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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
“교육수준이 높고 책임감 있는 남성에게 육아가 장려되는 문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 마거릿 미드, 『남성과 여성』(1962)
‘황금시대’에 태어난 우리
1946년, 전후 베이비붐이 시작될 무렵 태어난 나는 텍사스 주 휴스턴의 부유한 지역인 ‘리버 오크스’에서 자랐다. 그 시절은 결혼의 황금기였다. 남성은 사무실에서 일해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는 핵가족이 이상적인 가족 모델로 여겨졌다. 내가 자란 지역은 더했다. 나는 남자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에겐 두 명의 언니와 뒤늦게 태어난 여동생, 그리고 터울이 긴 남동생이 있었다. 우리를 포함해 내가 알던 모든 아이는 오로지 여성의 돌봄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졌고, 인간은 항상 그렇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여성만 모유수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중산층 백인 여성들은 모유수유를 천박하게 여겨 기피했다.
독일인 유모인 ‘나나’가 희미하게 기억난다. 또, 프랑스인 가정교사 ‘마드무아젤 드라이어’가 기억난다.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람은 동생을 주로 돌보았던 ‘루페 세풀베다’이다. 멕시코풍의 스페인어를 영어보다 더 많이 썼던,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유모였다. 막둥이가 태어나자, 오랫동안 원하던 아들을 얻은 아버지는 흥분했다. 이전까지 딸만 내리 네 명을 낳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귀한 아들을 직접 돌보려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자랑스러워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워 했다. 그래서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 매우 기뻐했지만, 아기는 이내 텍사스 소도시에서 건너온 노련한 미망인 유모에게 맡겨졌다. 아버지는 따뜻했고, 남자다웠으며, 재정적으로도 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성질을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훗날 나는 내 남편이 될 사람이 얼마나 다정한지, 정직하고 믿을 만한지, 생활력이 좋은지를 가늠했다. 하지만 남편이 육아를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와 남편 댄 사이에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서른한 살이었고, 텍사스에서 멀리 떨어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었다. 댄은 내가 자연분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라마즈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석했다. 댄은 카트린카가 태어날 때 분만실에서 함께했고, 그 순간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댄은 아이를 받아 내 품에 안겨주었다. 인류학의 표준 교차문화 샘플Standard Cross-Cultural Sample 186개 사회 중 약 27퍼센트에서 관찰되듯이, 댄은 분만할 때 나와 함께 있어 주었지만, 출산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댄이 집으로 돌아간 후, 카트린카와 나는 좋은 병상에서 함께 잠들었다. 병원에서 아기를 위해 막 도입한 ‘모자 동실’ 방식을 택한 우리는 갓난아기를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공동 육아실에 보내지 않고 함께 잘 수 있었다.(〈그림 1.1〉).
1977년 12월, 보스턴에 폭설이 내린 다음날 아침, 차에 새로 산 카시트를 설치하고 카트린카를 뉘었다. 보스턴 여성병원 산부인과를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에는 육아휴직이 없었으므로, 다음날 남편은 일터로 돌아갔다. 나는 집에서 카트린카를 품에 안고 누워 눈 쌓인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꿈꾸듯이 환영가를 부렀다. “카트린카, 카트린카, 사랑스러운 조그만 카트린카. 보들보들한 피부와 비단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 네가 여기 있어서 모두가 너무 기뻐하고 있단다.” 하지만 ‘모두’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갓 태어난 아기와 엄마 둘밖에 없었다.
카트린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생물인류학 박사학위를 받고, 진화적 관점과 비교생물학적 관점에서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 있었다. 이른바 정통 사회생물학자였다. 따라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또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 중심의 육아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자연의 노동 분업
나는 포유류에 속하는 엄마로 태어났다. 그래서 아기가 내는 작은 신음소리만 들어도 찌릿한 느낌과 함께 젖이 흘러나왔다. 칼 린네는 암컷에게 젖이 나오는 동물을 지칭하여 포유강Mammalia이라는 분류명을 부여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분류군에 속했다. 암컷이 아기의 필요에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여겼다. 공감하고 헌신적으로 돌보는 역할이 내 몫이었다. 카트린카가 조금이라도 뒤척이며 울음을 터뜨리면 곧장 안아주러 갔다. 이러한 빠른 반응을 낮은 반응 역치Low threshold for responding라고 한다. 여성은 이처럼 매우 연약하고, 무력하며, 포유류가 그렇듯 유달리 성장 속도가 느린 조그만 아기를 돌보도록 진화했기에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했다.
딸아이 카트린카와 자주 한 침대에서 잤다. 하지만 카트린카를 요람에 따로 재워도 낮은 반응 역치는 어김없이 발동했다.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대번에 깨어나 달려갔다. 물론 남편 댄은 쿨쿨 잠만 잤다. 나는 종종 걱정이 과해져서 카트린카가 깊이 잠들었을 때는 혹시 죽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댄과 나는 서로 다른 감각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으며, 서로 다른 자극에 반응했다.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문화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완전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한때 나는 인도에서 랑구르원숭이Semnopithecus를 연구했다. 구세계 원숭이old world monkey와 유인원apes에서 유아 돌봄은 암컷 몫이다. 암컷 랑구르원숭이는 태어난 집단에서 평생을 보내며, 어머니와 할머니의 서식지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집단 내의 모든 암컷은 일차 사촌이나 이차 사촌 정도로 아주 가깝다. 유별나게 지배 계급이 온순한 무리여서, 어미는 다른 암컷이 자신의 새끼를 안고 가도 걱정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허용한다. 왜냐하면 이런 행동의 99퍼센트는 육아 연습을 하고 싶은 어린 암컷이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듯이 말이다. 이러한 보모 행동은 랑구르원숭이 어미에게 큰 도움이 된다. 자유롭게 ‘일하러’즉 먹이를 구하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로 이용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보모다. 맞벌이 주부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대형 유인원 친척인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에서도 새끼 돌봄은 오로지 암컷의 몫이다. 하지만 대형 유인원 어미는 랑구르원숭이처럼 보모를 갖지는 못한다. 침팬지 암컷의 경우, 주로 번식 전에 다른 집단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새끼를 키울 때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보호자가 없으므로, 어미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며, 소유욕도 강하다. 침팬지우리와 DNA의 약 98퍼센트를 공유한다 어미는 출산 후 최대 여섯 달까지 아기를 꼭 껴안고 다닌다. 피부와 피부가 닿도록 착 끌어안으며, 다른 녀석이 안거나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유인원학자로서 이러한 상황에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아기를 돌보고,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것은 모두 당연히 암컷의 일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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