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글을 못 쓰려는가보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글을 안 쓰고 퍽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늦여름, 리모델링하기 전의 광화문 교보문고 소설 코너에 갔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어서 책을 고르려던 것이었다. 수천 권의 소설들이 꽂힌 벽면 앞에 섰을 때 나는 왜 눈이 뜨거워졌던 걸까. 마침 매장에 조용히 울리고 있었던 피아노곡 때문에? 수천 권의 소설들이 뿜어낸 어떤 에너지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낯익은 세계로 돌아왔다는 감정 때문에?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인생을 그 세계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모든 소설들을 쓴 수천의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등신대의 회색 종이 앞에 서서 한 줄씩 점을 뚫었을 것이다. 생존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 한강, 『디에센셜 한강』, 문학동네2023,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