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계급전쟁으로서 기후변화
우리는 여전히 지는 싸움을 하는 중이다
대체로 이런 부류의 책들 대부분이 기온 상승,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 극심한 가뭄 등 기후변화의 끔찍한 과학적 사실을 늘어놓으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미 상황이 절박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책을 펼쳤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전례 없는 사회적 변화를 신속하고 전방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행할 수 있는 시간이 12년2022년 기준 8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언했으니 말이다.
빌 맥키번이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인류가 “지고 있다”고 끊임없이 지적한 것 또한,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냥 지는 게 아니라 참패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코로나19라는 전 세계 보건 비상 상황 덕분에 [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2000년 후반부터 다시 배출량이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와 가스, 석탄 발전 신규 투자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화석 연료가 2020년 기준 전체 에너지 공급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한 재생에너지 단체는 2021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이후 변함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살필 때 ‘승리’ 여부를 측정하는 유일한 요소가 배출량이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후 행동에 나서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2019년에 청소년 기후 파업과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등 대규모 거리집회가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흐름이 꺾이고 말았다. 2021년에는 많은 화석연료 기업이 투자자의 압박에 못 이겨 새로운 배출량 목표를 야심차게 제시했다. 일부 석유 및 가스 기업은 2050년까지 배출량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자본 부문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라는 이름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기후 위험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몇 년간 기후변화를 부정했던 암담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고2021년 새로 선출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위기에 전국가적으로 접근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의 50퍼센트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게다가 주요 배출국인 중국도 2060년까지 배출량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언했다.
이렇게 2030년, 2035년, 2050년, 2060년이라는 시한까지 특정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이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국제 기후 협상에서 각각 2005년과 2020년까지를 목표 시한으로 삼았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아차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면적으로 화석연료로부터 신속하게, 실질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데, 실상 진전은 없다.
공언한 것과 다르게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기후 정책은 실제로는 인프라 법안이었으며, 2030년까지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필요하리라 여겨지는 재정 공약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현재2022년, 긴축 성향의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양당 합의에서는 투입할 재정을 더욱더 줄이고 있으며, 이에 여러 기후 활동가가 기후 관련 조치를 하나라도 포함해 달라고 간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패턴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기후 행동을 공약한 유일한 정당인 민주당이 2022년 의회 선거에서 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석유와 가스 기업의 신규 임대를 “중단”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기존 부지 임대 건수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비슷하다.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바이든 행정부는 공공 부지에서 1179건의 시추를 허가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 3개월간 최대약 1400건로 시추를 허가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수치는 공공 부지 시추 허가만 추린 것으로, 민간 부지에서 계속되는 화석연료 추출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책은 기후운동이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며, 지지 않을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해 보려고 한다. 이는 권력power의 문제다. 제인 매클레비가 지적하듯, 사회운동이 힘을 기르려면 “성공하기 위해 이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 또는 설득해야 할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권력구조 분석”을 먼저 실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들에 맞서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한다. 이 권력투쟁이란 물질적 생산의 소유권과 통제 간의 관계, 즉 인류가 자연, 기후와 맺는 사회적·생태적 관계의 토대에 관한 계급투쟁이라는 것이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이 책에서 나는 계급을 새롭게 ‘생태’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가 계급 문제라는 점을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겠다. 첫째, 기후 투쟁이 생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 그러려면 계급이란 “생산수단”과의 관계라는, 전통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명제가 구시대적이고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중반의 대규모 산업화와 노동자 조직화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생태 붕괴를 걱정한다면, 현재의 산업 생산을 여전히 문제 삼을 수 있다. 사실 인류가 자연과 맺는 모든 관계는 생산관계, 즉 식량, 에너지, 주택, 기타 생필품의 생산 방식으로 귀결된다. 21세기 자본주의하에서 이뤄지는 생산에는 온갖 종류의 소위 비물질 노동immaterial labor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지식 생산도 배출량, 기후위기와 연관된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예를 들어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세상은 에너지 집약적인 서버 팜server farm이라는 물질세계에 의존한다. 이렇듯 생산 중심 접근 방식은 조직화의 에너지를 집중해 맞서 싸울 대상이 자본가 계급 중에서도 화석연료 에너지 생산을 통제하는 부문이나 철강, 시멘트, 2장에서 나열하는 산업질소 비료처럼 탄소 집약적인 산업 부문의 특정 계급임을 알려 준다. 6장에서는 전기 생산과 더불어 투자자가 소유하는 민간 전기 산업, 즉 여전히 화석연료를 태우고 있고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을 살핀다.
둘째, 특정 계급, 즉 전문직 계급이 기후운동의 형성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 기후 활동가 대부분은 NGO 활동가, 과학자, 언론인, 싱크탱크 분석가, 예비 전문직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전문직 계급은 역사적으로는 전후 고등교육의 급속한 확대와 미국 등의 국가에서 대규모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가 이뤄지면서 급성장했다. 따라서 전문직 계급을 그들이 생산과 맺는 관계로도 정의할 수 있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과 마찬가지로 생산과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과 달리 전문직 계급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정신노동’, ‘지식노동’ 혹은 ‘인지노동’을 수행함으로써 노동시장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식경제는 산업적 대량생산과의 시공간적인 거리로 규정되는 특정한 ‘탈산업화’된 노동 형태다. 이는 기후정치에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전문직 계급의 기후정치에서 자신들의 비교적 편리한 소비 습관만을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보게 되었다그러면서 이들은 산업 생산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다른 하나는 교육이 계급 형성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전문직 계급의 기후정치는 기후위기와 생태 붕괴에 관한 과학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전문직 계급은 자원과 권력에 관한 물질적인 투쟁이 아니라 기후변화 그 자체에 관한 ‘지식’이나 믿음 혹은 불신을 기후정치의 중심에 둔다. 또한 전문 지식을 모아 충돌을 피하는 ‘스마트’한 정책 개정안을 제안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온갖 논리와 훌륭한 인센티브가 넘치는 이런 정책 개정안도 대중에게 어필하거나 더 명확하게 물질적인 이점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문직 계급의 기후정치에는 ‘체제 변화’, ‘기후정의’, ‘탈성장’ 등을 요구하는 ‘급진적’인 부류도 있지만, 이들도 화석연료 산업에 맞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대중운동을 어떻게 건설할지에 관해서는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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