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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미래의 시작
‘높은 확률로 지적장애, 행동 문제, 자폐의 위험이 있음.’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앉아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아이 옆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논문을 읽으면서,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르는 의학용어를 영한사전에 하나하나 넣어보면서, 나는 내 인생이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갓 태어난 아이는 일반적인 유전자 구성과 조금 다른 희귀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몇 가지 의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논문에서 아이가 미래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의 목록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지적장애와 자폐를 예고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던 몸집이 큰 자폐 아이를 떠올렸고, 〈백치 아다다〉나 〈벙어리 삼룡이〉 같은 소설 속 인물의 묘사를 되짚어보았고, 한때 큰 인기를 끈 〈레인맨〉, 〈포레스트 검프〉 등의 영화에 등장하던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한때 가까웠으나 이제는 연락이 뜸해진 사람들의 소식을 묻다가 “그 집 아이가 장애가 있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낮추고 슬픈 표정을 잠시 지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는 어떤 삶일까? 가장 먼저 남편과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슬픔이었다. 아픈 아이가 가엾어서 슬펐고, 아이의 미래가 슬펐고, 우리가 살던 평범한 세상을 잃어버린 것이 슬펐다. 그다음에 몰려온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렇지만 막연히 슬프고 어려울 것으로 짐작되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물을 곳이 별로 없었다.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와 전화선 너머로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대화였고, 미국에는 아직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쓴 수기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유전 증후군의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뭐든지 읽어보았다. 다운증후군 아이의 부모가 기록하는 블로그,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목사님의 에세이, 뇌성마비 아들의 휠체어를 끌고 달리는 아버지의 수기, 청각장애 아동의 부모를 위한 지침서들…. 책 안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내 모습과 맞지 않는 듯이 느껴졌다. 그들처럼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가 힘들었다.
며칠 후 병원의 유전학자인 닥터 골라비가 병실에 찾아와서 무슨 질문이든지 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이 아이와 같은 유전 정보의 아이를 찾아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조곤조곤 말을 쏟아냈다. “너는 유전적으로 정상인 아이를 하나 보면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공부를 잘할지 못할지, 착하고 남을 돕는 사람이 될지 악인이 되어 교도소에서 삶을 마무리할지 알 수 있겠니? 장애가 있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마찬가지야.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나는 머릿속에서 막연히 ‘장애가 있는 아이’와 ‘장애가 있지 않은 아이’를 나누고, 그 부모의 인생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불행한 삶’과 ‘그렇지 않은 행복한 삶’의 두 갈래로 나눠지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닥터 골라비는 아이와 그 가족의 인생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부모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해주었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의 유전질환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조합도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축복이지 않니? 아무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축복이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 참 닥터 골라비다웠다. 그는 소아과의사이자 유전학자로 40년 넘게 일하며 유전자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을 지켜본 사람이었는데, 몇 번이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와 자기가 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닥터 골라비는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그리고 그 아이와 어떤 인생을 살기로 결정하는지에 따라서 부모의 삶이 바뀐다고 말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그의 낙관주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두려움과 슬픔을 옆으로 밀어두고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의 놀라움과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혼자서 하기 어려워했다. 아주 이르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도 3주 동안 눈을 뜨지 못해고, 인큐베이터 바깥에서 숨을 쉬는 데만도 몇 주가 걸렸다. 청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우유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서 위루관을 달고서야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이 쏟아졌다. 일주일에 너덧 번은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니 운전면허를 땄고, 아이의 위루관에 붙은 기계를 조작하는 법을 배웠으며,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의 치료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영어를 연습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소아과 지침서에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는 다 알아서 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알아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습을 통해서 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뇌의 가소성 이론이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뇌가 손상된 상태라도 계속된 학습과 연습을 통해 기능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에 최대한 자극을 줌으로써 뇌의 구조와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장애 아동의 조기중재early intervention, 3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제공되는 특수교육 서비스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라도 반복해서 시키다 보면 뇌가 그 기능을 작동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온갖 치료사들이 집을 방문해서 아이가 삶에 필요한 기능을 습득할 수 있도록 부모를 가르쳤다.
물리치료사는 나중에 아이가 기는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팔과 다리를 번갈아서 접었다 폈다 하는 운동을 시키라고 일러주었다. 작업치료사는 아이가 입으로 우유를 먹지는 못하지만 물이라도 조금씩 삼키는 연습을 시키고, 입 안쪽의 근육을 손으로 자극하라고 했다. 놀이치료사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장난감을 손에 쥐게 한 후 흔들어주고, 아이의 손을 잡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수화를 가르치는 교사가 와서 나에게 간단한 수화를 가르쳤다. 상황을 보여주고, 단어를 말하면서 거기 맞춰 손을 움직였다. 처음 배운 단어는 모은 손가락을 서로 부딪쳐서 ‘좀 더more’, 편 손가락을 털어서 ‘그만all done’이었다.
인간은 특정한 발달단계마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후 7개월 때 혼자서 앉고, 기고,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물건을 바꿔서 쥘 수 있다. 12개월이 되기 전에는 “엄마”, “아빠”라고 말하고, 간단하게 “이거 줘”라는 요청에 맞춰 물건을 건네준다. 18개월 전에는 일어나서 걷는다. 스스로 배울 수 없다면 너무 늦지 않게 뇌에 그 기능이 입력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일반적인 발달단계에서 너무 뒤처지면, 해당 기능과 연결된 뇌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유아 발달단계 차트는 대부분의 부모에게 소아과에 갈 때마다 가볍게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겠지만, 나에게는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을 담은 커리큘럼이었다. 그러니 매일 마음이 바쁘고 조바심이 났다.
아이는 바퀴 달린 자동차 장난감들을 유독 좋아했는데, 12개월에 둥글게 벌린 손을 옆으로 두 번 반복해서 움직여 ‘자동차’라고 수화로 말했다. 아직 목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단어를 말할 수 있다’라는 발달단계를 통과했던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했고, 집을 방문하는 수화 선생님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자동차’라고요! 우리 아이가 ‘자동차’라고 수화로 말했어요! 정말 멋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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