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수사적 고향 너머
당신의 ‘수사적 고향’은 어디인가? 당신은 누구와 이야기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가? 철학자 뱅상 데콩브에 따르면, 어떤 인물의 수사적 고향은 “그가 자기 활동과 행적에 부여하는 이유라든지 그가 표명하는 불만, 혹은 그가 표현하는 찬사를 대화 상대자들이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멈춘다. 수사적 고향과 영토적 고향이 같은 이들은 드물 테다. 고향이 그립고도 멀게 느껴진다면, 고향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수사적 고향이 사라지기 때문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고향에 좀체 머무르지 못했다. 같은 집, 같은 동네에서 수십 년 얼굴을 맞대도 거리낌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 학부모 회장인 동네 지인이 행사 축사를 못 써 끙끙대자 아버지는 대학생이 된 내게 도움을 구했다. “그걸 제가 왜 써요?” 퉁명스러운 대꾸에 그는 버럭 화를 냈다. “그깟 거 한 장 써주는 게 무슨 대수라고!” ‘우리가 남이가’ 세계의 암묵지가 내 상식을 거스르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조금씩 집을 떠날 채비를 했다. 내가 애써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공감하고 위로받는 수사적 고향을 찾아 더 멀리.
그런데 인류학에 입문하면서 타자를 연구하겠다고 발품을 팔기 시작하니 이곳저곳에서 ‘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를 반기면서도 불편해하는 사람들, 내 믿음을 수상쩍어하는 시선들, 내 감정을 휘저은 사회적 고통을 별것 아닌 듯 만드는 제도와 미디어. 고심하다 늦게 시작한 학문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내 아버지를 떠나듯 ‘아버지들’의 세계와 홀연히 작별하지 못했다. 그/것이 저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이 그/것을 꿈꾸거나 좌절하게 만드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타자의 수사적 고향에서 비비적거리다 보면, 때로 차이들 심연의 공통성이 보였고, 이전의 내가 내뱉었던 독단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비판의 본질적 기능이 이러저러한 식으로 통치받지 않겠다는 ‘탈예속화’에 있다면, 이해의 밀도를 높인 뒤에 내놓는 비판은 달라져야 했다. 비판은 연구자인 나만의 몫이 아니다. 그/것도 세계를 해석하고 비판한다. 내가 이 사실을 외면하거나, 내 언어가 더 그럴듯하다고 단정하거나, 공인된 학계를 방패 삼아 비판의 권위를 독점했을 뿐.
이해와 비판이 서로를 보완하며 조금씩 두터워지자 30여 년 전의 아버지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부장의 자존심이 한없이 무너져내렸던 시절, ‘잘 키운’ 딸 하나 인정의 밑천으로 삼으려다 매몰차게 거절당한 아버지. 가족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자율적 존재가 되길 바랐을 뿐, 저 자신이 부모의 불안정 노동과 혈연 자원이 부족하게나마 얼기설기 엮인 그물망임은 외면했던 딸. 아버지의 취약성을 한 발짝 떨어져 개인 너머의 사회적·역사적 배치를 통해 들여다보니 오히려 그와 가까워졌고, 비로소 ‘고집 센 가부장’ 이면의 그가 보였다.
“선생님!” 아버지와 병원에 동행하던 중 뒤편에서 들려온 소리. 길가의 노점상이 반갑게 부르며 달려온 대상은 내가 아닌 아버지였다. 어지러웠다. 평생 주류에 속하기를 바랐던 내 아버지가 한때 고향의 인기 많은 야학 교사였다고? 패기 넘치는 잡종의 삶을 살았던 그를 왜 나는 보지 못했을까? 아니, 보기를 거부했던 건 아닐까? 그가 살아온 입체적 삶에 내 시선이 좀더 가닿았더라면, 나는 그가 가장의 이름으로 행사한 폭력을 영구 제명의 근거로 봉인해버리지 않고 대화와 성찰의 계기로 만드는 데 더 공을 들였을까? 세상의 ‘아버지들’에 대해, 나와 그가 맺는 관계에 대해, 그토록 부종했던 그와 닮아가는 나와 우리에 대해 던져야 할 질문이 여전히 많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인류학자인 내가 세계와 대화하며 이해와 비판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들을 그러모은 것이다. 나에게 인류학적 세계 읽기란 단단한 이해를 거쳐 책임 있는 비판을 길어내는 과정이었다. 이해가 모든 앎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되었고, 비판이 손쉽게 조준할 과녁만 찾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이해가 홀연한 불가지론에 닻을 내리면서 불의에 눈감게 되는 사태도 저어됐고, 비판이 제 수사적 고향을 판단의 유일한 준거로 삼는 것도 우려됐다.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믿음, 가치, 윤리, 삶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길 바랐고, 이러한 비판이 무수한 세계의 마주침을 이끌어 삶의 이해를 확장하길 원했다. 이 과정은 때로 자기수양에 가까워서 ‘더’라는 어중간한 단어를 붙들 수밖에 없다. 더 단단한 이해를 거쳐 더 책임 있는 비판을 시도하기. 그리하여 진리를 포획한 권위로부터 이해와 비판을 해방시키기.
