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농민, 기후 위기의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혹은 해결사인가?
1만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는 온난 습윤한 안정적인 기후 조건으로 전환되었다. 이른바 ‘홀로세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의 시작이다. 기후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식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대륙 곳곳에서 농업과 함께 문명이 시작되었다. 인류는 수렵 채집 대신 한곳에 정착해 농업 생산을 시작했다. 인류 문명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손꼽히는 ‘농업 혁명’은 안정적인 기후 조건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변화다.
하지만 홀로세의 안정적인 기후는 최근 들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 활동, 특히 화석연료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원인이 되어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로 혼용되어 오해를 사지만,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가 따뜻해지는 현상이 아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면 100년에 한 번 일어날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더 자주 일어나고, 대기·해양·빙하 등 지구의 순환 시스템이 붕괴한다. 기후변화의 징후는 육상·해양 생태계 등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지만, 기후변화가 불러오는 피해가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농업이다.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등장한 농업도 기후 위기가 더 심해진다면 언젠가는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농업을 둘러싼 말, 말, 말
너무 우울한 전망 같은가? 하지만 이런 징후는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2021년을 예로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주요 밀 수입처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밀 수확량이 급감하고 밀 수입 가격이 폭등했다. 한편 전 세계 커피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브라질에서는 100년 만의 가뭄과 커피 재배지에 쏟아진 이례적 폭설로 원두 생산량이 전년 대비 20퍼센트 가까이 줄어들었다. 한편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극심한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밀 수출을 금지했다. 2022년 연평균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3.7로, 수치를 산출하기 시작한 1961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촉발한 전 세계 공급망 약화의 영향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때문에 식량 생산량이 줄어든 것도 가격 상승의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옥스팜의 팀 고어 기후 정책 책임자는 “향후 세계인은 주로 식량을 통해 기후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에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언론에서도 기후위기와 식량 위기에 관한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세계 7위 곡물 수입국, 1.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밀 자급률, OECD 최하위를 밑도는 곡물 자급률18.5퍼센트 같은 한국의 현실이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식량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와 대응 방안을 내놓는다. 국가적으로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한편에서는 해외 공급망 확보, 스마트 팜 같은 방식으로 식량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농사를 짓는 당사자인 농민의 집에서 기후 위기를 언급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는 하소연을 시작으로 각종 기상이변 때문에 발생한 농작물 피해를 취재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사라지는 꿀벌, 냉해로 까맣게 타 버린 배꽃, 수해로 초토화된 시설, 자포자기한 농민의 모습 등, 언론에 소개되는 농민은 대부분 수동적인 기후 위기의 ‘피해자’라는 위치에 머무른다. 우리 사회에서 농민이 주체적으로 내는 목소리는 기후 위기보다 오히려 농지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거세다. 기후 위기와 농업을 둘러싸고 언론과 전문가는 ‘식량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농민들이 당장 겪는 현실은 남아도는 쌀 때문에 쌀값이 폭락하고 농지가 태양광 시설 때문에 잠식되는 것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농민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정책은 정작 찾아보기 힘들다.
농업,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
한편 이른바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농업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범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탄소 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농업 분야도 예외 없이 온실가스 감축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농업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을까?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National Inventory Report, NIR’에 따르면,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 기준 전체의 3.2퍼센트를 차지한다. 배출처는 다양하다. 벼를 재배할 때 논에 물을 대는데, 이때 논물 속에서 유기물이 혐기 발효미생물이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유기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것되면서 메탄이 발생한다. 농경지에 비료와 분뇨를 뿌릴 때는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 축산 부문에서는 소가 사료를 소화할 때 발생하는 트림에서 메탄이, 그리고 가축 분뇨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메탄과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 메탄과 아산화질소의 온실효과는 각각 이산화탄소의 80배, 300배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생각보다 적은 양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3.2퍼센트라는 수치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농업 생산을 할 때 직접 배출되는 양만 계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농산물이 해외에서 생산되거나 수송될 때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은 빠져 있다. 물론 농경지에 투입되는 비료를 생산하거나, 가축이 먹는 사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빠져 있다. 농가에서 난방에 사용하는 에너지도 빠져 있다. 이러한 부분을 모두 고려한다면 먹을거리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얼마나 될까?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을 생산·수송·가공·유통·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축산은 주요한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13년 축산업의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4.5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 추산했다. 그중에서도 소고기의 탄소발자국은 특히 높은 편인데, 소의 장내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메탄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소를 방목하고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 같은 산림이 대규모로 파괴된다는 점에서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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