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침상 위의 발
나는 분 할아버지와 익의 침대 사이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자리에서는 얇은 홑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환자들의 발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는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 시의 근교, 도시와 농촌의 경계이지만 시골 냄새가 더 짙은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이다. 병원 이름은 반팻이다. 75세인 분 할아버지는 3년째 거동을 못 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발은 핏기 없이 앙상하니 뼈만 남았고, 얇은 피부의 안쪽은 조금씩 썩고 있다. 오랫동안 누워 지낸 탓에 심한 욕창이 생겼고, 움직일 능력을 잃은 발에서 괴저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반대편에 있는 익의 발은 튼튼하고, 거칠거칠해 보인다. 젊은 이주 노동자인 익은 미얀마의 샨 지역에서 온 남자인데, 오토바이 사고 후 몸이 마비되어 최소한의 의식만 있는 상태였다. 건장한 체격만큼 큼직한 발에는 거뭇한 기름때와 얼룩덜룩한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병동으로 옮겨지기 전 2주 동안 중환자 집중치료실에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발의 핏자국을 닦아주지 않았다. 부러진 발톱은 흙투성이였고, 뒤꿈치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내가 병동에서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8월이었는데, 근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남자들의 발은 단 한 번도 바닥을 디딘 적이 없었다.
누군가 병문안을 올 때면 나는 종종 둘 사이에 함께 앉아 있곤 했다. 분 할아버지의 아내인 댕 할머니는 종일 할아버지 침대 옆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게 남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치앙마이에서 태어난 북부 토박이인 할아버지는 병원 근처 마을에서 평생을 살면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슬하의 두 아들은 일찍 죽었다. 할아버지의 마비 증세는 3년 전에 시작되었고, 할머니가 줄곧 할아버지를 보살펴왔다. 이 작은 가족의 수입은 두 사람 몪으로 매달 나오는 1000밧한화 약 3만 5000원의 연금이 전부였다. 익 옆에는 누이 동생인 폰이 주로 앉아 있었다. 폰은 20대 후반으로, 형제자매가 모두 미얀마의 샨 주에서 치앙마이로 이주해온 후로는 큰오빠의 소식을 끊다시피 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익이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익은 길가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는데, 지역 병원 간호사가 그의 취업 허가증에 적힌 주소지의 마을 이장에게 연락을 했다. 얼마간의 수소문 끝에 연락이 끊어졌던 익의 형제자매 모두 그의 병상에 둘러 모였다. 폰은 근 7년 동안 오빠의 얼굴도 못 봤지만 지금은 거의 매일 그 옆에 붙어 지내다시피 한다.
폰의 등장은 익의 발에도 그 여파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폰은 도착하자마자 발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내고 더러운 발톱을 잘라주었다. 간호조무사를 도와 기저귀나 침대보를 함께 갈았고, 곧 일상적인 수발의 대부분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병동 간호사들은 자기 처지가 어려운데도 다친 오빠를 버리지 않는 폰을 ‘콘 디착한 사람’라고 부르며 칭찬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폰의 피로가 먼저 들어왔다. 폰은 다섯 살 아들을 둔 젊은 엄마이자 궁핍한 이주 노동자로 이미 고달픈 부양의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폰이 병원에서 매일 익을 봐준다는 건 당분간 남편의 외벌이 수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으로 익의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폰은 크게 안도했지만, 날마다 병원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족의 빠듯한 생활비에 부담이 되고 있었다. 하루는 폰이 익의 호흡용 튜브에서 가래를 닦아내면서 나에게 말했다. “사는 게 힘들어. 정말 힘들어.”
한편 댕 할머니는 분 할아버지의 왼발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병원에선 네 시간마다 환자의 자세를 바꾸어주고 주기적으로 다리 마사지를 하라고 요청한 터였다. 병동 직원들은 할아버지의 발에서 궤양이 커질까봐 걱정이었지만, 할머니는 지시대로 따르기를 꺼렸다. 괜한 움직임 때문에 할아버지의 통증만 더 심해질 거라고 여겼다. 간호사들은 상처가 심해지면 추가로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미 여러 번 경고를 준 상태였다. 댕 할머니와 간호사들의 미묘한 긴장은 경관급식이 시작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주사기로 유동식을 코에 집어넣으면 남편이 너무 아파한다며 할머니가 급식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할머니의 요청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한 간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폐렴은 이제 다 나았어요. 환자분이 기운을 못 차리시는 건 먹지를 못해서예요. 경관급식을 시작한 후로는 힘이 조금 생기셨거든요. 병원에서 하는 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환자분이 병원에 계실 이유가 없죠. 남편이 돌아가실 때까지 마냥 여기서 손 놓고 기다리시기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결국 간호사들은 이 문제를 주치의에게 보고했고, 보호자가 경관급식 중단을 원한다면 퇴원을 하라는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퇴원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혼자 할아버지를 볼 수는 없어. 여기 있어야 해.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뭘 어쩌겠어?” 할머니는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의료진과 아내, 양측 모두 죽어가는 남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했지만,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다른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마침내 반가운 손님이 분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할머니가 애타게 찾던 아짠 루암이었다. 아짠 루암은 젊은 시절에 절에서 오래 수련을 해 전통 의식에 대해 잘 아시는 동네 어르신인데, 할머니는 지금으로 따지며 의사머 보란랑 비슷하다고 설명해주셨다. 아짠 루암은 할머니의 부탁대로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서 수콴이라는 간단한 의식을 치렀다. 수호령들에게 바치는 공물로 잠피아열대성 목련 꽃, 작은 양초, 켑 무돼지 껍데기 튀김, 찹쌀밥태국 북부의 주식 등이 조각배 모양으로 접은 바나나 잎에 담겨 환자의 머리맡에 놓였다. 이윽고 아짠 루암은 굵은 흰 무명실을 분 할아버지의 손목에 여러 번 묶고는 주문을 속삭였다. 댕 할머니는 이 의식이 분 할아버지의 혼을 몸에 잘 붙들어주어서 기력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이날 행해진 의례는 바쁜 병동의 저녁 리듬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틀 후, 주치의는 분 할아버지의 발에서 죽은 조직을 또 한 번 제거했다.
