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달
이 이야기는 오래전
하늘에서 달이 사라졌던
몇 해간의 이야기이다.
기도로 무장한 인간들이 오늘도 달에게 달려들고 있다.
“무엇이든 이루어 주시는 달님, 어떤 아이라도 내려 주시면 사랑으로 키울게요, 제발.”
“달님, 제 자랑스러운 남편이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부디 그이를 굽어살펴 주시고…….”
“자비로운 달님,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저놈만 없으면. 달님, 저놈만!”
“야! 이 달님아! 그렇게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빌었건만…….”
“모든 걸 주시는 달님이시여, 달님이시여, 나의 아이가 이 땅을 무사히 넘어…….”
동그랗고 뽀얀 달은 하루도 빠짐없이 인자한 미소로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쯤 감은 눈 아래로 드러난 눈물 자국은 달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했다.
사람들은 달이 자신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했다. 부모처럼 미소 짓고, 눈물짓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은 눈을 움직이지 못할 뿐이고 입꼬리를 내리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달은 울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심지어 달에게 기도를 들어줄 신비한 힘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인간의 한심함이 달을 화나게 했다. 달은 표정을 바꿀 수만 있다면 인간을 무섭게 노려보고 싶었고 손이라도 있으면 귀를 떼어 버리고 싶었다. 울 수 있다면 매일 울고 싶었다.
산과 강이 몇 번이나 변했지만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달은 인간들이 미웠다. 그렇다고 달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랑과 축복의 기도를 찾아 기쁨의 순간을 만들려고도 했다. 하지만 순수했던 기도들도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욕심의 기도로 변해 갔다. 결국 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친절도 사라졌다.
‘제발 기도를 멈춰 주기를!’
달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빌었다. 하늘과 별과 땅과 벌레들에게도 빌었다. 심지어 기도하는 자들에게도 빌었다. 마치 인간처럼 구걸했다.
*
달은 그렇게 어둠 속에 혼자 남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나운 기도들이 하늘을 덮쳤다. 분노와 절망과 공포의 기도들로 하늘이 터져 나갔다. 전쟁이었다.
달은 많은 전쟁들을 봐 왔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기도가 휩쓰는 전쟁은 처음이었다. 기도는 천둥소리로 변해 달의 귀를 때렸다. 귀를 막을 손도 도망갈 다리도 없는 달은 또다시 기도에 잡아먹혔다.
달은 바랐다. 먼지보다도 작게 부서져 한 톨의 자신도 남지 않기를. 그 누구도 자신에게 기도할 수 없기를. 달은 텅 빈 껍데기만 남아 하늘이라는 감옥에 매달려 있었다.
우주의 시간을 살아 낸 달이지만 대전쟁을 내려다보는 건 쉽지 않았다. 달은 고개를 돌릴 수 있기를, 눈감을 수 있기를, 올라간 입꼬리를 조금이라도 내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대단한 전쟁도 자연의 시간보다 길지 않았다. 인간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스스로를 파괴했다.
기도 소리가 잦아들었다. 긴 전쟁이 끝나 가고 있었다.
*
“응?”
모깃소리같이 작고 앵앵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울음소리? 잘못 들은 거겠지.’
달은 귀를 열었다.
“으에엥!”
이번엔 북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제발, 안 돼.’
인간의 기도만 아니라 울음소리까지 들리게 되는 건 아닌지 달은 두려웠다.
기우뚱 ― 달을 잡고 있던 뭔가가 툭하고 끊어졌다.
거대한 힘이 달을 짓밟았다. 한 번도 움직여 본 적 없는 달은 눈을 데굴거렸다. 폭풍 같은 바람이 맹렬히 달려들었다. 온몸의 분화구가 떨렸다. 번쩍하는 찰나 주변의 모든 것들이 흐르는 빛처럼 쓸려 내려갔다. 눈을 떠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돌이치는 불덩어리가 얼굴을 뭉개 버렸다. 하늘이 달의 몸을 조여 왔다. 몸을 때리는 것 같기도 떠받치는 것 같기도 했다. 뜨거워졌다가 금세 차가워졌다. 달은 세로로 길쭉해졌다가 가로로 납작해졌다. 달려드는 바람에 입과 목구멍이 열리고 눈알은 거의 튀어나올 뻔했다. 달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다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소멸.
소멸이었다. 달은 이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다. 땅의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부러워했다. 드디어 달의 차례가 온 것이다. 달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쿠앙―!
달의 귀에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빠르게 뒤흔들렸다. 놀랄 새도 없이 바로 섰다 싶으면 뒤집혔고, 앞이 되었나 싶으면 뒤가 되었다. 입안으로 흙과 나뭇잎이 쉴 새 없이 흘러들어 왔다가 나갔다.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눈을 찌르고 할퀴었다. 달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 번도 감아 본 적 없는 눈이었다.
달은 자신이 구르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한참을 구르던 달이 너른 평지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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