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기대어 사는 삶, 책으로 연결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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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라는 정체성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묵직하게 나를 눌렀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중 마주한 ‘성장’이란 단어는 나를 잔뜩 움츠러들게 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만으로도 벅찼던 나에겐,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위해서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엄마의 성장’은 가혹한 채찍질처럼 느껴졌다. 살뜰하게 아이를 살피며, 알뜰하게 살림도 하고, 완벽하게 자기 관리까지 해내는 엄마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에 괜히 등을 돌렸다. 자꾸 작아지는 나를 내려다보며 살아가는 동안 더 이상의 꿈은 꾸지 말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엄마가 그렇듯 아이만이 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내 시선은 온종일 아이를 따라 움직였고, 내 손은 늘 아이를 향해 뻗어 있었다. 다행히 자연스레 아이 위주의 관계들이 형성되었고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함께 아이를 키운 육아 동지들도 여럿 생겼다. 그 시절 나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공허함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첫 아이 4살 즈음, 파트 타임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둘째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입덧과 함께 첫째 아이를 돌보고 일까지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출산하고 정신없이 두 아이만 바라보며 산 세월이 어느덧 7년을 채웠다. 엄마의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둘째의 어린이집 적응까지 끝난 후, 그제야 나조차도 돌본 적 없던 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라는 사람이 희미해진 줄도 모르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기대어 일상을 꾸리던 나를 다시 나로 살게 해준 건 책과 글이었다. 성인이 된 후 제대로 책을 읽은 기억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꽤 책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유년기의 기억이 나를 다시 책 앞으로 불렀다. 독서 모임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내가 한참을 망설이다 덜컥 독서동아리 운영을 위한 강의를 신청했다. 강의 후 단기 독서동아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의 첫 책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꾸려 온 책 모임 ‘선향’의 동아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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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모임을 가기 시작했을 땐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했다. 전업주부에게 오롯이 맡겨진 돌봄 노동은 책에 집중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낮에 책을 읽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고 밤이면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이 들곤 했다. 모임 날짜에 맞춰 책을 읽어내고, 모임을 준비하는 일이 큰 미션처럼 느껴졌다. 모임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서면 한겨울에도 땀이 흘렀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재촉한 날엔 미안한 마음에 모임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간절했다. 전업주부라는 정체성에 부여된 임무를 더 잘해내기 위해서는 내 이름을 찾을 곳이 꼭 필요했다. 나에겐 독서 모임이 그런 자리였다. 느린 속도였지만 책을 읽었고 어설픈 글이라도 조금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더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서서히 달라졌다. ‘성장’이란 단어 앞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천천히 책 속에서 나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더 잘 살아가고 싶은 나를 꿈꾸게 되었다.
읽는 사람이 되자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욕구도 생겼다. 나만의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잊고 싶지 않은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를 기록하고, 읽었던 책 중 좋았던 구절과단상을 남겼다. 매 모임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내가 즐겨하던 쓰기의 시작이었다. SNS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는 일상의 기록이나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면, 글쓰기는 내 삶의 비하인드를 기록하는 행위였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다독일 때 가장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읽고 쓰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잘살고 있다고.
나의 글로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글로 인해 내 삶이 1mm라도 서서히 바뀐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독서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책을 접하고 있지만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는 이야기는 쓰는 사람들이 쓰는 글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통해 나의 언어를 찾고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기대어 일상을 채우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혼자 읽고, 혼자 쓰는 사람이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위로와 지지를 독서동아리를 통해 만났다. 조건 없는 환대로 시작하는 안전한 마음의 울타리가 나에겐 책과 글로 만난 인연들이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눈빛과 귀 기울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마음이 충만해진다. 아직은 모임을 통해 내가 내어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다.
적당한 시간과 일정 금액을 투자하여 얻는 자격증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정체성에 스스로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언젠가는 읽지 않던 사람에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된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날도 오지 않을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책이 필요한 누군가와 책과 글로 소통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삶, 인생 곳곳에 놓일 책들을 기대하며 사는 삶을 꿈꾼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일까지 그만둔 나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가 생길 때면 곤란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나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독서동아리는 나에게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