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지금까지 농업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우리는 왜 농업이 필요할까? 우리는 일년생과 다년생 작물을 왜 재배해야 할까? 경작지는 왜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육지 면적의 약 40%를 차지할까? 우리는 왜 수십억 마리의 가축을 기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이 증가할 때 종종 나타나곤 하듯, 그 결과 근본적인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종species은 약 600만 년 전 다른 영장류와 갈라졌고, 그 뒤로 이어진 진화 끝에 약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바로 우리다. 소집단 형태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조상은 영장류 조상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수렵·채집인과 사냥꾼으로서 말이다. 이 사람족hominin 종들의 식단을 정량적으로 상세히 재구성할 수는 없지만보존된 뼈와 치아의 안정적인 동위원소 분석 같은 가장 좋은 도구들도 그런 상세한 답까지는 내놓지 못한다, 침팬지의 먹이 습성은 정성적인 재구성을 하는 데 좋은 실질적 견본을 제공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사람족이 아주 다양한 식물과 우연히 마주친 동물 사체, 의도적으로 사냥해서 구한 좀 더 작은 동물, 때때로 동족 살해를 통해 얻은 고기를 먹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침팬지 식단
열대 아프리카의 침팬지 무리가 잡식성임을 규명한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침팬지는 아주 다양한 종을 먹는다. 소화가 잘 되는 식물 부위를 선호하며, 곤충과 작은 포유동물도 사냥해 먹는다. 숲속의 침팬지는 대개 200가지 넘는 식물종을 먹는데, 주로 과일이 많고무화과를 특히 좋아한다 꽃, 어린잎과 줄기, 고갱이, 뿌리, 씨, 견과를 곁들이는 식이다. 견과는 작은 돌망치로 두드려서 깨 먹기도 한다. 침팬지가 어떻게 곤충특히 풀줄기로 ‘낚시질’해서 흰개미를 잡곤한다을 비롯한 무척추동물, 새알, 새끼 새를 찾는지 상세히 관찰한 야외 연구도 많다.
침팬지는 작은 포유동물(주로 콜로부스원숭이colobus monkey지만 어린 멧돼지, 부시벅bushbuck, 갈라고galago, 파란다이커blue duiker, 개코원숭이도 잡는다)도 사냥하며, 획득한 먹이는 다른 무리와 나눠 먹는다. 탄자니아 곰베Gombe 지역의 침팬지 성체는 그런 고기를 연간 최대 25kg까지 사냥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이 10kg에 못 미치는 가장 전통적인 농경 사회보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작은 동물은 주로 2마리 이상의 수컷이 함께 사냥하며, 성공률이 무려 50~60%에 달한다. 하지만 새끼를 안고 다니는 암컷도 사냥을 한다. 그리고 세네갈의 퐁골리Fongoli 연구 지역에서는 침팬지가 창처럼 생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갈라고를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갈라고는 낮이면 속이 빈 나무줄기 안에서 잠을 자는 야행성 원원류原猿類다.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빠르게 추적하거나 사냥감이 저항할 때 입는 부상처럼) 사냥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만큼 보상을 얻는다. 어쨌거나 고기를 한 점만 먹어도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흰개미 수백 마리보다 더 많은 영양무엇보다도 단백질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동식물종이 풍부한 열대림 환경에서 이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생존 방식이다. 숲 침팬지는 낮 시간의 양 절반을 식량을 찾고 먹는 일에 쓰는데, 그중 60~80%는 과일을 구하고 섭취하는 데 사용한다. 따라서 쉬고, 탐색하고, 어울리고, 털을 고를 시간이 충분하다. 그러나 과일 비중이 높은 잡식성 식단은 무리의 개체수를 한정 짓고, 따라서 가용 면적 내의 개체수 최대 밀도도 제약을 받는다. 수확할 과일나무가 그렇게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연간 한두 차례 열매를 맺을 뿐이고, 이런 한정된 생산량을 놓고 다른 종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숲 환경은 제곱킬로미터당 평균 1.5마리의 침팬지를 지탱할 수 있으며, 가장 과일이 많이 나는 지역조차 2마리 또는 가장 많아야 4마리가 살아갈 수 있다. 한편, 사방이 탁 트이고 때로 건조한 데다 황량해지곤 하는 사바나 환경에서는 대개 2제곱킬로미터당 한 마리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오늘날의 인구밀도 높은 도시환경에서 당신과 당신 식구들이 채집할 수 있는 작은 동물과 야생 과일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족과 초기 인류의 식단
600만여 년 전에 침팬지와 갈라진 초기 사람족은 위에서 기술한 잡식성 식단과 비슷한 식습관을 유지했다. 식단은 식물 조직과일, 덩이뿌리, 견과, 잎이 주를 이루었는데, 소화가 잘 되고 필요한 영양을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무척추동물과 작은 척추동물이 적당량 곁들여졌고, 커다란 육식동물이 사냥한 먹이의 사체로부터 이따금 운 좋게 고기와 골수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작은 석기로 시작해서 이윽고 창과 활에 이르기까지 도구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큰 동물을 사냥하고 도살하기에 이르렀다.
