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법의 빈틈을 채우는
사람의 온기
무엇이든 처음은 강렬하다. 내 인생 첫 기억은 구석구석 가난이 깃든 낡은 판잣집 마루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일이다. 겨우 성인 무릎 높이였지만, 아직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에게 마루에서의 추락은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 찰나에 느낀 낯선 불쾌함과 엄마의 보호에서 이탈했다는 불안감이, 빛도 제대로 들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던 집 안 풍경과 겹쳐 내 마음속에 공포로 각인됐다. 그래서일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하게 되면 예전 그 마루에서 떨어지는 꿈을 꼭 꾸곤 한다.
그러나 지금은 꿈이 아니다. 엄연히 현실인데도 마루에서 떨어질 때의 불쾌함과 불안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가씨, 변호사 선생님은 어디 계시나요?”
내 앞의 중년 여성이 재차 묻는다. 변호사로서의 첫 직장, 첫 출근 날에 내가 들은 첫마디였다. 의뢰인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3층에 내 사무실이 있다고 했는데….’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3층에 내 사무실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화장실 앞 복도에 덩그러니 칸막이가 세워진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보였지만, 나는 애써 그곳을 외면하고 복도 안쪽의 번듯한 사무실들을 자꾸만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 화장실 앞 쪽으로 다가가자 사면을 둘러싼 칸막이 한구석에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틈이 보이고, 그 틈 앞에 ‘무료 법률 상담’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서 있다. 여기가 내 사무실이고, 노란 입간판이 아마도 문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낡고 어두웠던 옛집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심장이 끊임없이 자유낙하를 하며 빠르게 나타났다. 심장이 끊임없이 자유낙하를 하며 빠르게 뛰었다. 입간판과 같은 색으로 노랗게 질리고 있을 내 얼굴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입간판을 치우고 의뢰인에게 이쪽으로 오시라고 안내하면서 “제가 변호사입니다만…” 하고 말끝을 흐렸다. 드라마에서 본 변호사들은 잘 다려진 빳빳한 정장을 입고,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한자로 뒤덮인 법률 서적과 세상 두꺼운 서류 뭉치들이 가득한 자신만의 사무실로 멋지게 출근했다. 그런 멋들어진 모습은 고사하고, 오가는 사람이 다 쳐다볼 수 있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다 들리는 복도 한가운데서 의뢰인보다 더 황망한 얼굴로 헐레벌떡 입간판을 치우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웠다.
칸막이 안쪽에는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 의자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의자 하나는 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뢰인 것인가 보다. 그럼 의뢰인 두 명이 찾아오면 한 명은 서 있어야 하나? 내 의자를 내드리고 나는 서서 상담해야 하나? 아니면 스탠딩 상담이 되지 않게 아예두 명은 입장 금지라고 칸막이 앞에 써 붙여 놓을까? 오늘은 한 분이라 천만다행이다.’ 노랗게 질린 얼굴에 걸맞게 잔뜩 움츠린 뇌가 제멋대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상담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며, 오늘만 출장 나오신 거냐고 묻는 의뢰인에게 당당하게 “여기가 제 사무실입니다”라고 왜 말하지 못하느냐고 마음 속으로만 외치는 내가 안쓰러웠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산 정장의 단추를 채우며, 그래도 이렇게 차려입으니 제법 전문가답다고 스스로 대견해하던 오늘 아침이 떠올랐다. 거울을 보며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갑갑한 정장을 입는 것처럼 불편한 일들을 견뎌 내는 것이다. 정장에 어울리는 마음가짐과 행동,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끼자. 나도 이제 어른이다’라며 드라마 주인공의 독백 같은 오그라드는 다짐을 하고 나온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옷이 구겨질까 봐 몸가짐마저 조심스럽게 출근했건만, 화장실 앞 복도에서 변호사랍시고 혼자 고고하게 정장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 더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 같아 서둘러 정장 재킷을 벗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취업이 된 나는 오늘이 첫 출근이라고 신나서 자랑을 했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 첫 직장을 무척 궁금해하면서 사무실 사진을 좀 보내 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불법 노점상도 이것보단 잘 차려 놓고 하겠다 싶어 도저히 사진을 보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화장실 앞 복도에 앉아 있으려고 치열한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한 것이었나. 나지막이 한숨을 쉬다가, 쓸데없이 아무 때나 긍정적인 성격 탓에 나중에는 혼자 킥킥 웃기도 했다.
