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에 가면 또 산더미 같은 원고 마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하는 게 전혀 즐겁지 않은 시절이었다. 길을 걷다가 웃으며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건널목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여기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일을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이때 느낀 섬뜩함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끔 친구들에게 이 경험을 이야기하면 놀랍게도 열에 여덟은 비슷한 상상을 해 봤다고 말한다. 다들 그게 아니면 일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때의 우리는 그런 상태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번아웃’이라는 걸 안다.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중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겪었다는 사람이 33.9퍼센트에 달한다. 『번아웃의 종말』에서는 ‘번아웃’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에 대한 이상과 실제로 일하며 맞닥뜨리는 현실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라기보다는 소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유지되는 것.
번아웃이 진짜 무서운 건, 일하느라 자신을 태워 없애면서도 일만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전의 내가 일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무언가가 강제로 나를 멈춰 주길 간절히 바랐던 이유 또한 일하지 않는 나'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에 투신해 지쳐 쓰러져 가는 내가 정말 ‘쓸모 있는’ 인간 같아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번아웃을 겪는다는 건 성실하고 유능한 노동자라는 증표와도 같았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자신을 불태워 왔다.
─ 황효진, 『일의 말들』, 유유2025,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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