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가지마다 피어오르는
봄, 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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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이』 이명환 글·그림 | 한솔수북 | 2020 |
아버지, 당신이 존재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 백화현
자전적인 ‘가족’ 관련 그림책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는 이명환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작가는 파키스탄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만난 후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해요. 그 꿈은 2019년 첫 작품 『할아버지와 소나무』를 통해 현실이 되었고, 이듬해 발표한 『미장이』를 통해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 이 책을 통해 그는 ‘미장이’ 아빠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의 진한 유대와 사랑을 몬드리안이나 페르메이르의 그림만큼이나 멋진 장면들과 함께 생동감 있게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빠는 흙손으로 회반죽을 개고 타일을 붙이는 미장이입니다. 아빠는 새벽 일찍 길을 나서고, 때로는 일을 따라 전국을 도느라 한 달씩 집에 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늘 가족 곁에 있습니다. 엄마는 아주 멀리서 돌리는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를 금세 알아차리고, 아이는 자기 집 목욕탕과 자주 가는 수영장 바닥에서, 또 지하도 벽면과 여러 건축물에서 아빠를 만나고 느끼지요. 이들의 유대와 사랑은 아이의 책가방, 아이들의 담요, 가족의 식탁이 모두 푸른 타일을 닮은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에 힘입은 것일까요? 자칫 외롭고 고된 일일 수 있는 미장일을 아빠는 예술혼을 담아 행복하게 작업하는 듯하지요. 타일을 마주 잡은 두 손에는 정성이 그득하고 타일들은 꿈꾸듯 유영합니다. 그런 아빠를 응원이라도 하는 듯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노란 햇살이 작업장을 환하게 비추지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날, 저 멀리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엄마와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나가고 새들도 높이 날아오릅니다.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은 밥상 위에는 귀한 조기가 세 마리나 올라가 있고, 방 안은 눈이 부실 만큼 환히 빛납니다.
푸른 타일을 붙여 만든 책 표지의 제목부터 범상치 않더니, 각 장마다 이어지는 타일의 다양한 변주가 몬드리안의 추상화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또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과 공간에는 생동하는 에너지가 가득하고, 빛의 마술사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을 보고 있는 듯 신비롭지요.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음에도 사랑의 힘과 신비가 느껴집니다.
아빠의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그런 아빠에 대한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빛으로 가득 찬 그림들과 함께 보여주는 이 책을 많은 이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되레 통한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받고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생을 갈구하며 찾아 헤매는 파랑새, 그것은 사랑, 어수룩하지만 절대적인 가족 간의 그런 사랑 안에 있지 않을는지요.
함께 읽어요
이명환의 ‘가족’ 연작 모아 읽기
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러 책을 훑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 읽기도 하고,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정독하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땐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함께 엮어 읽기도 하고, 한 주제나 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 집중적으로 읽기도 하지요.
2019년 그림책 작가로 등단한 이명환은 가족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를 한 번에 다 읽기는 어려울 테니 먼저 『미장이』 못지않게 감동적인 그의 데뷔작 『할아버지와 소나무』를 비롯하여 『경옥』, 『사랑하는 당신』, 『가족』을 모아 읽으며 한 작가와 한 주제를 동시에 깊이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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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소나무』 이명환 글·그림 | 계수나무 | 2019 |
2019년에 선보인 그의 첫 번째 그림책으로, 서먹했던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가 소나무 그림을 매개로 친밀해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넉넉한 여백과 굵직하면서도 다정한 선들, 파랑 원피스를 입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솜이는 호랑이를 닮은 할아버지가 무섭기만 해요. 하지만 같이 놀 사람이 없어 ‘냥이’를 핑계 삼아 할아버지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지요. 그러고는 할아버지에게 소나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흐뭇해하며 구부정하고 골골이 주름진 소나무를 쓱쓱 그려가고, 솜이도 곁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소나무를 쓱싹쓱싹 그리지요. 멋진 소나무가 완성된 순간, 솜이는 할아버지가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라 늠름하고 멋진 소나무를 닮았다는 걸 발견하고는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천진한 솜이로 인해 웃음이 나오는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솜이의 심리를 어두운 베이지색과 하얀색의 크기와 변화를 통해 드러내는 작가의 감각이 그림책의 묘미를 한껏 살려주지요. 이리도 귀여운 손주를 애먹이지 않고 사랑을 전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조부모의 마음을 분주케 할 듯싶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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