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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과학
‘발견’과 ‘발명’이라는 거짓말
피나텍스와 생물해적 행위
인간이 처음 몸에 걸친 옷은 아마 사냥한 동물의 가죽이었을 것이다. 그 뒤 다양한 섬유들이 나왔지만, 모피는 꾸준히 인간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모피 사용을 문제라고 느낀 이들이 늘어났고, 21세기 들어 모피를 사용하지 말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모피 생산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동물의 처참한 환경 문제부터 모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문제까지, 모피를 이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인조 모피가 떠올랐는데, 그중 하나가 피나텍스Piñatex다. 피나텍스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카르멘 히요사Carmen Hijosa가 2013년 개발한 것으로,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를 부직포 형태로 만든 뒤 특수 처리를 통해 가죽과 비슷한 질감과 내구성을 갖게 했다. 히요사는 이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얻고 아나나스아남Ananas Anam이란 회사를 세워 피나텍스를 독점 생산·공급하고 있다. ‘아나나스’는 영어 외 다른 언어에서 파인애플을, ‘아남’은 산스크리트어로 창조를 뜻한다.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파인애플 잎을 이용하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가죽 대체재로 주목받아 나이키, H&M, 휴고보스 등 유명 브랜드가 이 소재를 이용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파인애플 잎에서 섬유를 추출한 나머지는 바이오매스Biomass로 만들어 다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피나텍스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아나나스아남은 필리핀에서 대규모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는 다국적 식품 회사 돌Dole로부터 파인애플 잎을 공급받는다. 돌에 파인애플 열매 이외의 수입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 문제가 많다. 먼저, 돌은 필리핀에서 중남미까지 세계 곳곳에서 많은 농장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은 작업환경에서 최저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방해하고 노동조합 지도자를 탄압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동노동 혐의가 있다. 또, 대규모 농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과도하게 농약을 사용한다. 대규모 단일 작물 재배로 수자원이 고갈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산된 파인애플 잎이 과연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일종의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주장한다.
물론 아나나스아남은 돌에서만 파인애플 잎을 사지 않는다. 초기에는 필리핀의 소규모 농가로부터 파인애플 잎을 샀다. 그러다 2016년 생산 규모를 확대하면서 돌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소규모 농가로부터 파인애플 잎을 사지만, 전체 구매량에서 돌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피나텍스에는 친환경 플라스틱인 폴리젖산Polylactic acid이 20% 정도 쓰인다. 폴리젖산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섬유로 만든 플라스틱보다 낫다고 볼 수 있으나, 일정한 조건이 아니면 분해가 잘 안된다.
마지막으로, 히요사의 특허 문제다. 필리핀 선주민들은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로 피나 직물pina cloth을 만들어 왔다. 선주민들이 피나 직물을 만드는 과정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을 정도다. 히요사는 필리핀에서 가죽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선주민들의 이 방법을 배웠다. 물론 아나나스아남은 피나텍스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전통 방법인 수작업으로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대량 생산이 힘들어서 현대적 화학 처리와 기계적 공정을 도입했다. 이렇게 피나텍스가 나오기까지 필리핀 선주민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아나나스아남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에 돌아간다. 선주민들의 노력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히요사가 현대적 기술로 재해석했다고 해서 전통 지식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주로 서구의 대기업들이 세계 각 지역의 선주민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지역 생물에 대한 지식과 유전자원genetic resources을 도용해서 독점적 수익을 올리는 것을 ‘생물해적Biopiracy 행위’라 부른다. 다르게는 ‘과학적 식민주의scientific colonialism’의 일부라 말한다. 16세기 이후 서양은 세계 각지에서 물자를 약탈하고 선주민을 탄압하며 자신의 부를 축적했다. 20세기 들어 대부분의 식민지인 측면이 남아 있음을 강조하는 용어다.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은 나머지 세계에 대해 아직도 강력한 지배력을 유지한 채 수백만 명을 착취하는 구조 위에 효과적으로 세워진다. 생물해적 행위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사실 피나텍스는 생물해적 행위 가운데 그나마 정도가 덜한 편이다. 한 예로 아야와스카Ayahuasca라는 음료가 있다. ‘아야’는 현지 케추아어로 영혼 혹은 조상, ‘와스카’는 덩굴을 뜻한다. 야게yage라는 식물의 덩굴줄기에 카크루나chacruna라는 관목 식물의 잎을 달여 만드는 환각제로, 아마존 열대우림의 여러 선주민 공동체에서 수천 년 동안 영적 의식, 점술, 심신증 치료에 사용되었다. 불안, 기분 장애 치료에 도움을 주지만 메스꺼움과 구토, 호흡 곤란과 발작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1986년 미국의 기업인 로렌 밀러Loren Miller가 야게의 변종인 다 바인Da Vine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밀러는 이 식물을 에콰도르의 정원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특허청이 특허를 인정하자, 아마존 선주민들과 환경 단체는 토착민의 전통 지식을 부당하게 상업화하려는 시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아마존유역선주민연합La Coordinadora de las Organizaciones Indígenas de la Cuenca Amazónica, COICA을 대신해서 국제환경법센터와 아마존연합이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COICA는 이 식물은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알려지고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1999년 미국특허청은 특허를 취소했다.
밀러는 즉시 항소를 제기하고 자신의 특허가 특정 변종에 대한 것으로, 기존에 알려진 식물과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2001년 미국 특허청은 밀러의 다 바인 변종이 기존의 야게와 구별된다고 부분적으로 특허를 인정하고 특허의 범위를 특정 식물 변종에 한정했다. 하지만 COICA는 이런 부분적 인정조차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특허는 2003년 만료되었다.
식물특허란 무엇일까?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거나 품종 개량을 통해 신품종을 만든 사람에게 20년간 해당 식물의 무성생식 부분을 생산·사용·판매할 독점적 권리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 유역의 선주민들이 수천 년간 잘 쓰고 있던 식물에 특허를 준다는 것이 말이 될까? 더구나 앞선 자본력, 미국과 유럽의 특허권에 대한 지식, 그리고 로비력이 필요해 주로 서양의 대기업이 식물특허를 확보하는데 말이다. 다 바인 특허는 생물해적 행위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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