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언론은 트럼프 당선 예측에
또다시 실패했을까?
2024년 11월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후 대선 기간 내내 국내의 언론은 해리스 대세론이 압도적이었고, 대선 직전까지도 해리스의 우세 속에 트럼프가 추격하고 있다는 예측이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트럼프가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의 승리를 호언장담했던 언론들이 트럼프의 당선에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2024년에 다시 한번 재현된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은 언론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떤 기관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느냐에 따라 결과의 편차가 매우 큽니다. 따라서 언론사별 정치적 편향성을 고려하여 어떤 결과값이 가장 객관성이 높고 정확한 데이터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을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고 합니다.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를 밝히고 시작하는 순간 반대 지지자들은 조사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근에는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 이름을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사가 의도적인 질문 하나만 끼워 넣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여전히 하우스 이펙트가 여론조사 결과를 오염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 중간에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나만 넣어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전화를 끊어 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응답자가 여론조사를 완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표본에서 제외하겠죠. 실제로 CBS가 9월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는 총 59개의 질문이 들어가 있었는데 46번째에 트럼프의 개, 고양이 질문을 넣어 놨습니다. 충성도 높은 트럼프 지지자가 이 질문에서 전화를 끊어 버리면 나머지 14개 문항에 답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아예 제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하우스 이펙트 때문에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표본 집단 자체가 보정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 굉장히 편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NBC나 ABC 등에서 거의 공개적으로 해리스를 지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우리나라 언론들 역시 해리스의 지지율이 트럼프를 압도하고 있다고 그대로 대서특필하니,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해리스가 대세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NBC나 ABC와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 즉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는 이미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연거푸 엄청난 오차를 냈던 곳입니다. 대표적으로 NBC는 대선을 한 달 앞둔 2016년 10월 13일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11%p나 앞선다고 보도했다가 결국 트럼프가 이기는 바람에 큰 망신을 당했고, ABC 방송도 힐러리가 트럼프에 4%p 앞서 대선에 승리할 거라고 전망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렇게 2016년에 망신을 당한 대형 언론사들이 2020년 대선이 다가오자 여론조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선하여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정작 여론조사 결과 평균 오차는 오히려 두 배나 커졌습니다. 2020년 대선 직전 ABC 뉴스는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10.8%p나 앞섰다고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뉴욕타임스도 바이든이 9.8%p 앞섰다고 전망했지만 결과는 바이든이 4.5%p 앞서며 이긴 것으로 끝났습니다. 결국 바이든이 이기기는 했지만 오차가 너무 컸던 겁니다.
2020년 대선 예측이 가장 정확했던 곳은 거대 언론사가 참여하지 않아 하우스 이펙트가 덜한 전문 기관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편향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 기관 아틀라스인텔은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이 6.5%p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실제로 4.5%p 차이로 승리하면서 정확도에 있어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차 보정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레거시 미디어들은 지난 두 번에 걸친 참담한 대선 여론조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해리스의 당선을 위해 굳이 오차 보정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각 주별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 선거를 하는 미국 대선 제도의 특성을 무시하고 전국 단위 지지율만 반복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도 전국 득표에서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약 2.1%p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수에서 크게 뒤져 주요 경합주에서 패배하면 선거에서 진 것입니다. 사실 해리스가 4~5%p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선거인단 확보 측면에서는 여전히 트럼프와 해리스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전국 단위 지지율을 중심으로 보도하다 보니 해리스가 압도적으로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펜실베이니아나 위스콘신, 미시간, 조지아 등 경합주의 상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면 충분히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국 언론사들이야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있으니 대중의 편향성에 동조하려는 심리인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를 노리고 해리스 대세론을 만들기 위한 보도를 쏟아 내는 것이 일견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투표권도 없고 보도 내용으로 미 대통령 당선에 일말의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한국 언론들이 마치 우리 편을 응원하듯 해리스 대세론을 쏟아 내는 보도 행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원하는 편을 맹목적으로 응원하며 국민들이 현 상황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태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도하여 그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과 대처 방안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당장 미 대선 전 한국와 일본의 대미 행보에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일찌감치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파악하고 2024년 4월에 이미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트럼프를 만난 후, 지속적으로 트럼프와 교감을 쌓아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물밑 접촉만 했을 뿐 아소 다로 같은 고위급이 직접 트럼프를 만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평소 과시하기 좋아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 상황을 만든 셈입니다. 이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 부랴부랴 트럼프를 만나 봤자 4월부터 견고하게 유대를 쌓아 온 일본과는 다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효과는 트럼프의 유세 연설에서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9월 트럼프는 제조 강국의 제조업을 모두 미국으로 가져와서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한국과 독일, 중국을 거론했습니다. 세계적인 제조 강국 중 하나인 일본이 쏙 빠진 겁니다. 이 연설은 사실상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첫 번째 임기 때만 해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일 무역 불균형과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을 비판했고, 주일미군의 주둔 비용 증액을 요구하며 지속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2023년 일본의 대미 흑자가 712억 달러, 한국이 512억 달러였음을 감안할 때 한국보다 일본을 더 압박했던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2024년 유세 과정에서 일본이 미국의 견제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을 일본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예견하고 얼마나 사전 로비를 해 왔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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