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등대선의 공격을 받고 불타오른 로열제임스호에서만 해도 천명에 이르는 승무원 가운데 거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돛대가 셋 달린 이 배의 침몰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는 전해지지 않는다. 여러 목격자들은 영국 함대의 지휘관이었던, 거의 150킬로그램에 이르는 육중한 몸의 쌘드위치 백작이 후갑판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절망적으로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그의 부풀어오른 시신이 몇 주 뒤에 하리치싸우스월드에서 남쪽으로 60킬로가량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근처의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제복의 솔기들이 뜯어져 있고 단춧구멍들도 찢어져 있었지만, 가터 훈장1348년 에드워드 3세가 창설한 영국의 최고훈장만은 조금도 화려함을 잃지 않고 번쩍였다고 한다. 당대 세계 전체에서 그런 전투 끝에 그토록 많은 사망자가 생긴 도시는 몇 안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전체적인 파괴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몇배는 되었고, 어차피 대부분 파괴될 운명을 가진 배들을 건조하고 무장하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여 가공하고, 광석을 채굴하여 제련하고, 쇠를 단조하고 돛을 짜고 바느질하는 등 얼마나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스타보런, 레볼루션, 빅토리, 그루트 홀란디아, 올림판 등의 이름을 얻은 이 진기한 물체들은 세계의 숨을 동력으로 하여 잠깐 동안 바다 위를 미끄러져가다가 이내 다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경제적 이익을 탈취할 목적으로 싸우스월드 앞에서 치러진 이 해전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지만, 이 전투에 소비된 비용에 비하면 거의 사소하다고 할 만한 힘의 이동과 함께 네덜란드의 몰락이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이재영 옮김, 창비2019, 94~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