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간다움의 언어
예술은 우리가 유일하게 가진 진정한 전 지구적 언어다. 드러내고, 치유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건드리며 일상적 삶을 초월해 실현 가능한 것들을 상상하게 해준다.
― 리처드 캠러 | 예술가, 활동가
우리는 예술이 지닌 변화의 힘을 알고 있다. 누구나 음악이나 그림, 영화, 연극에 푹 빠져본 적, 내면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변해가는 걸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이 너무 재밌어서 꼭 읽어보라며 친구 손에 쥐여준다거나, 어떤 노래가 정말 좋아서 그 곡을 듣고 또 들으며 가사를 전부 외운 적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기쁨과 영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며,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고, 심지어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경험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진짜이며 진실하다는 것을 언제나 느껴왔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술이 생존 자체에 필수라는 과학적 증거도 나왔다. 우리는 예술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지, 어떻게 삶의 질을 증진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인생의 순간순간을 이루는 미학적 경험이 기본적인 생명 작용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알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인간의 생리학적 작용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자세히 연구할 수 있게 된 데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예술과 미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파고들면서, 예술의 힘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학문이 부상 중이다. 바로 ‘신경미학’이라는 분야다. 더 널리 쓰이는 용어로는 ‘신경예술’이라고도 한다.
예술과 아름다움은 우리를 변화시키며, 그 결과 인생도 탈바꿈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예술이나 과학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 모두를 생각하며 썼다. 우리의 목표는 신경예술의 토대가 되는 요소들을 공유하는 것이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동료, 지역공동체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 영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예술을 그저 엔터테인먼트나 도피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도 꽤 많다. 일종의 사치로 취급하는 셈이다. 하지만 예술은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문제를 다루어 놀라운 결과를 안겨줄 수도 있으며 학습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뉴욕에 사는 어느 알츠하이머 환자는 옛날에 즐겨 듣던 곡들로 세심히 짠 플레이리스트를 듣고서 5년 만에 아들을 알아본다. 핀란드의 한 젊은 엄마는 산후 우울증을 빠르게 회복하고자 항우울제의 도움을 받는 한편 갓난아기에게 흥얼흥얼 노래도 불러준다. 버지니아에서 응급 현장 최초 출동자인 의료진, 소방대원, 경찰관은 일선 현장 대응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귀환 병사들은 PTSD를 극복하기 위해 가면 만들기 활동을 한다. 감각 경험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이스라엘의 암 전문 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환자들의 회복 속도가 더 빠르기로 유명하다.
세계 곳곳의 의료계 종사자들은 환자에게 미술관과 박물관 방문을 처방하고 있다. 디지털 설계자들은 집중력 장애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고 뇌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인지신경 과학자들과 손을 잡고 연구 중이다. 통증을 경감시키는 가상현실 프로그램도 있다. 또한 감각적으로 풍부한 환경이 더 빠른 학습을 촉진하고 정보를 더 장기간 보유하게 한다는 연구가 발표되어 많은 학교, 일터, 공공 공간이 재해석되고 재설계되고 있다.
전부 신경미학의 진전 덕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0세기 후반에 신경과학 분야가 공식적으로 탄생하며 뇌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신경예술 분야가 생겨나며 예술을 접한 인간의 뇌에 관한 증거가 유의미한 규모로 쌓이는 중이다.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이 쌓일 것이고 말이다.
10쪽에 실린 미술가 노먼 갤린스키의 작품 〈나선 무리Spiral cluster〉는 예술과 과학 간의 역동적 관계를 상징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작용과 관련된 발견들은 앞으로도 예술 기반의 개인 맞춤 예방과 웰니스 프로그램을 더욱 부상시킬 테고, 임상업계와 보험업계가 예술이 잘 사는 삶과 치유에 정말 도움이 된다는 증거에 확신을 얻으면 점차 주요 의료 서비스와 공중보건의 일부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단순하고 빠르며 접근 가능한 예술 활동은 삶의 질을 한층 올려준다. 이미 곳곳에서 미학을 극미량 처방하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욕지기를 잠재우는 데 특정 향을 사용하고, 신체 에너지 수준을 조절하기 위해 조명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불안감을 덜기 위해 특정 음조를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늘리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딱 20분간 낙서하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면 즉시 신체와 정신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 예술과 아름다움이 건강에 생리학적 이득을 즉각 제공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가 원가 많아 이 책의 제목을 『예술 20분의 효과』라고 지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 둘은 이 책을 만화경이라 생각했다. 각각의 이야기와 정보가 형형색색의 오브젝트와 아름다운 패턴, 그리고 그 안의 형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경은 아주 조금만 비틀어도 여러 면이 만들어낸 그림의 지각이 변하면서 전에는 보지 못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관념적이고 지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고 근본적이며 실질적인 면에서 그렇다. 과연 어떻게 그런지는 이제부터 자세히 알려주겠다.
미학적 사고방식
세상은 우리의 감각이 예리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마법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 익명의 누군가
미학적 사고방식이란 주변의 예술과 아름다움을 알아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목적의식을 가지고 삶에 들이는 것을 말한다. 미학적 사고방식을 가지니 사람은 네 가지 핵심적 특징을 보인다. 첫째는 강한 호기심, 둘째는 정해진 답이 없는 놀이, 셋째는 예리한 감각적 자각, 넷째는 창작자나 감상자 혹은 그 둘 모두의 입장에서 창의적 활동을 하려는 욕구다.
아일랜드의 시인 존 오도나휴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자각의 정수다.” 미학적 사고방식이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면서 주변 환경에 감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감각 경험과 꾸준히 연결될 수 있으며, 예술을 창조하고 미학적 경험의 가치를 알아보는 문 또한 활짝 열린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다음의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이 ‘미학적 사고방식 지표’ 테스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막스프랑크 연구소 경험적 미학 연구실의 인지신경 과학자 에드 베셀과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연구 도구 ‘미학적 민감성 평가the Aesthetic Responsiveness Assessment, 줄여서 AReA’를 모델 삼아 개발한 평가 도구다. 우리는 이 AReA를 약간 변형해 여러분의 미학적 사고방식을, 그리고 미학과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할 추가 문항을 넣었다. 지금 테스트를 한번 하고 이 책에 실린 아이디어 몇 가지를 실생활에서 시도한 다음, 한두 달 뒤에 다시 한번 해본 후 점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보기를 권한다. 각 문항을 읽고 아래 척도를 참고하여 자신에게 해당하는 빈도의 숫자에 동그라미 쳐보자.
이제 점수를 매겨보자. 평가 척도는 ‘미학적 가치판단’ ‘강렬한 미학적 경험’ ‘창의적 행위’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우선 미학적 가치판단은 경험과 환경의 미적 요소에 반응하는 정도를 말한다. 강렬한 미학적 경험은 보통 수준의 수용과 비교했을 때 미학적 경험에 주기적으로 매우 강렬하게 반응하는 정도를 말한다. 창의적 행위는 예술 작품 창작 등 창의적 활동에 참여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다음 단계를 마저 밟아 각 영역에 대한 점수와 총점을 내보자. 여기서 나온 총점은 미학적 민감성에 대한 총체적 단면을 나타낸다. 개별 항목 점수는 각 질문에 대한 점수를 더한 후 질문 수로 나누면 된다.
세 가지 항목과 총점에 비추어 자신의 미학적 민감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가장 마지막 등급표를 참고하면 된다. 예를 들어 미학적 가치판단에서 3점이 나오고, 강렬한 미학적 경험에서 2점, 창의적 행위에서 5점, 총점으로는 4점이 나올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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