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저작권의 탄생
1장
저작권의 의미
2021년 12월 16일, 소니 뮤직 그룹은 72세의 가수 겸 작곡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매입가는 약 5억 5,000만 달러였다.
모차르트는 운이 나빴다! 레이 찰스도 마찬가지.
노래와 음반이 편대 규모의 소형 항공기들을 사들일 만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책의 주제, 저작권에 있다.
스프링스틴의 평생 작업물을 매입한 사람들에게 저작권이란,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가수의 노래가 사용될 때마다악보, 리메이크, 옛 음반의 방송 및 새 음반의 스트리밍 등등 수수료를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소니는 예상되는 회수액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했을 테니, 다음 세기에 스프링스틴의 전 세계 팬들로부터 뽑아내리라 목표하고 있는 금액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반면 여러분과 나 같은 일반인에게 저작권은, 근현대 문화물의 대부분―스프링스틴이나 비틀스뿐만 아니라 국적을 불문하고 현존하는 창작자들이 만든 모든 영화, 만화, 소설, 연극, 그림, 발레, 비디오 게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화번호부, 바나나 의상―을 유료로 또는 엄격한 제약하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손자들이 은퇴한 후까지도 쭉.
서너 세대에 걸쳐 모든 종류의 창작물을 점유하고 이용해먹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저작권법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거액을 긁어모을 수 있는 돈줄이 될 만큼 그 범위와 기간, 위력이 확대된 지는 불과 수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 저작권이 예전보다 더 중요해진 만큼, 현대 생활에서 그 권리가 갑자기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연유를 이해해야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 아이디어의 씨앗이 처음 뿌려진 뒤 몇 세기 동안 싹을 틔우고 자라며 가지를 내다가 단기간에 역대 최대의 현금 지급기로 탈바꿈한 경위를 설명하고자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예전에는 당대의 위대한 지성들이 유창한 웅변을 토해내는 시끌벅적한 공개 토론을 통해 저작권이 수정되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17세기에 존 로크, 대니얼 디포, 알렉산더 포프가, 그리고 후대의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토머스 매콜리영국이 시인·역사가·정치가(1800~1859년).─옮긴이가 저작권 탄생에 기여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극작가 보마르셰, 수학자 콩도르세 그리고 최초의 백과전서를 편찬한 드니 디드로가 저작권을 명료하고도 공공연히 지지했다. 19세기의 위대한 작가 중 다수, 특히 오노레 드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가 저작권법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저작권은 철학자나 시인의 뚜렷한 개입 없이, 공적인 토론도 거의 없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오늘날의 창작자들 그리고 창작물의 소비자들 가운데, 음반 무단 복제로부터 음반 제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을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미국 연방 법전 제107조, TRIPS무역 관련 지식 재산권에 관한 협정,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 CTEA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는?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큰 재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이 법적 조치들은 각각 1971년, 1976년, 1994년, 1996년, 1998년에 이루어졌다. 애즈버리 파크 출신의 이 가수가 처음 기타를 집어 든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저작권 관련 법들이 미국에서 제정되고 국제 협약을 통해 세계로 확장되면서 개인의 권리, 법인의 특권, 전 분야 예술가들의 지위·실질적 보수·창작의 자유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철학자, 시인, 음악가뿐 아니라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는 광범위한 분야의 창작자들은 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까? 현재 거의 모든 형태의 창작과 발명이 세계적으로 체계화되고 현금화되는 기본 구조는 정치적·사회적 논쟁의 범위 밖에 있는, 그저 기술적인 문제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초래된 현 상황이, 타인의 정신적 산물을 소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과연 이득인지 이제라도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현대의 저작권은 삶의 기본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물이다. 그 복잡한 역사의 각 단계는 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번 내려진 판결에 충실”하자는 선례 구속의 원리stare decisis에 따라 각각의 단계가 차곡차곡 쌓여 올려졌다. 다시 말해 저작권이 곧 저작권의 역사다. 우리가 지금 인간 정신의 산물을 통제하고 보호하고 있는 방식을 설명하려면, 그 경위를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기묘한 점은, 창작물이 만들어지고 배포되는 방식이 어마어마하게 변했는데도 저작권법 용어는 여전히 맨 처음에 사용된 단어들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은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생겨났다. 책 저자와 그의 양수인讓受人들에게 책의 인쇄 및 판매에 대한 독점을 단기간 허용해주는 것이 최초의 형태였다. 그런 독점이 허용되는 대상은 그 후 몇 세기 동안 점점 많아졌고 독점 가능 햇수도 거듭 늘어났다. 그다음엔 저작권의 범위가 차차 넓어져 축약, 각색, 공연, 번역 등등의 2차적 사용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저항이 있었지만 살금살금 전진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저작권을 멈춰 세우려는 철학적·윤리적·현실적 논거가 먹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회의론자들은 처음부터 쭉 틀렸던 걸까? 옳고 그름을 떠나 저작권은 사회적·산업적·기술적 진보의 불가피한 결과, 즉 현대화의 부산물일까?
그 답은 ‘아니다’이다. 첫째, 현대 저작권법의 부정적 효과 중 다수는 이미 18세기에 예견된 바 있다. 타당한 경고들이 묵살당했을 뿐이다. 둘째, 저작권이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현대 세계의 형성에 역동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부작용이 아니라 그 흐름 자체를 밀어붙이는 거대한 힘이다. 그러나 현대화의 다른 동력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한 가지 갖고 있다.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좀 더 공평한 토지 소유를 위한 격렬한 투쟁이 여러 번 벌어졌다. 천연자원과 생산적 자산에 대한 더 평등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대혁명이 일어났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더 공정한 주택 공급, 교육, 보건을 촉구했다. 하지만 저작권의 더 공평한 분배를 외치고 나설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작권과 그 자매들인 특허권·디자인권·상표권·퍼블리시티권통틀어 ‘지식 재산권’이라고 부른다은 다수가 이용하거나 즐기는 저작물, 장치, 서비스, 이미지로부터 임대료‘로열티’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를 받을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단 한 명의 창작자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임대료를 어떻게 더 균등하게 분배할 수 있겠는가? 그 목적 자체가 이미 단수의 창작자와 다수의 대중 사이에, 텍스트·이미지·발명품·이름·브랜드의 ‘소유자’와 ‘사용자’ 사이에, 권리 보유자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하는데 말이다.
이 시스템의 수혜자가 찰스 디킨스나 빅토르 위고처럼 큰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을 때는 완고한 평등주의자들의 눈에도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소수였고, 위대했으며, (대부분은) 진보적이었다. 윌리엄 새커리가 『허영의 시장Vanity Fair』으로 벌어들인 수입이나 피카소가 그림으로 축적한 부에 분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상업적 가치가 있는 저작권은 대부분 예술가가 아닌 법인이 갖고 있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사들인 회사처럼 대형 법인인 경우가 많은데,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의 저작권 소송은 창작자와 저작권 침해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임대물을 점유하려는 거대 기업 간의 싸움이다. 이런 법적 분쟁에 쓰이는 용어는 300년 전과 거의 비슷하지만 이해관계는 변했다. 지금의 고액 소송은 남들의 지적 산물에 수십 년간 라이선스 요금을 부과하는 대기업 사이의 세력 균형을 조정하는 역할만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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