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8

‘동네 친구’와 함께 한 나의 이야기

저자소개

안기용
독서동아리 ‘동네 친구’ 회원


‘동네 친구’는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순서대로 나누고, 리더가 만든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답하는 독서동아리이다. 매시간 새로운 참여자가 있을 수 있어 처음에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독서 모임에 참여한 이유를 말하며 시작하는데, 난 항상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책을 좋아하거나 평소에 읽는 건 아니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난 책 읽기를 정말 싫어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한다기보다 주위에 더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독서는 항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 술 마시기, 그림 그리기, 영화 감상 등 재미있는 것은 정말 많다. 이 말은 내가 방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면 그만큼 할 게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독서동아리에 가입해서 이제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려놓고 책을 먼저 읽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솔직히 처음 ‘동네 친구’에 들어온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과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 책을 읽어야겠다고 느껴서였다. 책을 안 읽다 보니 면접을 볼 때 쓰는 어휘나 대화 소재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강제적으로라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혼자서 책만 사면 바로 책장에 꽂아두고 놀러 나갈  걸 알기에 SNS와 인터넷을 통해 부천에 있는 독서동아리들을 찾았다. 평소 도전을 어려워하고 낯을 많이 가렸던 내가 ‘동네 친구’를 발견하고 가입 후 바로 나갔던 것이다. 

그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보통 친구를 통해서나 지인 추천을 받아서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가 강해서였는지 다짜고짜 혼자 나갔다.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나는 책을 읽어야 해서 인터넷으로 찾아서 왔다고 했다. 다들 나를 신기해했는데, 난 독서동아리를 하는 그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어떻게 책을 읽고 그걸로 동아리를 만들지? 그렇게 시작한 인연이 벌써 5년도 넘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중간에 안 나갔던 기간을 포함하면 더 긴 시간인데, 그때 안 나간 이유는 내가 진짜 취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난 면접에서 독서동아리 나간 경험을 얘기했고, 덕분에 취업도 했다. 모든 자소서에 ‘동네 친구’ 참여 얘기는 꼭 적었던 것 같다. 협업이나 교류가 주제일 때는 동아리 사람들 얘기를 하고, 좌우명이나 인상 깊었던 일을 얘기할 때는 저번 달 독서동아리에서 선정되어 읽은 책 얘기를 했다. 본의 아니게 취업하고 안 나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정말 그렇게 보일까봐 책을 열심히 읽었다. 카페는 계속 가입되어 있어서 선정 도서가 나오면 먼 지방에서 혼자라도 꼭 읽었다.

취업 후 다른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동네 친구’와는 3년 정도 이별을 했다. 물론 주말에 모임을 갖기 때문에 본가에 와서 참여할 수 있었지만, 당시는 못 올라오는 경우도 많았고 일에 치이고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시간이 흐른 뒤 재작년 다시 이 근처로 발령받아 왔을 때 ‘동네 친구’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생각하며 지난 추억을 살려 찾아 나갔다. 참여하는 사람이나 운영진도 소수만 빼고 전부 바뀌었지만, ‘동네 친구’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에 다시 가입했다는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주었고,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주었고, 그때의 사람들에게 받은 것들이 많아서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기대감으로 나간다. 나와 같이 책을 어떻게든 읽으러 왔다가 책이 주는 것을 잔뜩 얻어가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독서동아리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이자 큰 장점은 바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책 한 권에 내 생각 하나만 나올 수는 없기에 책을 읽고 독서동아리에 가면 다른 방면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환경과 직업,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내가 제일 나쁘다고 생각한 소설 속 인물이 누군가에겐 가장 좋은 인물이었고, 누군가에겐 가장 알 수 없는 인물이라니 정말 신기하다. 공과대학을 나온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문과 계열 일을 하는 분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나이 많은 어른과 요즘 세대들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기혼자와 미혼자의 관점 차이. 정말 제각각 관점이 다르다. 많은 분들의 책 읽은 소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싶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느낌을 가장 크게 받았던 책은 작년 11월에 읽었던 『오만과 편견』이다. 등장인물인 베넷 가의 딸들이 각자 결혼을 하는데 베스트best와 워스트worst 커플을 뽑고 이유를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정말 독서동아리가 맞는지, 토론동아리가 아닌지 베스트와 워스트 커플 이유를 실컷 얘기했다. 그해 동아리 활동 시간 중 가장 길었을 것이다. 이때 참여 인원의 생각이 모두 달라서 ‘책 하나에 이렇게 많이 느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올해 내가 정한 목표는 독서 모임 1년 12번 전부 출석하는 것과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는 것이다. 내가 추천하는 책이 선정되면, 책을 겨우 읽었던 내가 책에 대한 지식이 회원들과 비슷해졌다는 기분이 들면서 뿌듯할 것 같다.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작가와 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공감을 받았다는 것이자, ‘나도 책 좀 읽었어’하는 약간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종종 농담 삼아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는 순간 나는 더 배울 게 없어서 나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더더욱 열심히 다닐 것 같다. 

여기까지가 매일 만화책을 읽던 아이가,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는 학생이 되고, 이번 달만 책을 두 권째 읽기 시작한 직장인이 된 나의 독서동아리 참여 스토리이다. 다음 모임에서는 독서동아리에 나온 이유를 ‘책 읽는 게 좋아서 나왔습니다’라고 해봐야겠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