전화를 받거나 안내를 해 주는 직원이 있기는커녕 성인 여성 키만 한 야트막한 칸막이 위로 외부인들의 머리가 불쑥불쑥 올라와 “여긴 뭐지?” 하며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변호사에게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가 무슨 라디오 방송국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상담하다가는 같은 층의 모든 사람이 의뢰인의 사연을 생방송처럼 듣게 될 터였다. 게다가 이제 막 변호사가 되어서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조차 감이 없는 엉망진창 신참 DJ의 진행을 공개한다는 것이 참으로 창피하고 곤란했다.
처음 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 작은 곳에서라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나 자신이 누구보다 어렵게 살았기에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즐거웠다. 그런데 막상 한 평짜리 칸막이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작아도 너무 작잖아!’ 나도 제대로 된 사무실에서 대접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뜬금없는 보상 심리가 생겨나며 몸보다 마음이 더 피로했다.
근무 환경도 적응이 안 됐지만 근무 내용 역시 예측이 불가능했다. 학교에서는 잘 정리된 지식만 배웠다. 아는 문제에 아는 답을 하는 법을 배웠고 적당히 해냈다. 첫 출근날에 여섯 명을 상담했는데, 의뢰인들이 가지고 오는 저마다의 사연 가운데 책에서 배운 정형화된 사례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모든 질문에 뚝딱뚝딱 대답을 하기에는 내 배움도 경험도 너무 짧았다.
게다가 사람을 대하는 법, 말을 잘 들어 주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답을 할 수도, 제대로 들어 줄 수도 없는 식물 변호사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엄마 품에서 벗어나 공포를 느꼈던 어린 시절의 그날처럼, 부모님과 학교를 떠나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줄 것들이 없는 이 상황이 마냥 불쾌하고 불안했다. 이제 겨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무릎 높이의 낭떠러지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첫 출근도 나와 같을까? 어느 때보다 정돈된 옷차림과 마음가짐이 무색하게 엉망진창, 우왕좌왕, 허둥지둥, 산만하고 부산스러운 하루가 지나갔다. 기대, 기쁨, 설렘, 초조, 불안, 걱정, 당혹, 좌절…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하루에 다 느낀 날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나 처음은 다 그렇다는 위로를 들어도 조금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 대답이 맞기는 한 건지, 그저 모든 것이 당황스럽고 부끄럽기만 했던 첫 출근의 기억. 과연 내가 여기서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로부터 2년을 더 그곳에 있었다. 매일 밤, 혹시 내일 찾아오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쩌나 걱정하며 잠드는 날이 많았다. 난생처음 듣는 얘기들, 이게 과연 법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넋두리인지 모를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듣다 보니, 내가 아는 지식만을 뽐내는 답변 자판기가 아니라, 함께 맞장구치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책이 아닌 온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며, 때로는 저도 모르는 문제이니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야 그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때가 있다. 번듯한 사무실, 멋진 정장만이 그저 아쉬웠던 처음의 날들. 결국 장소나 복장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보다는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들이 변호사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리란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 가족은 없고,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경제 능력도 없어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고시원에 산다. 고시원 생활 2년 차, 고시원 사장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말끝마다 나가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남자는 나갈 수 없다. 혼자였던 그의 삶에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소소한 일상도 나누는 옆방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작은 행복마저 빼앗길까 봐 난생처음 본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70세를 훌쩍 넘긴 백발의 신사가 어렵게 얘기를 꺼낸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딸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결혼 생활 내내 계속된 남편의 무능력과 폭력을 차마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20여년이 흘러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백발의 신사는 직접 딸의 이혼 절차를 묻기 위해 나를 찾았다. 그동안 딸이 얼마나 괴로웠겠냐며, 그걸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자책한다.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 주는 변호사가 있다. 그들은 속 시원한 법적 해결을 원해서만 나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다. 법이 똑똑한 척 각을 잡고 딱딱하게 굴어도 세상만사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에, 법 또한 완벽하지 않다. 법의 이성에 빈틈이 있다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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