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서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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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어머니 역할을 한 적이 있었을까? 애써 나는 그 기억을 지운다.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인 기억은 없다. 나는 연구를 핑계 삼아 늘 바빴고, 같이 유학을 오긴 했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남편 몫이었다. 남편은 다정하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나와 다른 그가 좋았다. 우리는 과 커플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해 함께 유학을 왔다. 결혼하자마자 우리의 서로 다른 면이 내게 성이 차지 않기 시작했다. 문과가 적성에 맞았을 남편에게 과학은 너무 낯선 별이었다. 늘 뭔가 이루려는 목표가 불분명했고, 학위를 따는 일에도 별 뜻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맞지 않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아이가 생긴 걸 알았을 때 나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남편이 눈치를 채고 적극 만류하면서 “아이는 다 내가 키울게.” 했을 때도 한심한 생각만 들었다. 고민하다가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고, 나는 꿈에서도 생각 못한 만삭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가 딸이었으면 했다.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어쩌면 남편 역시 미래의 남편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만삭의 몸으로 학위를 따느라 여념이 없었고, 남편은 휴학계를 내고 가사 일에 전념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육아와 가사를 도맡은 남편은 행복해 보였다. 거꾸로 아이를 낳자마자 나는 출산 우울증이 나날이 심각해졌다. 아이는 너무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와 열흘간 인큐베이터 속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전혀 나지지 않았다. 눈을 뜨니 엄마가 되어 있었고 나는 무서워서 아이를 안을 수조차 없었다.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몸뚱아리가 이제 꼼짝 말라고 협박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갑자기 36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불면의 밤에 컴컴한 아파트 계단 36층을 혼자 내려가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어가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 우리들의 아이를 내가 아닌 남편이 낳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참하게 튼 쭈글쭈글한 배, 그 육체의 흔적을 내 것이 아닌 척 외면하는 연습.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연구에 열중했다.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때 그 시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박사학위를 끝내고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나는 굉장히 좋은 조력자를 만났다. 비한은 일찍이 인도에서 유학을 온 천재라 불리는 과학도였다. 새벽,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 그대로 비한은 늘 새로운 생각을 실현하는 삶의 태도로 빛났다. 언젠가 학술대회 참석 차 인도에 갔을 때 그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께 인사를 시켰다. 델리의 큰 부호 중 하나인 그의 부모님 집은 꿈에서도 본 적 없을 만큼 크고 으리으리하고 멋졌다. 길거리만 나가면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달러를 달라고 들러붙는 생지옥 같던 델리 거리에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면 천국 같은 궁전으로 변했다. 방마다 그림들이 가득했는데, 일급으로 모작한 모나리자 정도밖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항 속의 물고기를 그린 마티스의 원화에 관해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그림 두 점은 지금 우리 집 거실과 서재에 걸려있다.
델리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그의 도움으로 조교수가 되었을 때도, 내가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훌륭한 조력자 비한과 공동연구로 업적을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우리를 부부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비한이 청혼했고 나는 별 고민도 없이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기 이르렀다.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아기 침대 속에서 자던 아이도 갑자기 깨서 함께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한 잔인한 시절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들, 너는 모른다. 너를 버린 뒤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그 집 앞을 서성였는지. 남편은 다시는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그 어떤 소통도 불가능했다. 아는 친척으로부터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게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성애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연구 결과는 늘 성공적이었고 우리 부부는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사회 저명인사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아들이 나중에라도 나를 알아보라고 더 열심히 연구에 매진했는지도 모른다.
