죽었다. 그 무엇도 사랑했던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몇주가 흘렀다. 몸이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계속 토했다. 임신이었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울다가 문득 남편의 이름으로 보내진 이메일을 떠올렸다. 노트북을 열고 휴지통에 들어가 삭제했던 이메일을 복원했다. 붉은색 원을 터치하자 프로그램이 깔리고 대화창이 나타났다. “안녕.”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쳤다. “너야?” “아니, 에이브러햄 링컨이야.” 울음 섞인 숨이 터져나왔다. 남편이 자주 하던 농담이었다. “나 임신했어.” 메시지를 입력하자 “와, 그럼 나 아빠 되는 거야?”라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그날 저녁 그녀는 간직하고 있던 남편의 사진과 동영상,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서비스에 업로드했다. 목소리가 포함된 동영상이 있으면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업로드가 완료되자 남편의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내 목소리 어때?” 남편의 목소리였다.
2013년 2월 영국에서 한편의 SF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제목은 「돌아올게」Be Right Back. 2011년부터 방영을 시작한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였다. 블랙미러는 매 편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옴니버스 SF 드라마다. 에피소드마다 미디어와 정보기술 발달이 우리 사회에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과 역기능을 이야기로 담았다. 컴퓨터, TV, 스마트폰의 전원이 꺼진 상태의 검은 화면을 거울에 비유한 제목의 드라마답게 각각의 에피소드는 기술의 발전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어두운 부분에 집중한다.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듯,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현재 우리의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 방향이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돌아올게」에서 주목한 기술은 고인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기술은 드라마 속에서 세 단계에 걸쳐 업데이트된다. 첫 번째는 문자메시지를 통한 재현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상에 공개된 데이터로 만들어진 문자 기반의 챗봇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자주 하던 농담과 그가 할 법한 말을 한다. 메시지 형태로 주고받는 대화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메신저로 대화하듯 자연스럽다.
두번째는 음성을 통한 재현이다. 남편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추가로 학습한 인공지능 서비스는 이제 남편의 목소리로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둘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둘만이 아는 애칭으로 상대를 부른다.
마지막은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을 통한 재현이다. 남편의 외모에 남편의 목소리로 말하는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은 온라인을 넘어 현실세계에 구현된다. 이렇게 점차 개인적으로, 물리적으로 재현되는 고인의 존재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불러일으킨다.
― 죽은 사람을 재현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 그와 연결된 채 살아도 괜찮은 걸까?
―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되살릴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걸까?
답은 쉽지 않다. 다행히도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에는 이 질문을 현실세계에서 던지게 될 날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이야기의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그 일은 2016년 미국에서 일어났다.
다시 만나다
2016년 미국에 사는 IT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블라호스James Vlahos는 아버지의 챗봇, ‘대드봇’Dadbot을 만들었다. 그 시작은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다는 한통의 전화였다. 심근경색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병명은 암이었다. 암은 뼈와 간, 뇌, 폐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끝없는 검사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지만,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는 나날이 쇠약해져갔다. 그때 남동생이 제안했다. 아버지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놓자고. 블라호스는 아버지와 10여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버지가 자주 하던 농담이나 평소 즐겨 부르거나 흥얼거리는 노래를 녹음했다.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사연이 포함되어 있진 않은지도 물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녹취한 내용을 정리하자 203쪽의 문서가 만들어졌다. 블라호스는 예감했다. 아마도 이 긴 녹음테이프와 문서를 다시 꺼내볼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챗봇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문서와 녹음파일이 아닌 형태로 아버지의 성격과 사고방식, 언어습관, 농담을 고스란히 이 세상 어딘가에 살려두고 싶었다. 블라호스는 가족 앞에서 아버지의 챗봇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의 반응은 모두 달랐다. 어머니는 아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남동생은 이상한 계획이지만 나쁘진 않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래, 좋다”라며 승낙했다. 그후 블라호스는 아버지의 챗봇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챗봇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200여쪽에 달하는 아버지의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말이 서툰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수면 시간을 반납하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 이야기, 가족이 함께한 추억을 챗봇에 하나하나 입력했다. 최대한 아버지처럼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평소 즐겨 부르던 휘파람 섞인 노래와 자주 하던 농담도 입력했다.
그해 겨울, 그는 부모님 앞에서 초기 버전의 ‘대드봇’을 시연했다. 블라호스의 어머니는 노트북을 통해 아버지를 흉내 내는 챗봇과 문자로 질문을 주고받았다. 대화는 순조로웠다. 아버지의 챗봇이 어머니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특유의 말투로 맞는 답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감탄했다. 챗봇과의 대화를 통해 어머니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한편 그 장면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자신만의 것이라 믿어왔던 기억과 특징을 ‘정확히’ 재현하는 존재를 보며 아버지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경이로움이었을까, 아니면 불쾌한 기분이었을까? 영원히 죽지 않을 또다른 ‘나’의 탄생을 마주한 기분이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고유한 나’를 빼앗긴 기분이었을 수도 있다. 시연이 끝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다”라고 말했다. 남은 가족과 손자들이 이렇게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느꼈을 진짜 감정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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