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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진실을 말하기
신화, 메타포, 구조
판타지는 진실을 전달하는 거짓말이다. 판타지에서 거짓을 짚어내기는 쉽다. 용, 주문, 존재한 적 없는 공간이 거짓이다. 반면에 ‘판타지가 어떻게 진실을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복잡하고 훨씬 흥미롭다. 지금부터 판타지가 어떻게 진실이 될 수 있는지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판타지는 어떻게 진실이 될 수 있는가
첫째, 신화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판타지는 사람들이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의지한 전통적 신념과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한다. 신화는 우주를 설명할 뿐 아니라 집단, 계층, 젠더의 역할, 의례와 종교적 의무까지 보여준다. 우리의 믿음과 관계없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현재나 미래보다는 과거의 형태로 제시될 때가 많다. 또한 춤과 의례극, 샌드 페인팅이나 머드 페인팅, 노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살아있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각주와 먼지로 뒤덮인 책 속에 자리한다. 나는 《스토리에 관한 스토리Stories about Stories》2014에서 판타지는 전통적인 신화와 우리의 관계를 재창조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예컨대 문화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말을 빌리자면, 판타지는 잔여 문화Residual culture에 있던 신화적 아이디어를 지배dominant 또는 부상emergent 문화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둘째, 메타포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용은 진짜 용이 아니라 독재자를, 동물과 의사소통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해일이나 화산 폭발같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나의 텍스트는 하나 이상의 유추적 해석이 가능한 만큼 어쩌면 이 모두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판타지를 우화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톨킨은 판타지와 우화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화는 가령 역사적 사건과 환상의 퀘스트가 일대일로 대응하고 본질적으로 폐쇄계closed system다. 하지만 조지 레이코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이 저술한 《삶으로서의 은유》에 따르면, 사랑을 전쟁터에 비교하듯 메타포는 어떤 경험의 모든 영역을 이용해 또 다른 경험을 헤아리는 방법이다. 메타포는 한계가 없다. 레이코프와 존슨이 ‘근원 영역source domain’이미 잘 알고 있는 익숙하고 친숙한 영역―옮긴이이라 부르는 개념을 바탕으로 ‘목표 영역’target domain’아직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옮긴이을 얼마나 상상해 낼 수 있을지의 능력에만 제한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메타포는 우리가 아는 대상과 미지의 대상의 간극을 건널 수 있게 해준다. 메타포는 사고 과정이자 새로운 경험을 과거 경험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방식인데, 이때 둘 사이에 유사성은 자리하지 않는다. 물론 메타포의 전형적인 언어 형식이 유사성을 기술하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장미고, 당신의 상사는 돼지고, 그날은 불타고 있다’라는 글을 생각해 보자. 이 모든 메타포는 비교 대상의 적합성뿐만 아니라 해당 등식의 불완전성에 의지한다.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글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함의로 그 힘을 발휘한다. 내가 실제로 꽃 한 송이와 사랑에 빠졌거나 당신이 실제로 농장에 사는 동물을 상사로 뒀다면 깨달음을 얻으며 충격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판타지에서는 여러 핵심 기능, 즉 마법을 발휘하는 장치들을 문자화된 메타포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한 인물로 조지 맥도널드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문자화된 메타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가벼운 공주》1864다. 주인공은 문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무게가 없는 인물이다. 아기였던 공주가 침대에 고정되지 못하고 둥둥 뛰어다니다가 창문 밖으로 나가는 도입부부터 사랑과 슬픔이 마침내 공주를 이 땅에 묶어둔다는 결론까지 유려한 메타포가 이어진다. 가벼움과 무게감, 경솔함과 중력, 제한과 자유라는 주제가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운데 맥도널드는 이런 개념들의 연결 고리가 우리의 언어에 이미 존재하지만 우리가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법을 잊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메타포를 다시 깨닫게 하는 한편, ‘사랑은 중력이다’라는 주장이 사실인 동시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환상 이야기의 설정으로 보여준다. 메타포를 문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동어 반복에 매몰된다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
많은 메타포는, 특히나 맥도널드의 작품 같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메타포는 신화가 그렇듯 민속 전통에서 유래했다. 전통적인 수수께끼riddle, 고대 영시이자 민속 문학의 한 장르―옮긴이는 예상치 못한 은유적 연결성을 바탕으로 한다. ‘달걀은 황금빛 비밀이 담긴 상자’, ‘침묵은 그 이름만 불러도 깨질 수 있는 무언가’처럼 말이다. 현대 문화에는 이런 수수께끼가 드문 탓에 우리는 조상들만큼 은유적으로 사고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 민속학자 배리 토울컨Barre Toelken은 〈5월의 어느 아침One Morning in May〉 같은 전통적인 발라드ballad, 설화시의 일종으로 일정한 시형이 있다―옮긴이를 이야기하며 수준 높은 은유적 인식의 사례를 강렬하게 보여줬다. 전통 발라드를 하는 이들과 청중은 학자의 설명이 없어도 바이올린과 활이 신체를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 건초를 만들거나 체리를 딴다는 말로 섹스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토울컨은 발라드를 연주자가 바지에 숨겨 이탈리아에서 몰래 밀수해 온 바이올린에 비유해 설명했다.
바지의 덮개에 가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누가 봐도 훤히 알 수 있다. 무언가 숨겨졌다는 그 자체는 비밀도, 완곡어법도 아니다.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는 대상을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밌게 표현한 것이다.[1995, p.19]
평면적으로, 그리고 프로이트식으로 전통 노래와 이야기를 해석한다면 무언가를 밝히는 동시에 밝히지 않는 데서 오는, 그것이 아니지만 그러한 역설에서 오는 유희성이 사라진다.
이런 유희적인 모호성은 전통적 내러티브에서부터 이를 문학적으로 각색하고 모방하는 장르까지, 즉 신화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판타지까지 이어졌다. 수수께끼와 환상 동화는 신화가 아니지만 의미를 다양하고 복잡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신화와 공통점이 있다. 이런 구전 형태에서는 평범한 대상이 예상치 못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스토리를 통해 어떤 대상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가 창출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마법으로 암호화된 채로 제시될 때가 많다. 비둘기와 화염, 핏방울 등 어떤 이미지는 근간이 되는 신화적 아바타와 분리할 수 없다. 은유적 힘을 지니지 않은 이미지도 적절한 내러티브 프레임 안에서 신탁을 속삭이고 신비한 힘의 존재를 암식할 수 있다. 페르세포네 이야기 속 한 줌의 석류 씨와 북미 토착민 나바호족의 창조 신화 속 거미줄이 이에 해당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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