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흔한 질문에 대한 사적인 변명
인터뷰 때나 초대받은 자리에서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이미 어른인데 어떻게 아이들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하는가, 혹시 작품을 위해 아이들을 관찰하거나 취재하는가,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만한 동화를 쓸 수 있나 하는 것들이다. 초등학생의 질문은 꽤 직접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되는 방법이 뭐예요?” “베스트셀러 작가 되면 돈 많이 벌어요?”
동화 작가를 만나면 으레 던져 보는 질문 같기도 하고, 정말로 비법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은 것 같기도 한데 나로서는 매번 대답이 쉽지 않다. 기본을 건너뛰어 지름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맞춤한 답을 내가 알고 있나 의문이 들기도 해서 말이다. 설령 핵심 정보가 있다고 한들 나의 대답이 질문자의 몫이 될 리 없다는 사실은 문학에 작은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문학 작품이란 창작자의 몸을 관통하는 결과물이다. 나로서는 독서를 많이 하라거나 지치지 말고 열심히 쓰라거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관찰하라는 다소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려서 말할 게 없기도 하고, 창작자의 중요한 태도나 작법을 알려 준다고 해도 질문자에게 맞춤한 답이 되기 어려운 줄 알기 때문이다.
뻔하다고 했으나 이 답은 매우 중요한 내용의 간단한 표현이다. 혹시 아이들을 관찰하거나 취재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과정을 놓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의 쓰기는 늘 분석하고 계산한 작업 계획서에서 출발한다. 현실의 아이들을 관찰해서 묘사하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취재도 인터뷰도 해야겠으나 나는 이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 주변에 모델로 삼을 만한 어린아이도 없고 그런 시도를 해 본 일도 거의 없다. 주변 인물을 모델 삼아 취재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그 모델로 인해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동화를 잘 쓰는 비법에 대해서든 베스트셀러가 되는 비법에 대해서든 나는 늘 대답이 궁색한 사람이다.
동화가 서사 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다. 이런 대답이 질문을 회피하거나 사적인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동화는 서사 요소를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라는 인식은 중요하고 나의 경험을 곁들여 전개하려는 이번 저작의 핵심이기도 하다. 서사 요소를 기반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야 이야기 전개나 인물의 심리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고 베스트셀러의 기회도 생기지 않겠나.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니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화 창작에는 ‘무엇’, ‘어디서부터’, ‘어떻게’가 모두 중요하고 이밖에도 갖춰야 할 미묘한 주요 조건들이 꽤 많다. 그러므로 동화 창작의 기반에 해당하는 ‘주요 조건’들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설명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 책에서는 동화와 그림책을 예로 활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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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동화
어린이란 무엇일까
동화 창작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린 사람. 어른과 구별되는 사람. 순수한 존재. 보호가 필요한 존재. 취약한 대상 등등. 어린이를 규정하는 표현들이야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동화 창작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어린이에 대해 자주 이렇게 말한다.
모호한 존재.
알려고 들면 더 모르겠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란다. 우리 모두 어린이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답을 알고 있을까. 천만에. 나 역시 이 대상을 이해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다. 동화를 쓰게 되면서 어린이라는 대상에 집중하는 버릇이 강해지기는 했다. 생각해 보니 창작 이전부터 나는 어릴 때 감정을 제법 기억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외로웠던 경험, 슬프고 억울했던 일 때문에 그런 감정이 더 선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유독 그런 상대에 마음이 쓰이고, 그 마음이 어떨지 알 것도 같다. 그러해도 여전히 이 존재는 해독이 쉽지 않다. 어른이 제각각이듯 어린이도 사람마다 다르고 성장 변화가 빨라서 내가 알던 아이가 어제의 아이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어린이와 소통하거나 동화 창작을 원한다면, 이 존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 입장이 돼 보려고 하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우리 모두 한때는 아이였으니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깡그리 잊은 건 아니니까.
동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당연히 어린이다.
흔히 동화를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를 위한’이라는 이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린이를 위해 이 문학에 매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다. 순수하게 문학적 충동에 의한 이 작업을 그런 말로 포장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고백하자면, 어린이를 위해 봉사 활동이라도 하는 것 같은 ‘~를 위한’이라는 표현이 나로서는 낯간지러울 뿐만 아니라 불편한 게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화는 우리 모두에게 통하는 우리 모두의 전유물이다.
동화는 작가가 사회의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어린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접근하는 문학이고, 어른과 같은 공간에 놓인 어린이 편에서 사유하는 문학이며,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학이다. 이것이 창작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요점이다.
창작에 필요한 조건들을 살피기 전에 동화의 특징과 어린이 개념을 간단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동화는 서사 문학의 요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어린이의 이해를 중심에 둬야 하므로 소설과 달리 좀 더 어린이 시각에 맞춰진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시대마다 문화마다 달랐다.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다운 옷을 입히고, 어린이에 맞는 놀이와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해 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다. 지체 높은 집안의 아이가 아니면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고, ‘이 녀석, 저 녀석’ ‘아들놈, 딸년’ ‘자식놈’ ‘애녀석’ 같은 소리를 당연시하고, 음식이며 노동에서도 어른과 구분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어린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리 없다. 걸음마를 떼면 어른 일손을 거드는 게 당연하고, 음식이며 놀이 등 일상의 모든 걸 어른과 공유하다가 근대에 이르러서야 어린이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잡지 『청춘』 창간호1914에 악보와 함께 실린 시 「어린이의 꿈」에서였다고 한다. 이 시에서 어린이는 악보의 제목에만 있고, 시적 화자로서의 의미나 시상 전개로 살펴보았을 때 어린이는 『청춘』의 주 독자층은 ‘젊은이’로 이해된다. 방정환에 이르러서야 ‘어린이’는 ‘젊은이’와 구별되어 보통 명사 ‘어린이’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 용어는 이전과는 다른 심상으로 새로운 가치와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다. 현재 우리 사회의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분명히 달라진 것도 있을 테지만 어떤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기도 하다. 어린이는 여전히 어른의 강요와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어린아이다움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동화를 통한 작가들의 발언이 필요하다.
어린이는 신체적으로 미숙하고 경험이 충분치 않은 존재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시계에 맞춰 성장할 권리가 있고, 동화는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세상을 배워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동 문학과 동화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동화는 아동 문학의 한 분야이고, 동심을 기반으로 한 서사 형태라는 점을 밝힌다.
동심이란 말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라는 해석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심을 기반으로 한 동화에 대해 ‘어린이 독자를 위해서 어른 작가가 지은 이야기’로 설명하는 건 사실일지라도 동화의 정의를 축소하는 표현이다. 동화 수용자를 어린이로 한정 짓는 태도이자 작가를 어린이와 분리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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