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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최지은
오늘 저희 얘기는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해보려고 합니다. 교수님을 어렵게 모셨는데, 제가 전우용 교수님을 만나 뵐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십니까?”라는 말을 못 여쭤봐요. 오늘도 그 질문을 드리지는 않을게요. 저희가 한 두어 달 만에 만났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볼게요.
전우용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 민주적인 세상에서 살려는 분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보냈죠. 시청 앞과 여의도 집회에도 가고, 시시각각 뉴스 확인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대감, 뭐 이런 것들이 섞인 상태로 일상의 일들은 거의 못 하면서 지냈죠.
최지은
예, 민주주의를 생각하시고 민주 국민으로서 하실 수 있는 행위들을 하시고…. 이제 이 대담이 지금 녹화되고 있는 시점은 2024년 12월 26일입니다.
전우용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죠.
최지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면 보통은 연말이라 들썩들썩하잖아요? 분위기가. 그런데 올 연말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다소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가 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 상황 때문 아닐까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큰 질문 한 가지 드려보죠.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
전우용
전통적인 역사학에는 ‘현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금기 같은 게 있었어요. 제가 대학에서 역사를 배울 때만 해도 이른바 문헌고증사학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한 세대가 끝나기 전에는 지난 시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니까 산 사람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시대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인 것이고, 역사학은 죽은 사람의 시대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다는 식의 금기 또는 연구 관심의 제한이 있었어요.
제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해서 석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그게 우리 과에서 나온 세 번째 석사학위 논문이었어요. 일제 강점기나 현대사는 아예 연구를 할 수 없는 영역이었죠. 이 금기가 풀린 지 이제 겨우 30년쯤 돼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역사학이 지난 한두 세대 동안 우리 사회가 겪어왔던 혼돈과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특히 지금은 이들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민주주의’는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사안들과 두루 관계 맺은 개념이었어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1884년 『한성순보』에 처음 실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최지은
188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40년 된 거네요.
전우용
그렇네요. 지금이 2024년이니까 정확히 140년 됐네요. 그런데 처음부터 잘못된 번역어로 수입됐어요.
영어 ‘데모크라시’Democracy’를 한자어로 어떻게 번역할 거냐, 한자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이게 고민이었어요.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진출한다는 뜻의 ‘서세동점’西勢東漸은 ‘서어동점’西語東漸, 즉 서양 언어의 동양 진출이기도 했어요.
서양인의 말과 글을 이해하려면 번역이 필요했는데, 서양의 단어를 원래 있던 한자 단어에 대응시킬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 것이냐,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예를 들어 ‘낭만’이라는 단어는 ‘로망스’를 번역한 거예요. 한국인이 번역했다면 ‘풍류’ 정도로 했을 텐데 일본인들은 이걸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발음 나는 대로 썼어요. 그래서 일본식 한자어로 ‘낭만’이 된 거예요. 그런데 지금 중국인들 중에는 이게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단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일본의 한자어 번역이 중국으로 역수출된 케이스죠.
‘민주주의’도 비슷해요. ‘내셔널리즘’ ‘소셜리즘’ ‘코뮤니즘’ ‘페미니즘’ 등에서 보듯이 ‘이즘’은 ‘주의’로 번역됐어요. ‘데모크라시’에서 ‘크라시’Cracy는 ‘크라토스’Cratos에서 나온 말로 ‘통치’ 또는 ‘지배’라는 뜻이에요. 그 앞에 ‘데모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민중’이라는 뜻이고요. 민중이 다수였기 때문에 ‘다수’라는 뜻도 되죠. 그러니까 ‘민중통치’나 ‘민주정’으로 번역해야 마땅했는데, 왜 ‘민주주의’가 되었는가, 이것부터 따져보기로 하죠.
최지은
말씀하신 것처럼, 접미사 ‘이즘’-ism이 특정한 명사에 붙으면 일반적으로 그 명사는 특정한 신념, 주의, 행동, 상태 등을 나타내거든요. 근데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니까 사실은 ‘-주의’라고 번역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데모크라시에 ‘-ism’이 붙어서 민주주의가 되었을까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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