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가 모르는 청년들
학교 도서관이 제 피난처였어요
센터로 전화가 왔다.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소개하며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찾아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
고립이나 은둔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본인이 연락할 때, 반가운 마음이 크다. 특히 직접 찾아와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프로그램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경우, 이미 그 청년의 적극성에 희망을 느낀다. 정민은 그런 기운을 주는 청년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들어서는 정민은 하얀 피부에 약간 통통한 체격을 가진 예쁜 여성이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지만 가끔씩 웃을 때는 눈이 반달 모양이 되며 선한 표정으로 변했다. 귀여운 곰돌이 혹은 정 많은 강아지. 주변 사람들이 정민을 볼 때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타고난 듯 울림 좋은 목소리는 사람 좋은 표정과 잘 어우러졌다. ‘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참 멋지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정민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
그런데 종종 정민과의 대화 중에 소용돌이 물살을 넘은 듯 아슬아슬함이 느껴지곤 했다. 간혹 크게 흔들리는 눈동자, 자신이 말한 내용을 상담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피는 멈춤, 힘든 얘기를 할 때 감정을 억누르려 호흡을 몰아쉬고 의자 깊숙이 가라앉는 몸. 밝은 얼굴에 쓸쓸한 그림자가 설핏 비치곤 했다.
아주 어린 시절,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크게 어려워져 정민은 큰집에, 남동생은 작은집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빚을 갚기 위해 각각 타지로 흩어져 몇 년을 보냈다. “너무 어렸을 때라서 잘 기억도 안 나요. 어차피 아주 오래전 일인데요, 뭐.” 정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후 부모님과의 면담에서 더해진 정보에 따르면 정민은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듯하다. 부모가 가끔씩 만나러 가면 정민은 그들이 떠날 때 울부짖고 몸부림치며 매달렸고, 부모가 떠난 후 큰길까지 따라 나가며 시간씩 길거리를 배회했다고 한다. 어느 때는 아이가 보이지 않아 찾다 보면 부모가 떠났던 길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서 있곤 했다고 한다. 정민이 스스로 간간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하루하루가 어느 한 곳 마음 붙일 데 없는 기다림뿐이었던 듯하다.
“몇 년 뒤에야 가족이 겨우 모였는데 부모님은 계속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저랑 동생은 알아서 밥 챙겨 먹고 씻고 했어요.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았지만 저는 그때도 또 외로웠어요. 밤마다 무서워하면서 엄마 아빠를 기다렸고요. 저녁 늦게나 새벽에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 잠깐이라도 보려고 기다렸어요. 저는 엄마 아빠가 늘 그리웠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정민의 고통은 다른 차원에서 한층 더해졌다. 정민에 대한 왕따가 시작되었고 정민은 전교생에게 무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무시만 있다면 그럭저럭 참을 만했겠지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 더해졌다. 누군가의 제대로 된 보호도 없이 정민은 고스란히 피해의 늪에 빠져들어 갔다. 대부분 학생이 지역 내 중학교로 진학하는 만큼 초등학교 때의 고통은 중학교로 이어졌고,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경제적 부담으로 고통이 큰 부모님은 정민의 상황을 살피지 못했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무리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정민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결국 1학년 때 자퇴했다. 이제까지 버텨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외로움, 가난, 배척, 폭력… …. 어린 정민의 삶을 오랜 기간 할퀴고 파고들었던 것들이다. 이후 정민은 꽤 긴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세상 모든 것들과 단절하고 싶은 기분. 아니 모든 오감을 무디게 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기분, 그렇게 시작된 은둔이 점점 깊어지며 정민은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었다.
얘기를 담담하게 이어나가는 정민에게 내가 물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냐고. 그는 말했다.
“그나마 학교를 고1까지라도 다닌 건 도서관 덕분이었어요. 거기가 제 피난처였어요.”
정민은 아침에 등교하면 도서관에 갔고, 보이는 대로 책을 읽었고, 허락되는 만큼 그곳에 머물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가장 먼저 도서관으로 뛰어갔고, 점심시간에도 그곳에 머물렀고, 수업이 시작될 때는 교실로 가장 늦게 돌아갔다. 도서관이 유일한 은신처였고 사서 선생님이 유일한 보호자였다. “그 덕에 책도 많이 읽었어요.”라며 웃는 정민의 눈빛이 쓸쓸했다.
다음을, 내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10년 후의 나’라는 주제로 고립·은둔 청년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게 하고, 말로 하기 어려우면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보도록 하는 활동이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구체화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미래는 대체로 부정적이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 활동의 목표는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과거와 현재에만 코 박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슬쩍 미래에 시선을 두어보자는 것이다. 10년 후에도 나는 살아갈 거고, 현재의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바가 10년 후의 내 삶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수위를 조절하며 그들과 10년 후의 삶에 대해 살살 대화를 나눈다.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모습,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작은 회사에 취업해서 소소한 일상을 사는 모습,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어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개발하며 사는 모습, 일을 마친 후 강아지와 산책하며 동네 친구를 만나는 모습……. 희미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각자가 종이 위에 쓰거나 그려냈다. 이렇게 대부분의 참가자가 시간을 들여 고민하며 작업하는 가운데, 정민은 후다닥 그린 뒤 멍한 얼굴로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저는 아마 10년쯤 뒤에는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작업을 마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정민은 말했다. 그의 그림에는 덩그러니 길만 하나 그려져 있었다. 길은 크고 넓게 시작되었다가 점차 급하게 좁아지며 위로 휘었고 저 멀리 어느 지점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길이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간 듯했다.
“나는 10년 정도만 더 살고 말 거예요.”
명백히 ‘자살’이 떠올려지는 문장에 다들 눈이 동그래져 정민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뚜렷하게 죽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왜 길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재미있는 일이 이어지면 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만 살고 싶어요. 아마 나는 그럴 것 같아요.”
뭐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잇기 어려웠다. 고민하다가 내가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어 삶을 이어가고 있나요?”
“지금은 게임하는 것이 그럭저럭 재미있는 편이에요. 새로운 게임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것에 대한 기대도 조금은 있어요. 그런데 게임은 결국 시들해질 거고 그러면 제가 재미를 붙일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나지막이 말하며 정민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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