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도서관은 어떻게
사람을 키우는가
이용훈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세 분을 만나 영광입니다. 세 분은 2023년에 함께 환갑을 맞은 기념으로 ‘환갑삼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지요.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어온 세 분이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보답으로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을 찾는 순회강연을 개최하셨어요. 또 삶을 반추하며 과학과 인생을 아우르는 세 개의 키워드 ‘지능’, ‘시간’, ‘진화’를 주제로 한 대담집 《살아 보니, 지능》, 《살아 보니, 시간》, 《살아 보니, 진화》도 펴내셨고요. 이 책들은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살아 보니’ 시리즈 강연으로 전국을 유행하듯 누비시는데 함께 다녀보니 어떻던가요? 강연하면서 도서관도 많이 가보셨을 텐데 인상 깊은 경험이 있다면요?
이정모
좋았죠. 이권우, 이명현이라는 살아 있는 두 도서관과 함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환갑삼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더라고요.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됐는데 함께 책을 내고 강연을 이어가면서 더욱 친해졌어요. ‘친구로 삼기에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구나, 이들을 믿을 수 있겠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달까요. (웃음)
무엇보다 신뢰가 쌓였죠. 책을 통한 신뢰 말이에요. 주제가 무엇이든 각자가 읽은 책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내니 더 수월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어떤 순간에도 이야깃거리가 끊기지 않는구나’, 그런 믿음 덕분에 강연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권우
보통 지방 강연을 가면 일정을 이틀씩 잡아요. 대개 첫째 날은 독립서점을 가고, 다음 날은 지역 도서관을 가죠. 이왕이면 작은도서관을 위주로 찾고요. 최근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대폭 줄어들면서 도서관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데, 그래도 저희가 가본 도서관은 희망이 있었어요. 도서관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시민의 관심과 열정이 기대 이상으로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저희는 뜨거운 환대까지 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이명현
저는 평소에도 도서관을 많이 드나들지만, 이전까지는 강연자로서 관계자들과 차 한 잔 마시고 오는 정도였어요. 도서관 내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죠. 그러다 ‘살아 보니’ 시리즈 강연을 두 분과 함께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는데, 도서관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던 것들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큰 소득이었습니다.
이정모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춘천의 작은도서관 caru까루였는데 마치 아지트 같았어요. 여러 사람이 모여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어떻게 책을 매개로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오가는 공간이라고 느꼈죠. 평소 도서관이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도서관이 모범적 예인 것 같아요.
태안도서관에서 주관한 강연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도서관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강연이 진행되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와주신 분들의 호응이 너무 좋았어요. 사소한 이야기에도 감동과 만족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태안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러한 강연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도서관이 지역 시민들에게 엄청난 일을 해주고 있는 셈이죠.
저는 지난 2년을 통틀어 태안도서관 강연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어요. 강연을 듣던 주민분들의 표정을 접하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까지일까?’, ‘도서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또 어디까지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죠. 생각을 더욱 활짝 열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용훈
그렇게 이 대담과 책이 시작되었군요.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도서관 사람으로서 무척 감동입니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지요. 전국 각지의 독자들과 만나며 책과 독서, 과학, 교양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세 분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운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과 독서의 전당’, ‘시민의 서재’인 도서관에 대해서 세 분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지도 몹시 궁금해졌고요.
어느 날 도서관이 나에게 왔다
이용훈
자, 얘기를 조금 더 옛날로 돌려볼까요. 저는 어릴 때 서울의 변두리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판잣집은 흔했어도 책을 보유한 공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은 없었지요. 도서관을 처음 만난 건 서울 중심부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습니다. 꽤 충격이었죠. 이렇게 책이 많을 수도 있나 싶어서요. 세 분이 아무리 도서관 생활자라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도서관에 갔을 리는 없을 듯한데요. (웃음) 언제 도서관을 처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모
초등학교 3학년쯤엔가 학교 도서관을 처음 접했어요. 당시의 학교 도서관은 큰 교실 하나에 유리문 달린 책장들이 쫙 늘어서 있는 곳이었지요. 책이 많긴 해도 책장 유리문이 거의 잠겨 있어서 정작 읽을 수 있는 책은 한 권도 없는, 그렇지만 1년에 한 번씩 들어가서 청소는 해야 하는 곳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처럼 독립된 건물 형태의 도서관을 보고 ‘이게 도서관이구나’ 하고 인식한 건 고등학교 이후였던 것 같아요.
이용훈
초등학교 3학년 때라면 1970년대 초반이겠네요. 우리나라 도서관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지요.
이정모
대중적인 도서관이라고 하면 다들 남산도서관, 정독도서관 같은 공공도서관을 처음 접하지 않았나요?
이권우
전 지방에서 살았던지라 그런 도서관은 TV에서나 보던 풍경이었어요. 학생들이 남산도서관 앞에서 책가방으로 줄 세워놓고 기다리는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었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 그렇게 큰 도서관이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이정모
학생 때만 해도 도서관은 책 보러 간다기보다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지요.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인 것 같은데, 뉴스에 나온 도서관 풍경을 보고 시험공부할 때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저 같은 애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줄을 섰다가 결국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도서관 입장료가 150원인가 했어요.
이용훈
도서관계에서는 입관료라고 하죠. 대한제국 말과 일제강점기에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입장료를 내던 것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어요. 지금처럼 공공도서관이 무료 이용 시설이 된 건 1991년 ‘도서관진흥법시행령’이 제정된 이후1992년부터니까, 이제 겨우 30여 년밖에 안 된 셈입니다. 이정모 선생도 그렇게 도서관을 경험한 적이 있으시군요.
이정모
맞아요. 그땐 공공도서관도 돈을 내고 들어가던 시절이었어요.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1980년 7월 31일인데, 바로 전날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학입학정원제를 대학졸업정원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거든요. 신입생을 정원보다 더 많이 뽑는다는 거예요. 그걸 듣자마자 ‘그래, 그러면 나도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방을 메고 뛰어나갔죠.
그렇게 찾아간 곳이 종로5가에 있는 연동교회 도서관이었는데 도착해 가방을 열자마자 토할 뻔했어요. 방학식 날 반쯤 먹고 남긴 도시락이 상한 채로 들어 있었거든요. 방학하고 책가방을 한 번도 안 열어본 거예요. 도시락을 처리하고 비로소 공부를 하려는데 책이라곤 국사 교과서 하나밖에 없지 뭡니까. 다시 집까지 다녀올 수도 없어서 그냥 국사 교과서나 읽어보자 했죠. 그때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동안 국사 시험을 볼 때 친구들이 그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건지 몰랐거든요? 하루 내내 교과서를 읽었더니 책 안에 답이 다 있더라고요. 교과서만 보면 되는 거였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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