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행성으로
파상풍과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여행을 위해 파상풍 주사를 맞고 싶다고 하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남극에 갑니다.”
“그러면 여행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얼른 동의했지만 뭔가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남극에 가다니, 하지만 오래도록 바라던 일이 이뤄진 것이므로 그 꿈 앞에서만은 당당할 수 있다. 꿈의 크기로 본다면 나는 남극 시민권을 충분히 획득할 만한 사람이다. 다만 과학적 발견이나 연구와는 상관없으니 다소 ‘잉여적인’ 시민일 수는 있다. 남극에는 주권도 화폐도 국경도, 당연히 도시도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2024년이 시작된 1월의 첫 주이고 거실에는 25인치 캐리어가 온갖 짐을 품은 채 입을 벌리고 있다. 당장 입남극 비행기가 뜬다 해도 여기가 남극의 관문인 칠레 푼타아레나스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지만, 바로 들고 뛰어도 무방할 정도로 채비를 해놓았다. 짐을 미리 싼 건 극지연구소에 수하물 무게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의 짐 무게를 파악하고자 시작된 준비는 이후에도 멈춰지지 않았고 나는 이미 완성된 짐을 보면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3주 이상을 견뎌야 한다. 남극에 갈 예정이니까.
극지연구소에서는 여름이면 과학자들로 구성된 ‘하계 연구대’를 파견한다. 한국은 남미 대륙과 가까운 세종기지와 남극 내륙의 장보고 기지를 운영한다. 남극이 어떻게 생겼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엄지를 세운 손등 모양으로 설명하는 책을 읽고 겨우 새겼다. 엄지손톱 끝이 세종 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이라면 엄지 자체는 남극 반도이고 손등 전체가 남극점이 있는 남극 내륙이다. 그중에서도 엄지손가락 쪽은 서남극, 새끼손가락 쪽은 동남극이며 우리의 장보고 기지는 손목 중간쯤인 테라노바만에 자리한다.
남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오래전이다.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들에 강하게 끌렸다. 우선 남극에는 지폐가 없다. 돈과 신용카드를 들고 가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읽은 월동 대원들의 수기에서는 주로 초콜릿 같은 간식들로 기쁨과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서 나도 지금 초콜릿을 준비해두었다. 이걸로 호감과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지 아니면 그 정도의 관계도 맺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고열량의 간식을 다 먹어치우고 올지는 모르겠다. 모두의 환영을 받을 듯도 하고 모두의 무관심 속에 아웃사이더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며 운동을 싫어하고 체력도 좋지 못하다. 몇 년간 남극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왔지만 그 정보란 만년빙 위의 눈 한 송이처럼 보잘것없다. 낯선 이들 앞에 서면 긴장하고 겨울에는 100여 개의 핫팩을 비축해둘 정도로 추위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내 한계들도 남극을 향한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해한 열정과 투지였다.
남극에는 인간이 (거의) 없다. 1년 내내 남극대륙에서 지내는 육상동물도 없다. 남극에 다녀왔다고 하면 으레 사람들이 북극곰 봤느냐고 묻는다던데 나도 며칠 전 그런 질문을 받았다. “남극에 가면 북극곰도 보겠네!” 북극곰은 다행히 북극에만 있다. 만약 북극곰이 남극에 있다면 인간은 물론이고 바다에서는 시속 40~50킬로미터도 재빠르지만 육지에서는 더딘 펭귄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잠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머무르며 인간종種으로서 작고 단순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겪어보기를 원했다.
자연이 만든 지리적 경계 이외에 다른 인위적인 경계가 없다는 사실도 매혹적이었다. 누구도 남극의 주인이 아니며 국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의 빙원은, 빙산은, 유빙은 ‘국가’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행성처럼. 지구상에 그런 ‘없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숨이 좀 트였다.
편집자로 일하던 이십대 시절 극지연구소에 취재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는 남극에 대한 단순한 흥미를 더 반짝이고 간절하게 만들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급행버스를 타고 컴컴한 경인고속도로를 지나 퇴근할 때면 차창 밖 풍경이 얼음처럼 매끈한 어둠 속에 되비치면서 여기가 아닌, 그 없음의 대륙이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어느새 인터뷰 중에 다음 작업 이야기가 나오거나 독자들이 앞으로 쓸 작품의 공간을 궁금해할 때 ‘남극’이라고 조심스레 고백하기 시작했다.
남극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몇 년간 여러 경로로 시도했고 여러 경로로 거절당했다. 당연했다. 그곳은 되도록 인간의 발자국이 닿지 않아야 하는 곳이니까.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기소침해졌지만 포기는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남극의 장면들을 품고 상상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실제로 들은 적 없는 남극의 소리와 장면이 영사되며 거기서 살고 일하고 사랑하고 역경과 싸우는 인물들이 떠올랐다. 그러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쓰이지 못한 이야기는 가능할 때까지 내 안에서 말하고 흐를 테니까.
또 한 번 취재지원서를 쓰고 답을 기다렸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을 기약해봐야지 뭐 싶었지만 그럴 힘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비관도 들었다. 마침내 극지연구소에서 긍정적인 회신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날! 평소와 다름없이 카페에서 글을 쓰던 나는 벌떡 일어나 양팔을 들고 소리치며 감격하는 대신 곧바로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평소에도 스스로 꽤 계획적인 인간이라고 느꼈지만 그때는 정말 매뉴얼을 짜둔 듯 신속하게 다음 절차로 옮겨 갔다. 이틀 뒤 건강검진을 받았고 수면 위내시경 마취에서 깨어나면서도 남극에 가야 하는데 별 이상은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남극 기지에 파견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준비도 있고 연구소에서 요구하는 훈련들도 있다. 연구대에 준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극지일반교육, 육상안전교육, 기초안전교육, 해상생존교육, 아스파 관리계획교육이었다. 남극 자체가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대륙이지만 그중에서도 환경적, 과학적, 역사적으로 존재 가치가 높아 조심히 접근해야 하는 공간을 남극특별보호구역An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 줄여서 ‘아스파ASPA’라고 부른다. 아스파에 출입하려면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환경오염 가능성에 대한 계획서도 제출해 환경부와 외교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나 역시 동일한 절차를 거쳤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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