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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얼굴
서울 종로구 명동성당, 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 오전. 장마 직전의 한여름 햇볕은 따가웠다. 오전인데도 섭씨 30도가 넘었지만 유흥식 추기경님의 미소는 한결 같았다. 온몸으로 웃음을 짓는 분. 그는 눈으로 웃고, 입으로도 웃고, 웃을 때 필요하다는 열일곱 개의 얼굴 근육을 동원해 아낌없이 웃었다. 카메라 렌즈 앞에 선 그를 보면서 나도, 카메라 기자도, 지나가던 수녀님도 따라 웃게 되었다. 추기경님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많이 더우시죠?”
“이 더위도 반갑습니다. 이 땅 어딘가엔 한여름 더위를 간절히 기다린 존재도 있을 테니까요.”
사진 촬영이 끝나고 유흥식 추기경님과 마주 앉았다. 사제복 사이로 보이는 팔목이 매우 굵었고, 오른손 약지에 큼지막한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새겨진 추기경 반지라고 했다. 유 추기경님은 수녀님이 크리스털 잔에 든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을 때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몸에 밴 습관으로 보였다. 커피잔이 각자의 자리에 다 놓이자, 그는 자신의 커피잔을 들고 특유의 미소를 활짝 지으며 말했다.
“우리 먼저 건배합시다. 카메라 기자님도 이쪽으로 오셔서 같이 건배하시지요.”
다 같이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쨍!”
커피 건배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커피 건배는 처음 해봅니다.
“경우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건배를 하잖아요. 건배할 때는 잔을 부딪치면서 상대방 눈을 바라봐야 합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일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에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누구를 만나든 눈을 마주치면서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유머가 대단한 분이죠.”
추기경님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긴장을 많이 했어요. 추기경님의 언록 본격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하셔서 부담감도 컸고요. 그런데 몇 마디 나누면서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잘하겠다는 욕심이고, 틀리지 않아야겠다는 것도 욕심이지요. 욕심은 늘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아요. 욕심을 버린다는 건 아름다운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자유로워지거든요.”
욕심을 버리려는 것도 욕심 아닌가요?
“물론 그것도 욕심입니다. 그것까지도 버릴 줄 알아야 진정 편안하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된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기도합니다. 오늘은 이 만남에 대해 기도했어요. ‘참 좋았다는 여운이 남는 대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요. 어디를 가든 기도합니다. ‘계속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종종 우리는 사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모든이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지요.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맞지 않아요. 누군가를 만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이 사람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처음 만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일단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그를 사랑할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고 만나게 되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습니다. 그의 말을 따라가면서 듣다 보면 제가 해야 할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요. 때때로 저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대화를 통해 관계가 깊어졌다는 것이겠지요. 우리 성직자부 부원들에게도 종종 말합니다. ‘우리 부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 사랑받고, 인정받았다고 느끼게 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맘에 드는 사람이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 예외 없어요. 사랑을 베푸는 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에요.”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누구든 사랑받고 존중받을 때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본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본모습이 드러난다는 건 타인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이지요. 지금 이 시대는 불신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신뢰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상대방이 나를 마음속 깊이 믿어주면 마음이 차츰 무장해제가 되고, 그제야 진정한 대화와 만남이 가능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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