현대 인류학은 먹이사슬에서 인류의 위치가 이따금 고기를 먹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침팬지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육식동물로 진화한 끝에 호모 에렉투스약 25만 년 전까지 살았던 종에서 정점을 찍었다가 약 5만~1만 2,000년 전 후기 구석기 때 역행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증거는 전세계에 걸쳐 발견된 인류 유골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 저장량과 위장의 산성도가 증가하고, (식물섬유에서 에너지 추출 능력을 제한하는) 창자의 모양과 부피가 변하고, (식단이 좋아짐에 따라 씹을 필요성이 감소해) 저작 근육이 줄어들고, (우유로 보충하고 이어서 더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대체함으로써) 더 일찍 젖을 떼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더 추운 기후에서는 기원전 9000~3000년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육상 포유동물, 즉 매머드 같은 거대 초식동물의 멸종이 식단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멸종을 설명하는 가설은 기후변화와 과잉 살육 2가지인데, 서로 경쟁하고 있다. 전자는 숲이 확장되고 이 거대한 동물의 서식지인 초원은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가능성이 훨씬 낮지만 끈덕지게 존속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설명인데) 선사시대 사냥꾼 무리가 대형 초식동물을 대규모로 잡아 죽였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윽고 거대 초식동물을 사냥하고 민물과 해안 수역에서 물고기를 잡는 데 이르기까지 식량 획득 기술의 범위를 확대했지만그리하여 열대부터 북극권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수렵·채집인 집단의 인구밀도는 여전히 한정되어 있었다. 고고학 기록이 단편적이어서 실제 선사시대 인구밀도를 믿을 만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류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20세기까지 살아남은 수렵·채집인의 인구와 식량 획득 방식 쪽으로는 신뢰할 만한 정량적 정보가 아주 많다. 탄자니아 하드자족Hadza 수렵·채집인을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 프랭크 말로Frank Marlowe는 이들 “수렵·채집인이 과거 인류와 유사하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인류의 가장 유용한 본보기임에는 분명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집단 크기와 인구밀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남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아마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정된 단순한 도구들에 의지했던 그 이전 집단들이 겪은 경험을 이들도 대부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연구들로부터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수렵·채집인 집단의 최소 규모가 25~30명이고, 정착 생활을 하는 어민·사냥꾼·채집인 집단의 최대 크기는 약 500명임을 알 수 있다. 19~20세기까지 존속한 수렵·채집인 사회를 연구한 약 300건의 자료를 종합하면, 평균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0.25명이었다. 가장 적은 값은 0.1명도 안 되었고, (제곱미터당 1명이 넘는) 가장 많은 값은 생선과 물범 같은 영양가 높은 (그리고 살진) 해산물을 먹는 정착 생활 집단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태평양 북서부에 살았던 인구 약 500명으로 이루어진 큰 집단은 해마다 이주 시기에 쉽게 잡을 수 있는 연어에 의존했다그리고 연안에서 작은 고래도 사냥했다. 그러나 큰 정착 공동체를 지탱할 만큼 식량 공급이 풍족한 환경은 거의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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