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살해
새끼를 죽이는 암컷들
1981년 영장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가 낸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는 진화생물학계를 뒤흔들었다. 이 책이 남성 진화생물학자들이 규정한 여성성 또는 모성이란 것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증명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윈을 비롯한 남성 진화생물학자들은 수컷은 능동적인 반면, 암컷은 새끼를 돌보고 양육하는 데에만 많은 에너지를 쏟는 수동적인 존재로 본다. 이런 시각은 아주 오랜 시간 세계를 지배해 왔다.
허디는 반발했다. 암컷이 그런 존재기만 했다면 결코 진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암컷도 수컷만큼이나 능동적인 존재였다. 서열 경쟁에서 승리한 수컷은 패한 수컷을 죽이거나 쫓아낸다. 그 수컷의 새끼도 죽인다. 어미 어깨에 매달려 있거나, 등에 업혀 있거나, 허리에 감겨 있던 새끼가 어느 날 승리자 수컷에게 살해당하는 것이다. 이때 어미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자기 새끼를 죽이는 등의 패악을 저지르고 공동체 질서를 무너뜨리는 침입자 수컷이 있으면 다른 암컷들과 연대해 쫓아낸다. 쫓아낼 수 없는 경우엔 새로운 수컷 우두머리를 받아들인다. 번식과 진화를 위한 ‘적과의 동침’ 전략이다. 또한 암컷은 새끼가 죽임당할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번식 파트너를 둔다. ‘난잡성’을 진화 전략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허디의 근거는 많은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 사실로 밝혀지면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수컷 중심의 진화사도 당연히 바꾸어 놓았다. 암수가 서로 영향을 끼치며 함께 진화해 왔음을 인정하는 공진화가 정설이 되었다.
모성에 대한 오해
허디는 1999년 《어머니의 탄생》을 출간했다. 인간 여성을 비롯한 암컷의 본성을 연구한 책이다. 아마존 저지대와 아프리카 등지의 부족들이 주 연구 대상이었다. 이 책에서 허디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만약 아기에 대한 여성의 사랑이 본능적이라면 긴 역사와 여러 문화에 걸쳐 어머니 스스로 아기를 돌보지 않거나, 아기의 죽음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준 사례가 왜 그토록 많은가.”
허디에 따르면, 1780년 경찰 자료만 봐도 파리 같은 도시에서는 태어난 아기의 대다수95퍼센트가 유모에게 보내졌다. 동물 세계를 봐도 그렇다. 모든 암컷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일에 충실한 건 아니다. 암컷은 자기 나이와 신체 조건,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새끼를 낳을지 말지 결정한다. 새끼에게 헌신할지 말지, 또한 얼마나 헌신할지도 자신의 상황과 주변에 도와줄 존재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한다. 이를테면 짝을 잃고 혼자가 된 경우 공동체로부터 양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새끼들을 혼자 기르기보다 죽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쥐가 그 예다. 어미 쥐들은 양육을 도울 수컷이 없다면 새끼를 낳은 후 바로 죽인다.
설치류 일부는 출산 전에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집쥐, 흰발생쥐, 정가리언햄스터, 목깃레밍 그리고 들쥐 일부는 임신 중에 자신의 새끼를 죽일 수도 있는 낯선 수컷이 침입하면 태아를 흡수해 버린다. 즉 뱃속의 새끼를 분해해 조직과 영양분 등을 흡수해 버림으로써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다. 허디는 이것이 “효과적인 초기 중절”이고, “태어난 후 뒤늦게 새끼를 잃는 더 큰 슬픔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간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물학뿐 아니라 역사학, 인류학, 인구학 분야 연구 결과에서도 자식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들이 발견된다. 허디에 따르면, “영아기는 우리가 상상하듯 항상 따듯한 사랑의 품 안에 안전하게 안긴 그림 같은 장면”은 아니었으며, 각 개인이 위험천만한 과정을 거치며 지나가는 기간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데 평생을 희생하는 ‘어머니’와 거리가 먼 어머니들은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이런 역사적 자료는 모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여성이면 모성을 타고난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려는 사회의 계략일까.
유기와 살해의 이유
암컷이 새끼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일은 생물이 진화해 오는 동안 계속 있었다. 암컷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새끼를 생존시켰다. 그 조건이란 바로 양육할 수 있는 ‘자원’이다! 여기서 자원이란 먹이는 물론 자신을 도와 함께 양육하는 존재를 말한다. 이들은 인류학에서는 ‘돌봄꾼helper’ 또는 ‘대행부모/대행어미allomother’라고 한다. 이들은 젖을 물리거나 먹이를 주거나 위험에서 보호해 주는 등 부모가 하는 유형의 돌봄을 제공한다. 코끼리, 난쟁이몽구스, 프레리도그, 사자, 목도리여우원숭이, 꼬리감는 원숭이, 그리고 박쥐처럼 어미가 모계 혈육과 함께 사는 경우에 자주 보고된다.
인류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수렵채집 사회에서부터 놀라울 만큼 광범위하게 대행부모가 존재해 왔다. 가령, 남아메리카에 사는 작은 솜모자타마린비단원숭이과에 속하는 포유류의 일종 어미는 대부분 쌍둥이를 낳고 가끔 세쌍둥이도 낳는데, 수컷 그리고 집단의 다른 구성원의 도움을 받아 새끼를 기른다. “수렵채집인을 포함한 영장류 어미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과 함께 자식 돌보는 일을 나눠 왔”으며, “주변에 새끼 기르는 일을 도와줄 존재가 있는 한, 아주 운이 없는 아이들도 부모가 원하는 아이가 된다.”
하지만 대행어미의 손을 빌릴 수 없는 경우 대다수의 솜모자타마린 어미는 새끼 여러 마리를 기르는 힘든 임무에서 벗어나려 한다. 자신이 돌볼 수 있을 만큼의 새끼만 남기고, 나머지는 대개 출산 후 72시간 안에 버린다. 허디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영아 유기와 살해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본다.
영아 살해를 생각할 수 없는 곳,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다른 여성을 고용해 아기를 보내는 일이 없는 곳, 그리고 아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일도 없고 포대기에 싸서 나무에 매다는 일이 없는 곳은 여성이 어느 정도 번식의 자율성을 갖고 있으며, 제법 믿을 만한 형태의 피임법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어머니의 보살핌의 일부를 대행어머니에게 위임할 수 있는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를 자신의 재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성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한결같고 똑같은 유형으로 발현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새끼를 버리거나 죽이는 행위는 어미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다양한 환경과 사회적 조건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동물 세계에서도 인간 세계에서도 영아 유기와 살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보지 않고 어미만 비난하는 것은 근본 원인을 가리는 일 아닐까. 이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허디의 통찰처럼 “어머니가 된 여성은 모성의 지뢰밭을 지나게 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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