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도시의 미래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필요하다
‘책의 도시’는 이어가야 할 유산이다
‘책의 도시 전주’의 표어는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입니다. 시민들의 삶과 도시의 변화, 전주의 정체성과 이상을 실현할 가장 가치 있는 바탕을 책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아울러 시민들의 삶도 자연히 녹아들어 우리 도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길 바라는 소망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삶 자체가 도시 브랜드가 될 때, 그 브랜드는 가장 견고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전주가 책으로 하나의 도시 장르가 되는 꿈을 꾼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출판문화 클러스터, 전주
‘책의 도시 전주’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직원들과 시민들에게 강조했던 주제 중 하나는 ‘책의 도시 전주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였습니다. 그 뿌리는 바로 천년 역사를 가진 전주 한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동희 교수는 한지의 역사성에 관한 논문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후백제 견훤은 고려 왕건에게 부채를 선물하였고, 고려 충렬왕 6년1280 정가신은 전주에서 관리를 지내 한지 뜨기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전주를 종이의 고장이라고 예찬하였다.
─ 이동희, 「전주 한지의 역사성에 관한 기초적 고찰」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전주는 최고의 한지를 생산했습니다. 한지 장인이 생산해 낸 종이가 중앙정부에 전해져 외교 문서와 국가의 공문서, 중앙정부가 의뢰한 서적출판 등에 쓰였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주한지는 대체불가한 필수품이었지요. 종이는 인간 사유의 물질성을 확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매체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정신도 기록되지 않으면 전달될 수 없고, 전달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마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한지의 역사는 조선시대에 전주가 책의 도시로 자리 잡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명불허전, 전주는 조선시대 명실상부한 책의 도시였습니다. ‘완판본完板本’의 탄생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완판본은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完山의 ‘완完’과 목판木板의 ‘판板’에서 온 것으로, 조선 후기 전주에서 상업 목적으로 출간한 방각본坊刻本을 일컫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조선시대 전주에서 출간된 책을 말하기도 하지요.
전주는 조선시대에 전라남북도,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위치한 곳입니다. 현재 전라감영은 2020년에 복원했는데, 이곳에 한지를 생산하던 ‘지소紙所’와 책을 인쇄하고 출판하는 ‘인출방印出房’이 있어 공공출판을 담당했습니다. 방각본이 나오기 전까지 조선에서는 주로 관청을 중심으로 출판이 이루어졌는데, 국가기관인 교서관과 지역에 있는 감영이 중심이 되었지요. 간행 주체에 따라서 전라감영이나 전주부처럼 관청에서 출판한 것을 관판본, 사찰이나 서원, 문중에서 출판한 것을 사판본이라 합니다. 한편, 전라감영을 완산감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간한 책들을 완영본이라고 했습니다. 완영본은 국가의 통치 이념이나 전라감영의 관할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서적들, 또 주로 사대부를 위한 책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중앙정부가 요청한 책을 출간해 보내기도 하고, 전라감영의 책임자인 관찰사의 지시로 정치, 역사, 유학, 제도, 의학, 군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책들이 간행되었습니다. 특히 전라관찰사가 전주부를 총괄하는 전주부윤을 겸직했기에 당시 전주부는 조선시대에 단일 도시로서 가장 많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전주는 조선시대 최고의 출판문화 클러스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적, 인적, 환경적, 기술적 자산들은 개인이 발행하는 사간본私刊本과 판매용 책인 방각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태영 교수는 『완판본 인쇄·출판의 문화사적 연구』에서 이렇게 많은 책을 발간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을 적고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출판산업 클러스터의 조건’이 되겠지요. 목판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나무를 다루고 목판을 만드는 기술자,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각수, 닥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 종이를 만드는 장인, 좋은 먹과 지식인, 책을 출판하고 유통하기 위한 자본과 시장 등을 제시합니다. 전주는 이렇게 많은 조건들을 이미 충족하고 있었고, 당시 대중문화의 정수인 판소리의 흥행은 전주의 출판문화산업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의 책 읽는 도시
조선시대 양반들이야 책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지만 서민들에게 독서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일단 한자를 몰랐기에 한문 서적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요. 다행히 한글 창제 이후에는 서민층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됩니다. 이민희 교수의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 관계 연구』를 보면, 16세기에 이미 서울로부터 사대부를 대상으로 한 서적 중개상 ‘책쾌’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로 소수의 양반에 한정되었던 책쾌의 활동이 18세기 중반 세책점이 생겨나면서 비로소 서민층까지 확대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책점은 돈을 받고 필사본 소설을 빌려주는 점포를 말합니다. 책쾌와 더불어 세책점 역시 조선시대 서민층의 독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 지역적으로 또 신분상으로도 모두가 책을 즐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윤석 교수는 『조선시대 상업출판』에서 세책점의 출발을 18세기 중반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아쉬운 점은 이 세책점들이 20세기 초까지 서울로 한정돼 있어서 지역의 서민층들이 세책 문화를 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18세기 후반에는 조선의 이야기꾼, 전기수가 등장합니다. 재담 넘치는 전기수들은 마을이나 시장판, 양반집을 넘나들며 소설에 연기를 더해 조선의 이야기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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