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너에게
너를 처음 본 건 어쩌면 아주 오래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명확히 기억나는 순간을 떠올리자면 12월 3일 급하게 국회로 뛰어온 내가 경찰들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직급깨나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국회 직원임을 밝히며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처음 듣는 듯도 한 강압적인 말투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거듭 거절을 당하던 그때, 담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고 그 담을 향해 갔더니, 거기서 네가 발을 받쳐줄게요, 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아니었나? 12월 3일의 밤이 4일로 넘어가던 그 추운 날, 이제 계엄이 해제 의결되었다고, 많은 수의 너희가, 안심하며 국회를 떠나던 그 시간에도, 몇몇 앳된 군인이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며 떠난 이후에도, 네가, 네가, 혹시 그들이 다시 올 수도 있다고, 다시 계엄이 선포될 수도 있다며, 네가, 너희들이 지켜주겠노라, 국회의 담벼락에 붙어 있던 그 순간이 처음이었던가? 그때 너를 처음 보았던가?
시간을 조금 거꾸로 돌려 상상해본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바로 그날, 계엄 선포가 있기 한 시간 전 정도, 저녁 9시 즈음에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을까. 기말고사가 한창이니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던 중이었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한강변을 뛰고 있었을까. 연인과 차를 마시거나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을까. 지하철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자주 들르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못 챙겨 본 오늘의 쇼츠를 넘기며 늦은 퇴근길의 무료함을 견디고 있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너, 너, 너희들은 매일이 매일 같은, 그래서 오히려 감사한 일상을 살고 있었겠지?
그렇게 다르고 많았던 ‘너’의 일상은, 그리고 밥 먹고, 차 마시던 나의 일상다반사는 12월 3일 10시 30분 이후 딱 붙어버렸어. 같아졌어. 하나의 바람을 갖게 되었어. 일상이 증발되어 사라진 듯했어. 12월 4일 구내식당의 메뉴 알람을 보고 뒤늦게 울컥 울어버린 이유야. 12월 4일수요일 아침의 구내식당 메뉴를 안내받고, 또 하얗게 지어진 쌀밥을 떠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갑자기 울컥했지. 어쩌면, 그 하얀 쌀밥을, 아침 메뉴 공지를, 그렇게 하루가 하루답던 무료하고도 평범해서 고마운 일상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거야. 너희들이 아니었더라면, 장갑차 앞을 겁도 없이 가로막고, 국회 앞에서 밤을 새운 너희가 없었다면 말이야.
빛은 섞일수록 투명해진다고 하지? 정오의 빛에는 색이 없어. 하지만 저녁은 색을 갖고 있지, 너희들은 저녁의 붉은색을, 밤의 검은색을 형형색색의 빛으로 그리고 투명한 밝음으로 바꾸었어. 검은 그림자를 없애주었어. 마치 정오처럼. 12월 3일, 네가 광장과 거리에 나타나고부터 저녁의 색이 밤의 검정이 견딜 만해지고 참을 만해졌어. 점멸하는 빛의 형태, 그건 빛의 호위였어. 그 빛의 호위는 아직도 진행 중이야. 네가 있는 그곳에 네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너를 부르며 시작하는 이유야.
1. 우연과 필연 사이
12월 3일 계엄이 있었고, 12월 4일 이후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응원봉의 빛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2월 14일 마침내 내란수괴 윤석열의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2025년 2월 19일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아홉 번째 피청구인 윤석열의 탄핵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 글은 12월 14일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의 한가운데에서 빛났던 호위와 연대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기 위해 기획되었고 또한 수락되었다.
그러나 기획과 청탁, 집필 사이에 ‘또’ 많은 일이 있었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 사고와 사건이 겹치고 스쳤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 과정에서 윤석열은 극우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기괴한 선동문을 소셜 미디어에 게재한 바 있다. 권위와 역사를 자부하는 수많은 언론이 그 선동문을 싣고 날랐다. 널리 퍼졌다. 누군가를 건드렸다. 통했다. 관저 앞으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 등장한 바 없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극단적 사상의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랑스레 전시하는 생물학적 ‘청년’도 있었다. 보수 언론들은 광장의 ‘빛’과 관저 앞 ‘청년’을 일부러 크롭 아웃하고 줌인해 과장해서 대조, 비교하기 시작했다. 기준은 여러 가지였다. 반탄, 찬탄이기도 하고, 종교이기도 하고, 젠더이기도 하고, 연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란수괴의 선동에 감응한 한 줌의 영혼들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해 개인의 선택을 존재 자체로 규명하거나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근거는 그 행동이어야 한다. 국회 앞과 남태령, 광화문 그리고 관저 앞 도로에서 눈을 맞고 밤을 새운 키세스 부대는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을 부르고, 추위를 견디며 누군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먹을 것과 덮을 것, 추위를 녹일 것들을 나누었다.
관저 앞 ‘청년’들은 훨씬 동적이었다.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폭력을 동반했다.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점거 및 파괴 폭거로 격화되었다.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색출해 공격하려 했고 그 판사의 근무지인 서부지법을 깨고 부수었다. 불살라버리려 했다. 다시 말하건대, 사람을 존재, 나이나 성별, 학력, 지역으로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행동으로 구분할 수는 있다. 폭력은, 폭행은, 폭도는 그 어떤 이유든 납득될 수도 설득될 수도 허용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 부상자가 56명, 민간인 부상자가 41명, 시설물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체포된 자만 무려 107명이었다. 구속된 66명 중 청년이라 부를 수 있을 십대에서 삼십대 사이가 전체 46퍼센트인 30명이었다2025.02.19. 기준. 이 글을 처음 기획하고 청탁받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있으리라, 이런 행동이 전개되리라, 이런 행동을 저지를 자가 출몰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한번 씨앗을 틔우고 준동한 극단적 행동주의자들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힘의 방향을 바꾸어 위력 행사 중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무서운, 존재에 대한 혐오가 구석진 그늘에서 공적 언어의 세계로 넘어오고 있다. 특정한 국적 자체가 결격 사유처럼 취급되고 일종의 통과의례 및 조건처럼 제시되어 전도된 존재 검열을 강제한다. 혐오가 넘실대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연령이나 성별을 따질 것 없이 위험하고 극단적인 존재이다. 우리 사회가 허용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약속을 어긴 자들이다. 헌법재판관을 겁박하고, 주거지 근처에서 대놓고 목숨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더욱 빛에 대한 기록과 재구성이 절실하다. 어둠은 빛으로 사라지고, 빛은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니 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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