나는 이따금 이 사람들의 발을 어찌할 도리 없이 쳐다봐야만 했다. 자기 몸무게에 짓눌린 분 할아버지의 발은 핏기 없이 뻣뻣하게 굳어 다가올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편 익의 발은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한 달 동안 입원해 절대 안정을 취한 덕에 익의 몸은 고된 육체노동에서 해방되었고, 발에도 그 변화가 바로 나타났다. 익의 발은 이제 예전처럼 고단하지 않았다. 피부는 부드러워지고, 갈라진 발꿈치 틈새는 어느새 메워졌다. 익의 발이 침대에서 툭 떨어질 때면, 폰과 나는 병동 깊숙이 들어오는 오후의 햇빛 아래 각질이 풀썩거리는 걸 속절없이 보곤 했다. 당시에는 익의 뇌손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느닷없는 발의 움직임은 그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나란히 누운 환자들의 침대 옆에서 고통과 근심은 보통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남자의 말 없는 발은 병의 위중함과 함께 그들이 받고 있는 돌봄의 성격을 고요히 전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특히 질병과 손상으로 삶이 흔들리는 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로 시작한다. 분 할아버지와 익의 망가진 발 이야기로 이 책을 여는 이유는 그들의 발이야말로 나에게는 두 사람이 놓인 돌봄 체계 전반에 대한 표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병동에서 이 두 쌍의 말단부는 태국에 사는 사람들의 신체 관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징적 위계를 흥미롭게 허물고 있었다. 태국에서 발은 가장 낮은 데 있는 더러운 부위이기 때문에 물건이나 사람을 발로 가리키는 행위는 매우 무례하다고 여겨진다. 반대로 머리는 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영적 본질콴과 윈얀이 자리하고 있는 신성한 부위이다. 이 두 사람이 스스로 서거나 말하는 능력을 잃게 되면서, 몸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발은 뜻밖의 카리스마와 표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들의 다친 발이 드러내는 약함과 견딤에는 어떤 설득력이 있었다.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연약함이 지닌 뜻밖의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라보기 괴롭지만 끈질기게 거기 있는 다친 몸은 누군가 무언가 해주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제 기능을 못하는 발을 돌보지 않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가족 등 많은 이들이 이 남자들을 살아 있게 해주었다. 그중에서 특히 몇몇은 이 일로 인해 삶에 큰 타격을 입었고 깊은 피로와 절박함을 풍기고 있었다. 댕 할머니와 폰에게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신체적으로도 부담일 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어려운 문제였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되었지만, 바로 그 일이 이들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었다. 여기서 돌봄은 단지 도덕적으로 좋은 일이 아니라 때로는 큰 손실과 기회비용을 수반하는 양가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파괴할 수도 있는 돌봄의 잠재력을 다룬다. 타인의 몸과 삶의 요구 앞에서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개인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의학에 관련되기도 하지만 신앙의 문제와도 결부된, 돌봄의 각종 형태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추적한다. 타인의 삶에 관여해야 한다는 정동적 요구를 감지하였을 때, 역으로 병들고 쇠약해진, 다치고, 죽어가는 구체적 존재들이 생의 지속에 필요한 상호성의 관계를 끌어내고자 할 때, 이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돌봄이 이끌고 이끌리는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서로 이끌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돌봄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 제 것처럼 마음대로 가져다 쓰거나,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 혹은 억지로 견디어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돌봄은 공동 활동이다.
우리의 여정은 태국 공공 의료 시스템의 최전선에 있는 한 지역 병원, 반팻 병원이라고 부리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태국은 보편적 건강보험을 도입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이루었다. 이 새로운 사회계약은 한편으로는 빈곤의 완화를 목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제도는 부유한 사람들이 공공 병원의 북적거림과는 무관하게 글로벌 체인 병원에서 자기들만의 특권을 누릴 때, 댕 할머니나 폰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온갖 제도적, 관료적 형식주의를 헤쳐나가며 여기서 버티는 법을 배우도록 해왔기 때문이다. 반팻 병원과 같은 공공 병원의 일상은 지역민을 위한 돌봄과 보호의 구심점으로 보편적 건강보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그림을 제시해준다. 이곳은 특히 의료 제공자와 사용자가 이러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함께 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역의 공공 병원은 의료기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종 시련과 빈곤, 추방과 같은 악조건에서도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돌봄의 다른 회로망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병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은 의료의 틀을 넘어서서,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생겨나는 여타의 층위들, 특히 가족과 종교적 믿음에 관한 서사로 확장된다. 나는 제도의 특성과 개인들의 분투를 함께 엮어나가며 의료의 정치경제학과 사람들이 거쳐온 경험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다양한 돌봄의 기획들에서 어떻게 관계의 다중성이 드러나고,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이 발휘하는 행위성이 감지되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보살핌의 기술들이 조합되는지를 ‘이끌어내기elicitation’라는 개념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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