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돌봄과 폭력은 배타적이지 않다
길고양이 ①
고양이를 집 안에 들이기 시작한 기억
1986년 부산의 봄, 엄마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앉아서 고양이Felis catus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빨간 ‘다라이’ 하나에 새끼 고양이만 네댓 마리가 들어 있었으니 고양이를 정기적으로 생산해서 파는 할머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크기의 어린 고양이는 한 마리에 500원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는 엄마에게 고양이를 기르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꼭 짐승을 싫어하는 엄마가 아니더라도 부담이 되는 제안이었을 테고, 그 제안에 고양이 돌봄을 공동으로 책임지겠다는 전제가 없다는 것도 잘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고양이 입양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어린이를 잘 기르는 데에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긴 실랑이 없이 500원을 주고 고양이를 사주었다.
요즘 표현으로 ‘노랑둥이’, ‘치즈냥이’라고 부르는, 누런 줄무늬와 새하얀 털이 어우러진 고양이를 골랐다. 어린 고양이는 아직 눈망울에 멜라닌이 부족해 푸른 눈이 도드라졌다. 진주색은 아니었지만 진주처럼 둥글어서인지 진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고양이 전용 화장실 모래도, 고양이 전용 사료도 없던 시절이다. 세숫대야에다 동네 공터에서 퍼 온 모래를 넣고 사람이 먹고 남은 밥을 먹였다. 진주는 두루마리 휴지를 찢으며 노는 걸 좋아했고, 두툼한 솜이불 위에서 나와 낮잠을 잤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1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진주를 누군가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기억은 없다. 진주와 헤어질까 봐 걱정하며 울었던 기억은 있지만, 헤어져서 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양이를 중성화하는 사건이나 집 안에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길러야 한다는 관념이 낯선 시대였으니 아마 진주는 옮겨 간 집에서 어느 시점엔가 집을 나갔을 것이고, 집이나 병원이 아니라 어느 후미진 골목 길바닥에서 꽤 짧은 삶을 마쳤을 것이다. 지금의 여느 길고양이처럼.
인간과 고양이, 오랜 동거의 역사
길고양이가 발에 채이고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가 보호소에 줄을 서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품종묘가 아닌 고양이를 사고팔던 시대는 꽤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매년 한국 가정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의 수를 발표한다. 통계는 산출 방법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무척 부정확하지만, 꼭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꽤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처럼 개인이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거나 타인의 일상을 감상하는 미디어에서 고양이의 등장이 잦아진 것도 고양이가 늘어난 결과 혹은 이유일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는 가방에 츄르짜 먹이는 고양이 간식 몇 개 혹은 고양이용 간식 캔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안에 고양이를 들이기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집 밖에서도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원래 고양이는 집 안팎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과 살아왔다. 오랜 시간 인간은 집 앞의 마당이나 주변 공터까지도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고, 고양이는 그 ‘경계’에 살도록 진화적으로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가축화 이전의 고양이는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 야생의 비좁은 생태계 틈바구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지만, 농경을 시작한 인간이라는 종을 만난 뒤로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해졌다. 인간이 풍부하게 생산하는 먹이 자원과 그에 몰려드는 쥐는 그야말로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농작물을 놓고 쥐와 경쟁하던 인간은 고마운 마음에 고양이를 해치지 않고 곁을 내줬다. 인간과 고양이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구 밀도가 높지 않던 시절에는 인간을 따라 원서식지를 떠난 고양이가 새로 정착한 지역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지 않았다. 인간도 적었고, 먹이 자원도 적었고, 고양이도 적었다. 그 시절의 인간처럼 적당히 죽고 적당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 증가는 주거지의 면적을 넓혔고, 인간이 사는 범위가 넓어지자 고양이의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양이의 천적도 야생에서 절멸하여 고양이의 개체 수는 생태적으로 조절되기 어려워졌다. 고마웠던 고양이는 어느새 ‘도둑’이 되었다.
그리고 또 몇십 년이 흘러 ‘도둑고양이’라고 미움받던 고양이들은 다시 ‘길냥이’, ‘동네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환대받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아니라도 예뻐하고 돌보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집 안에 사는 고양이도, 집 밖에 사는 고양이도 인상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그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돌보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른바 캣맘cat mom, 캣대디cat daddy, 케어테이커caretaker 등의 신조어가 자리 잡은 것은 새롭고 유의미한 길고양이 돌봄 문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이유
내가 활동하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는 곰 13마리를 매입해 화천의 곰 농장에서 돌보고 있다. 3.5명의 활동가가 상주하며 곰을 챙긴다. 나는 매주 일요일, 트럭에 곰들의 먹이를 싣고 화천으로 향한다.
어느 일요일, 화천에 도착해보니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 앞에 고양이 밥그릇과 물그릇,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고양이 텐트가 놓여 있었다. 활동가들이 언젠가부터 농장을 들락날락하던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90세를 넘긴 농장주 할머니가 마당에서 밥을 주며 기르던 고양이들인데, 할머니가 편찮은 날이 많아지자 활동가들이 몸을 움직이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로 함께 결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주지 않기로 결정한 적도 없다. 아마 활동가들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논의를 거쳐야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농장에서 통제 없이 돌아다니는 고양이 몇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중성화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양이를 예뻐하는 주인 할머니가 반대하셨고, 몇 계절을 살펴보니 새끼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워 보였다. 어린 고양이들은 성체가 되기 전에 농장에서 기르는 개나 산을 돌아다니는 개, 혹은 야생동물에 물려 죽기 십상이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고양이만 어른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중성화를 하지 않아도 고양이 수가 늘어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중성화를 미루기도 했다. 주변 생태에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동물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야외 생활을 하는 고양이에게 본격적으로 밥을 주며 돌보기 시작한다면, 중성화를 미루는 이유가 되었던 조건들이 바뀌게 된다. 안정적인 먹이와 물을 공급하고, 비바람을 막아줄 집까지 지어주면 번식률은 확실히 오를 것이고, 다른 동네의 고양이들이 이쪽으로 모일 수도 있다. 농장에 고양이가 많아지는 것은 인간이 정해놓은 농장 주소지 경계 안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동물에게는 우리가 정한 지번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동물들은 농촌이냐 도시냐를 따지지 않고, 민가와 산속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화천의 곰 농장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고 제법 높은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쇠딱따구리, 참새, 직박구리, 까마귀, 물까치, 청설모 등의 야생동물과 시궁쥐가 농장에서 나오는 먹이 자원을 이용하며 살고 있다. 집 앞 개울에는 물까마귀가 살고, 그 위 하늘에는 맹금이 날아다닌다. 뒷산에 오르면 멧돼지와 노루, 산양의 흔적이 사방에서 발견된다. 시험 삼아 농장 뒷산에 설치한 트랩 카메라에는 우리 농장의 고양이들과 산양이 함께 찍혔다. 농장에서 배불리 밥을 챙겨 먹는 고양이들이 도대체 왜 힘들게 산을 오르고 야생동물과 산길을 공유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고양이가 일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라면 그 주변에 사는 동물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