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고고呱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 유별한 풍경이 하나 보입니다. 사돈네 팔촌까지 새로 태어날 아이의 이름 짓기에 나섭니다. 누구는 태몽을 담자고 하고, 누구는 항렬을 따집니다. 누구는 예쁜 이름이라며 추천하고, 누구는 복 들어온다는 이름을 건넵니다. 아이의 운명이 이름에 달리기라도 한 듯 지극정성을 기울입니다. 어떤 이름이든 앞날을 위한 소망과 축복이 담깁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름에 담긴 축복과 소망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 기억의 되새김질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국호國號라고 하지요. 국호는 그 나라를 가장 먼저 만나고 이해하는 통로입니다. 자신들이 내세우고 싶은 역사, 지향, 체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국호는 그 나라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그 상징이 구성원에게는 자긍심과 동질감을 줍니다. 국호를 외치는 순간은, 그 자긍심과 동질감을 함께 나누고 되새김질하는 순간입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순간, 여러분도 그렇지 않았나요?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왜 대한민국일까요? 질문이 좀 이상한가요? 어쨌든 궁금합니다. 국호 대한민국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을까요? 그 이름에는 어떤 꿈이 깃들어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언제, 어떻게 국호가 되었을까요? 어떤 이름들이 경쟁했을까요? 이름짓기가 한창인 헌법의 순간으로 가보겠습니다.
전 세계 국가는 대부분 자국 헌법에 국호를 명시합니다. 물론 “국호는 무엇이다.”라는 조항을 둔 헌법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헌법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다고 밝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헌법의 이름이 ‘대한민국 헌법’입니다. 헌법전문에서는 우리를 “대한국민”이라고 부릅니다.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1950년에는 헌법 조항을 토대로 「국무원고시 제7호」를 발표해 국호 사항을 더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정식국호는 ‘대한민국’이고 편의상 ‘대한,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헌법의 순간이 펼쳐집니다. 모든 탄생의 순간이 그렇듯 광복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나라도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국호는 이미 해방이 되자마자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1946년 발표된 이태준의 소설 『해방 전후』에도 등장인물들이 국호를 두고 고려니, 조선이니, 대한이니 입씨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사람들 의견은 분분했지요. 그 의견들을 갈무리하며 헌법에 국호를 담는 일은 제헌국회의 몫입니다. 그 일이 간단치 않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만합니다.
1948년 6월 23일, 헌법기초위원회는 헌법초안헌법안을 보고합니다. 먼저 서상일 헌법기초위원장이 앞으로 진행될 헌법 토의 과정을 설명한 다음, 헌법기초위원인 조헌영 위원이 10장 102조로 구성된 헌법안을 낭독합니다. 낭독이 끝나자 서상일 위원장이 헌법안 구성 체계를 설명하고, 곧이어 유진오 전문위원이 헌법안의 기본정신과 주요 쟁점 사항을 언급합니다. 다음 회의는 3일 뒤인 26일에 열기로 하고 낮 12시 무렵에 첫 회의를 마칩니다. 헌법 조항들을 살펴보고 질문을 준비하거나 서면질의서를 작성할 말미를 준 것입니다. 26일 오전 10시에 헌법 제1독회가 시작됩니다. 3일 동안 제출된 서면질의서가 꽤 높이 쌓였습니다. 첫 서면질의는 국호 문제입니다. 곽상훈 의원과 권태희 의원이 작성한 질의서에서, 국호를 대한으로 정한 의의와 근거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마가 훤칠한 서상일 위원장이 마이크 앞에 섭니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도 국호 문제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실제로 당시 언론은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벌어진 국호논쟁이 치열했다는 사실을 연일 크게 보도했지요.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보도를 안주 삼아 옥신각신할 정도입니다. ‘대한, 고려, 새한, 조선’ 등이 후보로 입에 오르내립니다. 6월 9일 자 신문들은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벌어진 갑론을박을 소개하며 네 개의 국호가 불꽃 튀게 경쟁했고, 대한민국이 최종 승자라고 보도합니다.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라는 표결 결과도 함께 전합니다.
대한민국이 최종 승자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서상일 위원장이 그 배경을 설명합니다. 나라를 되찾았으니 빼앗긴 이름을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던 듯합니다. 아울러 3·1혁명 후에 생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승만 의장이 국회 개원식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별 이의가 없었다는 점도 거론합니다.
대한이라고 하는 말이 청일전쟁의 마관조약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그때 대한이란 이름이 정해진 것이올시다. 그랬는데 한일합병으로 말미암아 없어지게 된 것이올시다. 3·1혁명 뒤에 해외에 가서 임시정부를 조직해 그때도 대한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이 국회제헌국회가 처음 열릴 때 의장 선생님이승만이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36년’이라는 연호를 썼는데, 이 헌법 초안에서 국호를 함부로 정할 수가 없어서 일단 ‘대한’이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 서상일, 「제헌국회 회의록」 제1회 18호
서상일 위원장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일단 ‘대한’이라는 이름이 청일전쟁 뒤 1895년에 체결된 마관조약馬關條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조선’이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대한이 처음 등장할 때는 1897년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세상에 알려집니다.
의아합니다. 서상일 위원장이 그렇게 말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물론 잘못 알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꺼림칙합니다. 대한이라는 국호가 청일전쟁 뒤에 생겼다는 유사한 주장이 있었고, 이 잘못된 내용을 퍼트린 장본인은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正毅입니다. 1910년 8월 16일, 이완용은 일제가 자행한 한국 병탄에 협력하지만 민심의 저항이 두려워 데라우치에게 두 가지를 청합니다. 국호는 전과 같이 한국으로 하고, 왕실을 우대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마사다케는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이라는 국호는 청일전쟁 후 일본이 권해서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혹시 이런 인식이 널리 유포된 건 아니었을까요? 물론 데라우치가 했다는 이 말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앞뒤도 맞지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한국이라는 국명이 자신들이 권해서 붙인 이름이라면 왜 그토록 한국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했을까요?
서상일 위원장의 설명에는 부정확한 부분이 또 있습니다. 이승만 의장이 제헌의회 개원식에서 사용했다는 ‘대한민국 36년’ 연호는 아마도 ‘대한민국 30년’을 말한 듯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하자면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맞습니다. 서상일 위원장이 착각하지 않았다면 속기사의 단순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역사적 혼동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 서상일 위원장이 한 발언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그는 분명히 “3·1혁명 뒤에 해외에 가서 임시정부를 조직해 그때도 대한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해외에 조직한 임시정부, 바로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말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승만 의장이 국회 개원식 축사에서 한 말을 살펴볼까요?
이 민국은 기미년1919년 3월 1일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즉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정의 계승이니 (…)
두 사람 발언에서 중대한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서상일 위원장과 이승만 의장은 계승 대상으로 다른 것을 지목합니다. 둘 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말하지만 같은 임시정부가 아닙니다. 서상일 위원장은 해외에 조직된 임정이라 하고, 이승만 의장은 서울에 수립된 민국임정이라고 합니다. 어찌 된 걸까요? 확실한 것은 기미년에 ‘대한민국’을 국호로 내건 임시정부는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이승만 의장이 말한 서울에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한성정부입니다. 나중에 한성정부와 상해 임시정부가 통합하긴 하지만 이승만은 기미년에 서울에 세워진 한성정부를, 마치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인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닌 한성정부를 계승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면서도 연호는 ‘대한민국 30년’으로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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