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도서관의 정치학
(중략)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공수처 비판으로 소환된 ‘사직동팀’의 추억
우리나라에 ‘어린이도서관’은 얼마나 있을까?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비롯하며, 대한민국에는 89개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2024년 시점에 전국 1271개 공공도서관의 6.9%가 어린이도서관이다. 어린이도서관이 이렇게 늘어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도서관이 태부족하던 시절,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은 꿈도 꾸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도서관은 어느 곳일까? 《개똥이네 집》에 〈어린이와 도서관〉을 연재한 울산광역시 북구 기적의도서관 최진욱 사서에 따르면, 1924년 12월 20일 명진소녀회가 경성부 연건동에 개관한 ‘아동도서관’이다. 1924년 10월 26일 자 《동아일보》에 해당 기사가 실려 있다. 기사에 따르면, 명진소년회에 도서관 부지를 제공한 이는 종로 4정목에 사는 ‘전형필全鎣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도서관
우리 문화재를 되찾고,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간송澗松 전형필과 이름이 같지만, 간송인지 확실치 않다. 명진소년회 아동도서관이 문을 연 1924년은, 간송의 나이 열여덟 무렵이다. 재산을 물려받기 전인 이때, 그가 아동도서관 부지를 제공한 걸까? 명진소년회가 문을 연 아동도서관은 규모가 작지 않았다. 1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좌석에, 500여 권의 책을 갖췄다.
일제강점기에 선구적으로 문을 연 ‘최초의 어린이도서관’은 어느 시점부터 명맥이 끊겼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어린이도서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디일까?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은 원래 ‘시립아동병원지금의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이었다. 1978년 5월 시립아동병원이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서울시는 건물 활용을 검토했다. 고심 끝에 서울시는 아동 병원 건물을 ‘어린이도서관’으로 재단장하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아동의 해인 1979년 5월 4일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문을 열었다.
1983년 7월 서울시는 어린이도서관 증축 명목으로, 예산을 지출했다. 당시 어린이도서관 입구에는 2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서울시 예산으로 3층으로 증축한 이 건물은, 예산 명목과 달리, 어린이도서관으로 쓰이지 않았다.
어린이도서관의 ‘수상한’ 이웃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건물을 증축한 다음, 청와대 지시로 묘한 ‘세입자’를 받았다. 도서관 건물에 자리 잡았지만, 도통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세입자였다. 이 세입자는 훗날 ‘사직동팀’으로 알려진 비밀경찰 조직이었다. 사직동팀은 어린이도서관 건물 하나를 차지하고, 장장 18년 동안 ‘안가安家’로 사용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보수 언론은 공수처를 ‘사직동팀’에 비유했다. 이 과정에서 사직동팀에 대한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어린이도서관을 안가로 사용한 ‘사직동팀’은 어떤 조직일까? 사직동팀의 역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내무부 장관 김현옥은 치안국장 정석모에게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같은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서울시장 시절 ‘불도저’라고 불린 김현옥이지만, 개인이 아닌 박정희 정권 수뇌부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지금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치안국’은, 수사 지도과 아래 ‘특별수사대특수대’를 만들었다. 치안국 특수대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기업인에 대한 특수 수사를 담당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치안국 특수대는 법적 근거 없이 ‘내무부 훈령’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초법적’ 존재로 군림했다.
미국 ‘연방수사국’도 정치인과 고위 관료에 대한 개인 파일을 확보하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도 연방수사국 자료를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열람하고 싶을 때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열람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록뿐 아니라 열람한 자료는, 백악관 문서 보관소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는 총리 직속으로 ‘내각정보조사실’이 있다. 경찰과 자위대, 외무성에서 파견된 인원이, 주로 해외 정보를 조사해서 총리에게 보고한다. 초법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사직동팀은, 미국 연방수사국이나 일본 내각정보조사실과 근본적으로 다른 조직이다. 출발은 미국 연방수사국을 지향한다고 했으나, 독일 나치의 게슈타포Gestapo 같은 ‘비밀경찰’이 되어 버린 조직이 아니었을까?
유신 헌법이 선포된 1972년에, 비밀경찰 조직이 ‘탄생’한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식민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일제가 특별고등경찰을 도입한 것처럼, 박정희는 유신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비밀경찰을 부활시켰다. 1974년 박정희는 내무부 치안국을 ‘치안본부’로 승격시켰다. 유신 체제는 온 나라를 병영화하며, ‘병영 국가’로 치달았다. 동시에 남한은 ‘경찰 국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병영의 사령관과 경찰 총수는 박정희였다.
‘사직동팀’을 비롯한 비밀경찰 조직 외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보안사령부지금의 국군방첩사령부를 통해, 온 나라를 감시했다. 대한민국은 ‘1984년’ 이전에 이미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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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기적’이 된 ‘기적의도서관’
여러 곡절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은 전국에 자랑할 만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한다. 도서관 건물도 자료관과 문화관, 유아관 3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다.
본관 격이라 할 수 있는 ‘자료관’ 1층과 2층에는 ‘책누리’라는 이름의 어린이 자료실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에 있는 ‘곰두리방’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료관 3층엔 시청각실과 다문화실이 있다. 도서관이 갖추고 있는 장서량도 대단해서, 27만 권 넘는 책과 207종의 신문·잡지, 1만 1000종이 넘는 비도서 자료를 갖추고 있다. 규모나 장서면에서 한국 최대 어린이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린이도서관이 많이 늘었지만, 1997년 5월까지 전국 320여 개 공공도서관 중 어린이도서관은 이곳이 유일했다.
1990년 5월 4일 서울 월계동에 북부인표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에스콰이아’를 설립한 기업인 이인표는, 이후 5년 동안 국내에 14개 ‘인표어린이도서관’을 개관했다. 기업인인 그가 ‘도서관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랑방 형태의 ‘어린이 작은도서관’이 생겨났다. 공공도서관에 ‘어린이 자료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2년 MBC가 방영한 〈느낌표〉는 대한민국 출판과 도서관 분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화제가 된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통해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03년 10월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필두로,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기적의도서관’은 관리자가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도서관을 지향했다. 도서관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새로운 도서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모든 기적은 기적의 전제 조건이 있을 때 기적적으로 존재한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주도하고 건축가 정기용이 참여한 ‘기적의도서관’은, 도서관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마중물이 되었다. ‘기적의도서관’이 ‘도서관의 기적’이 된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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