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고 생각된다면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야기야. 수업 시간에 자습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읽어 주는 선생님이 있었어. 수업에 성의도 없고 전문성도 없었어. 마음으로 학생들을 품어 주지도 못했고 말이야. 내 마음에서 그 선생님은 어떤 권위도 갖추지 못했어. 한번은 그 선생님 말에 또박또박 말대꾸했더니 선생님이 교단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라.
“너처럼 버릇없는 학생은 처음이야.”
그러면서 내 뺨을 제법 세게 때렸어. 인생에서 처음이자 단 한 번 있었던 ‘싸대기 사건’이었어. 내가 전혀 존경하지 않는 선생님이 날 때렸다는 것에 화가 나서 나는 머리를 묶었던 플라스틱 머리핀을 빼서 교실 바닥에 냅다 던지며 “에이 씨!”를 외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어.
그때 열여덟 살이었고, 사춘기의 절정이었어. 나는 모든 걸 의심했어. 왜 의무적으로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하지? 왜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전교 30등까지 적은 명단을 공개적으로 붙이는 거지? 왜 공부 잘하는 학생만 따로 학급을 꾸려 보충수업과 자율 학습을 하는 거지? 왜 교과서의 모든 지식을 달달 외워야 하지? 왜 다른 친구들과 성적 경쟁을 해야 하지? 왜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전교생 조회를 하는 거지?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무럭무럭 피어나는 의심은 반항으로 이어졌어.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서 전교생 조회를 할 때 거기에 줄 맞춰 서 있기 싫었어. 서 있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 친구와 학교 뒷산으로 도망갈 때가 많았어. 산 중턱 나무 아래에 친구와 쪼그려 앉아서 숲의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 들으면서 수다 떠는 월요일 아침이 내겐 더 즐겁더라고. 월요일 아침은 원래 즐겁게 시작해야 하지 않아?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모의고사를 보면 전교 30등까지 이름을 적은 종이를 학교 복도에 붙였어. 그리고 그 아이들만 모아 야간 보충수업을 하고, 새벽 자율 학습을 했어. ‘심화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야. 나도 어쩌다 심화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침 7시까지 등교해서 한 시간 동안 자율 학습을 해야 했어. 의무 사항이었어. 아침에 교실에 앉아 있으면 친구들 대부분이 꾸벅꾸벅 졸거나 자는 거야. 수면 시간이 부족한 상태니까 당연한 일이었겠지. 이걸 계속 강행하는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반항심이 부글부글 끓었어.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 심화반 출석부를 쓰레기통에 확 처넣어 버렸어. 심화반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었어.
게다가 밤 10시까지 의무적으로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해야 했는데, 나는 그 일반적인 ‘명령’을 수긍할 수 없었어. 무단으로 야자를 째는 날이 많았어. 전원 다 자율 학습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가만 보니 선생님들은 대체로 빈자리를 체크하면서 출석을 확인하더라. 야자를 째는 방법은 내 책상과 의자를 화장실에 빼 놓고 도망가는 거였어. 그래도 들통나기도 했지만 말이야.
아마 나는 그때 담임선생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학생이었을 거야. 선생님은 수시로 야자를 빼먹고 도망가는 학생을 불러서 혼도 내고 달래기도 하느라 바빴을 것 같아.
한번은 야자를 째고, 춘천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천구서적’에 갔어. 열여덟 살의 나는 현실 세계를 의심하고 책의 세계로 도망가는 걸 좋아했거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졌던 시기였어. 서점에서 저녁 내내 책을 보다가 집에 돌아간, 나름대로 평화롭고 보람 있는 밤이었지.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더라. 선생님 표정이 심각했어.
“야, 서현숙! 너 어제 또 야자 안 했니?”
“예.”
“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
“너 어제 야자 안 하고 어디 갔었니?”
“서점에 갔는데요.”
“그래? 서점 가서 무슨 책 봤어?”
“헤르만 헤세 책이요.”
“너 야자가 그렇게 싫니?”
“예.”
“후……, 앞으로 야자 빠지고 서점에서 무슨 책 봤는지, 책 제목이랑 내용 적어서 나한테 내. 그러면 서현숙 야자 빠지는 거 인정해 줄게.”
책 내용을 적어 내면 야자 무단결석을 인정해 주겠다는 교사는 흔하지 않았어. 교사는 학생의 성실한 학교생활을 지도하는 사람이니까. 더구나 당시는 교과서 외의 책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지. 오로지 교과서만을! 교과서 외의 책을 읽는 것 자체를 공부로 여기지 않는 학교였고 그런 사회였어.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으면 혼나고 책을 빼앗겼어. 그런 시대에 몸을 푹 담근 채 살아가는 어른이 나에게 허락한 내용은 대단한 파격이었어.
야자 불참은 늘 꾸중을 듣는 사유였는데, 담임선생님에게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된 거지. 야자를 하지 않았다고 어른이 혼낼 때 난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는데, 학교의 어른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나서 반항심의 농도가 옅어졌어. 더 열심히 서점에 가고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긴 거니까. 만약 야자 불참을 허락해 준 담임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마 나는 더욱 반항적인 열여덟 살이 되었겠지. 세상과 권위에 대한 무궁무진한 의심이 부글부글 끓다가 부정적인 기운이 뻗쳐 나갔을지도 몰라.
참, 앞에서 이야기했던 ‘싸대기 사건’은 어떻게 되었냐고? 수업 시간에 말대꾸하며 대들었던 나를, 다른 선생님들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소문이 났던가 봐. 나를 대하는 선생님들 표정에서 냉랭함을 느꼈어.
싸대기 사건이 있던 계절은 여름이었어. 더운 공기가 꽉 차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던 여름 저녁에 자율 학습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아무 말 없이 학교 앞 분식점에 데려가서 떡볶이를 사 주셨어. 그러곤 별말 없이 떡볶이를 먹기만 했어. 정말 대화가 없었나 봐. 선생님 치아가 좀 안 좋았는지, 앞니로 떡볶이를 끊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던 기억만 나는 걸 보면 말이야. 별말은 없었지만 전해져 왔어. 열여덟 살의 나를 내치지 않는 마음의 힘. 떡볶이만큼이나 빨갛고 더운 마음이었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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