모든 인류학자가 비판을 소명으로 여기진 않는다. 다양한 현장을 가로지르다 보니 이해에는 일가견이 있어도 비판에는 뜨뜻미지근할 때가 훨씬 더 많다. 거기에는 내가 함부로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신중함, 그들의 사유와 행동으로부터 아직 배울 게 더 많다는 겸손함, 단 하나의 세계만을 강요하는 근대 존재론에 대한 거부감 등 새겨볼 이유도 적지 않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우리가 연구하는 세계의 복수적 전망을 실현하려면 인류학의 존재 이유를 무엇보다 “사회가 그 미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교육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섣부른 비판보다 다른 세계에 대한 진지한 배움이 먼저다.
주변을 돌아보면, 엘리트 집단이 독점해온 비판은 자리를 잃고 회의와 냉소에 잔뜩 주눅이 든 모양새다. 평범한 시민이 다채로운 경로와 방식으로 발언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 됐다. 제도 교육, 디지털 기술, 민주주의가 요란한 잡음에도 꾸준히 가지를 뻗어내는 시대에 ‘무지한 군중’과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는 자가당착적인 이분법이 틈입할 여지가 있을까. 이 시대는 엘리트가 보이고 싶은 자신과 숨기고 싶은 자신을 걸려내는 특권을 더는 인정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교수’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강남 출신’ ‘정규직’ ‘세습중산층’ 등의 간명한 수사로 노출되고, 비판의 자격을 심문당하는 처지가 됐다.
비판의 쓸모를 묻는 목소리도 전례 없이 커졌다. 세상만사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 일갈하는 비판은 이제 학계에서조차 입지가 좁아졌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고, 삶 전반의 불안정성이 팽배하며, 성폭력의 양태는 날로 극악해지는 마당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열심히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굼뜬 비판가는 썩어빠진 세상에 직접 불을 지르는 전투적 행동가와도, 제 부족이 즐겁게 살면 다른 부족들도 부러워 찾아올 거라고 믿는 발랄한 공동체주의자와도, 세상의 문제들을 잘게 쪼개어 아이디어와 모델을 동원해 ‘솔루션’을 제시하고 ‘임팩트’를 도출하는 혁신가와도 교감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하지만, 비판에 대한 갖은 회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대중 필자의 시대에도 비판의 위계는 여전히 남아서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교수 신분으로 글 청탁을 받는 일이 빈번했다. 칼럼에 달리는 댓글에 심장이 벌렁거리면서도, 나는 업적 점수로 환원되고 유치한 경쟁 시스템에 포획된 논문보다 비평 한 페이지를 쓰는 데 때로 더 공을 들였다. 특히 내 주된 연구 주제인 빈곤이나 연구 현장인 중국처럼 관심의 편중이 심한 대상을 제대로 공론화하고 싶다는 바람도 컸다. 이렇게 시작된 사회 비판, 『한겨레』가 지면을 제공하면서 요청한 ‘세상 읽기’는 처음부터 비틀거렸다. 연구 현장의 주름진 경험을 비판을 위한 소재로 단순화할 위험도 컸고, 정규직 교수란 희귀종이 시대의 불안정성을 왈가왈부하는 위선을 벗어날 방도는 까마득했다. 어쭙잖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가 비판의 쓸모를 되물으면서 움츠러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판을 소중히 여기며,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라도 견실한 비판 공론장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 문화적 취향, 정치적 선호, 삶의 지향, 타자를 향한 시선이 알고리즘에 따라 분기하고 데이터로 묶여 상업화되는 세계는 관계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우리 감정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든다. 비판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비난은 벨 듯한 언어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열중하면서 평범한 시민들로 하여금 갈등과 혐오를 피해 자신의 수사적 고향을 찾아 칩거하게 만든다. 이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요새를 만들고 ‘안전’을 기준으로 타인-침입자를 감별하는 사회는 우리를 일상적 긴장 상태에 가둔다. 코로나19 ‘종료’가 선언된 이후에도 세상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