첫 결혼 후 남편의 친구들은 남편을 갯츠비라고 불렀다.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갔다. 화려한 배우들과 무대 장치들 외에 내가 그 영화 속에서 무얼 보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왜 ‘위대한 갯츠비’인지도 모르겠고, 갯츠비가 사랑한 여자가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허영기로 가득한 형편없는 여자라는 기억만 남아있다. 생각해 보면 두 번째 남편 비한도 갯츠비였다. 나는 남자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영어가 부족한 내가 연구 논문을 쓸 때도 늘 누군가 다가와 다 써주다시피 했다. 고백하건데 오늘의 나는 낯선 남자들 덕으로 여기까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고백은 일기에서조차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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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한과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세상이 알아주는 것처럼 실력 있는 석학이 아니라는 걸 비한이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들의 공동연구는, 자료를 찾는다든지 내가 그의 연구를 돕는 식으로 변해갔다. 나의 연구란 게 남이 대신 해준 게 대부분이므로. 그때부터 비한은 뭔가 달라졌다. 겉으로는 “당신을 사랑하고 실력 같은 거 없는 당신이 사랑스럽다”고 말했지만, 학술대회 때는 늘 같이 동행하던 그가 혼자 가기 시작했고, 나는 방학 때면 큰집에 홀로 남기 일쑤였다. 연구고 나발이고 나는 다 귀찮아져서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잠이란 게 이상하다. 자면 잘수록 더 잠이 온다. 그러다가 아주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학교가 방학 중이던 어느 8월의 더운 여름날 오후, 나는 잠에 취해 널부러져 있었고, 실제인지 꿈인지 비한과 누군가가 같이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어슴푸레 보였다. 잠에서 깨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딱 붙어버려 떠지지 않았고, 고음의 목소리로 모르는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는 어디선가 들은 듯 낯익었다. 그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오르가슴의 순간에 여자가 지르는 신음소리였다. 나는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그들의 놀이에 말려들었다. 여자와 비한과 나의 몸이 섞여 들었고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날카로운 쾌감을 느꼈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더 재현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내 것이 아닌 듯 흐느적거렸고, 수상한 영혼에 빙의 되어 그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제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 때 떠오른 단 하나의 얼굴이 바로 너, 내 아들의 얼굴이었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영어가 신물이 났고, 남편이 화가 날 때 마다 지껄여대는 인도 말도 지겨워졌고 오직 내 나라 말이 그리워졌다. 석학이고 나발이고 나는 따뜻했던 전 남편의 품 안이 그리웠다. 나와 비한의 옆에 있던 여자는 중국인 도우미였다.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상주하며 밥을 차려주고 청소를 하며 우리 부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녀를 내보내라 하니까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아주 심한 우울증에 걸려있어. 우울증이 심한 정도를 지나쳐서 선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없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보지도 않은 걸 보았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래.” 나는 그들과 함께 한집에서 사는 일이 끔찍해졌다. 남편이 무언가 수상한 약을 먹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집에서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남편이 주는 약을 먹지 않고 변기에 흘려보냈다.
어느 날 그 집에서 나와 나는 공항으로 가서 아무 곳이나 빨리 갈 수 있는 비행기를 탔다. 거기가 어디라도 좋았다. 그리고 꿈처럼 내 아들이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생겼을 사람을 얼핏 보았다. 갑자기 발작을 해서 의사가 필요하다는 방송이 들렸고 나는 화장실에 가는 길에 얼핏 그의 얼굴을 훔쳐본 듯도 하다. 내 아들이라 상상되는 그리운 얼굴은 숨도 못 쉬는 채 누워있었다. 나는 또 모르는 체 자리로 돌아와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딱 어른이 된 아들을 상상하게 했다.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아이와 헤어졌으니 이 모든 건 상상에 불과했다. 설사 그게 현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내가 네 엄마란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냥 모르는 체 하며 한 생을 지내는 거다.
나는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일급 가짜 그림 모나리자와 어항 속의 물고기가 있는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있는 나의 집은 이미 나의 집이 아니었으며 나는 더 이 상 갈 갈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 눈앞에 떠오르는 얼굴은 나의 갯츠비, 내 아들의 아버지 당신이었다. 당신은 잘 있을까? 우리 아들을 키워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행기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내 눈앞에서 어른이 된 아들의 모습을 한 남자가 사라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어머니다. 한 때 나는 어머니였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한 어머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