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AI의 눈으로
인류 지능의 역사를 재구성하다
우주 진출 경쟁, 쿠바 미사일 위기, 소아마비 백신 도입 등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1962년 9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다른 사건들만큼이나 중요한 이정표가 하나 세워졌다. 1962년 가을에 나온 미래 예측이었다.
100년 후의 미래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우주 가족 젯슨The Jetsons〉이 새롭고 화려한 총천연색의 미국 TV 화면에 첫선을 보였다. 이 만화는 시트콤이라는 가면을 썼지만 사실 미래의 인류가 어떤 삶을 살지, 어떤 기술이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집안을 꾸며줄지 예측하는 내용이었다.
〈우주 가족 젯슨〉은 영상통화, 평면 TV, 스마트폰, 3차원 프린팅, 스마트 워치 등의 발명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1962년만 해도 실현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이 기술들이 2022년에는 모두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만들지 못해서 나중을 기약하는 한 가지 기술이 있었다. 바로 로지Rosey라는 이름의 자율 로봇이다.
로지는 아이들과 가시를 돌보며 젯슨 가족을 돕는 관리 로봇이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엘로이가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자 숙제하는 것을 로지가 도와주었다. 열다섯 살짜리 딸 주디에게 운전을 가르쳐준 것도 로지였다. 로지는 요리를 하고 음식을 식탁에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로지는 충성스럽고 세심하며 농담에도 곧잘 대처했다. 그녀는 가족 간의 불화나 오해가 생기면 개입해서 가족들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번은 엘로이가 엄마를 위해 쓴 시를 읽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로지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바꿔 말하면 로지에게는 사람의 지능이 있었다. 그냥 물리세계에서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추론, 상식, 운동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감,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 사교성도 갖추고 있었다. 작중 인물인 젯슨 가족의 엄마 제인의 말을 빌리면 로지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우주 가족 젯슨〉에서 예측한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는 상용화됐지만 로지 같은 로봇이 탄생하려면 갈 길이 멀다. 이 책이 인쇄에 들어간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로지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들조차 우리가 아직 닿지 못하는 먼 곳에 있다. 그냥 식기세척기에 설거지할 그릇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로봇만 개발해도 판매 1위는 따놓는 당상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이는 기계공학적 문제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다. 싱크대 안에 있는 물체를 식별하고 제대로 들어 올린 다음 깨뜨리지 않고 식기세척기에 쌓는 능력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로 밝혀졌다.
아직 로지 같은 로봇은 나오지 않았지만 1962년 이후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AI는 이제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기고, 영상의학과 전문의처럼 방사선 이미지에서 종양을 찾아낸다. AI가 자동차 자율주행을 선보일 날도 멀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대형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에서 이룬 새로운 발전 덕분에 챗GPTChatGPT 같은 제품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2022년 가을에 출시된 챗GPT는 시를 짓고 언어를 번역하고 심지어 악보 코드도 작성할 수 있다. 전 세계 고등학교 교사들이 탄식할 일도 있다. 어느 용감한 학생이 어떤 주제든 질문만 던지면 챗GPT는 즉각적으로 독창적인 리포트를 척척 써낸다. 챗GPT는 심지어 전체 변호사의 90퍼센트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변호사 자격시험도 통과한다.
AI 발전의 긴 여정에서 사람 수준의 지능을 만들어내는 데 얼마나 가까워졌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늘 어려웠다. 1960년대에 문제해결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성공한 후에 AI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이와 같이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으로 3년에서 8년 안에 평균적인 사람의 일반지능을 갖춘 기계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에 전문가시스템expert system, 전문가와 동일하거나 그 수준 이상의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옮긴이이 성공을 거둔 후에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에서는 이렇게 선언했다. “AI는 우리 곁에 와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전이 멈췄다. 그리고 지금은 LLM의 등장으로 많은 연구자가 다시금 “사람 수준의 AI를 완성하기 직전이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마침내 로지처럼 사람과 비슷한 AI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을까? 아니면 챗GPT 같은 LLM은 앞으로 수십 년 더 가야 할 여정에서 단지 가장 최근에 거둔 성과일 뿐일까?
이 목표에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판단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 AI 시스템이 한 과제에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낸다면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를 그 AI 시스템이 이해했다는 의미일까?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산하는 계산기는 실제로 수학을 이해하는 것일까? 변호사 시험에서 대부분의 변호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챗GPT는 법률을 실제로 이해했을까?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차이는 어떤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까?
현재 사회 곳곳에 빠르게 확산되는 챗GPT가 출시되기 1년 전인 2021년에 나는 그 전신인 GPT-3라는 LLM을 사용하고 있었다. GPT-3는 인터넷 전체에서 수집한 방대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훈련을 했고, 프롬프트prompt가 주어지면 이 말뭉치corpus를 이용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을 내놓는 패턴매칭pattern matching을 시도했다. “개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는?”이라고 질문하면 GPT-3는 이렇게 대답했다. “개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는 배가 고프거나 덥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의 새로운 구조 중 뭔가가 시스템으로 하여금 적어도 겉보기에는 놀라운 지능 수준으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GPT-3는 자신이 읽었던 사실, 예를 들어 개에 대한 위키피디아 내용과 기분이 나쁜 원인에 대한 다른 인터넷 페이지의 내용을 일반화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질문에 맞춰 대답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었다. 2021년에 나는 이 새로운 언어모델을 적용할 다른 응용 분야를 탐색했다. 이 모델을 이용한다면 정신건강 지원시스템, 보다 원활한 고객서비스 또는 더 평등하게 의학 정보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GPT-3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성취와 오류 모두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GPT-3는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똑똑하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멍청했다. GPT-3에게 18세기 감자 농업과 세계화의 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면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인 논문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창문 없는 지하실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무엇이 보일까?’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하면 완전히 비상식적으로 대답한다. GPT-3는 어째서 어떤 질문에는 올바르게 답하고 어떤 질문에는 그러지 못할까? GPT-3가 인간의 지능 중 어떤 특성은 포착하고 어떤 특성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AI의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AI가 어떤 해에는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에 그다음 해에는 쉽게 대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2023년 초에 출시된 GPT-3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GPT-4는 GPT-3를 괴롭혔던 많은 질문에 올바르게 답했다. 하지만 이 책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GPT-4는 아직도 인간 지능의 본질적 특성, 곧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AI와 인간 지능의 차이를 확인하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어째서 AI는 체스 게임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나게 잘하는데,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쌓는 일은 여섯 살배기 아이보다도 못할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재창조하려 노력하고 있는 대상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질문은 사실상 AI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 지능 그 자체의 본성에 관한 질문이 아닐까? 인간의 지능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그렇게 작동하게 됐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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