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6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저자소개

저자 · 스즈키 유이
2001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현재 세이난가쿠인대학(西南学院大学) 외국어학연구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고전문학을 폭넓게 탐독해 왔다. 어린 시절 후쿠시마로 이주한 후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며 언어와 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품게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2024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로 제10회 하야시 후미코 문학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소설로, 실제로 저자의 부모님 결혼기념일 식사 중 홍차 티백에 적힌 명언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 이 작품으로 제17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자 · 이지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키키 키린의 말』,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아무튼, 하루키』 『우리는 올록볼록해』 『사랑하는 장면이 내게로 왔다』(공저) 등을 썼다.

프롤로그


얼마 전 나는 장인 히로바 도이치를 따라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아머가우 마을에서 수난극을 보고 왔다. 도이치가 오랜 세월 요직을 맡아온 일본독일문학회 의뢰로 떠난 취재 여행이었다. 곧 정년을 맞이하는 공로자에게 주는 작은 작별 선물이라는 의미도 적잖이 담겨 있는 그 일의 내용은, 학회 홍보지 《독언獨言》에 몇 쪽이라도 좋으니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도이치 본인은 매우 진지하게 그 일에 임했지만 그래도 역시 오랜만에 방문하는 독일이었다. 약 2주 간의 체류 기간 틈틈이 자잘한 일정을 끼워 넣고 딸에게 여행안내 책자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확연히 들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취재 여행의 동행으로 도이치가 아내도 딸도 아니고 사위인 나를 고른 이유는 내가 전부터 유럽 종교극에 유별난 관심을 품고 있어서 잊을 만하면 그에 관한 화제를 꺼내는 데다가 여러 지면에 글을 쓴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단순히 말동무로 딱 알맞은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나리타공항에서 헬싱키를 경유해 10시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다음 날 오후에는 곧장 마을로 나가 연극 연습을 견학할 예정이어서 그날은 잠깐 시내를 둘러보기만 하고 이른 오후부터 각자의 호텔 방에서 쉬기로 했는데, 밤이 되자 결국 도이치가 “내 방에 와서 한잔하자고” 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와인파인 도이치는 내가 호텔 근처에서 급하게 구해온 맥주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사과주만 홀짝였지만 같이 사온 치즈와 소시지 쪽으로는 손을 뻗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될 일정 확인, 일본에 있는 가족과의 연락, 나의 최근 일에 관한 잡담 등을 한바탕 마친 후 “그러고 보니 6년 전에도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왔었죠” 하고 내가 말했다. 왜 이제껏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서로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쓸데없는 배려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말을 꺼내면 추억담에 절로 꽃이 핀다. 가지와 잎이 자라고 새로운 씨앗도 움튼다. 


평소 과묵한 그로서는 드물게—사과주도 분명 맛있었을 것이다—순식간에 얼굴이 불그레해지더니, 독일 여행 추억담은 마침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문장에 이르렀다. 도이치는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 문장이 내 인생의 시도 동기Leitmotiv였네. 난 툭하면 그 농담을 떠올리면서 남들을, 세상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거든. 하지만 이제야 확신이 들어. 그건 역시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일종의 계시였던 게야.”


그런 다음 그가 시작한 것은 나도그리고 아마 아내도 제대로는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지난번 독일 여행의 발단이 된 일련의 소통에 관해 내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글로 써라’라는 지령일까? 아니면 ‘써도 된다’라는 허락일까? 놀라는 와중에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직업적 직감이 들었다.


“장인어른, 모처럼 말씀해 주시는 것이니 녹음해도 될까요?” 하고 묻자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부터 나는 여행 내내 틈만 나면 6년 전 그 일에 관한 도이치의 증언을 손전화기로 녹음했다. 타고난 수다쟁이인 나는 이때만큼은 듣는 입장을 철저히 고수했고, 오랫동안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도이치는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는 전문가였기에 자료는 착착 쌓여갔다. 마을에 가서도 도이치가 수난극의 역사나 연출에 대해 메모할 때 나는 옆에서 오로지 녹취록을 만드는 데 열중했고, 모처럼 수난극 공연을 볼 때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장인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녹취록 작업은 독일에 있을 때 대강 끝내두고, 귀국한 뒤로는 차츰 소설의 형태로—안타깝게도 나는 이렇게밖에 쓸 줄 모른다—다듬어 나갔다. 다시 말해 도이치가 ‘나’라고 말한 부분은 전부 ‘도이치’ 또는 ‘그’로 고쳤고, 가족을 제외하고 살아있는 관계자의 이름이 나오는 경우 알파벳으로 표기하거나 가명으로 바꾸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는 설명을 적당히 넣었으며 에피소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를 정렬했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하고 도이치 이외의 등장인물주로 그의 아내와 딸, 때로는 나 쪽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도이치가 한 말 그대로 문장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지만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해 내 멋대로 지어낸 부분도 적지 않았는데, 실제로 다 쓴 작품을 센다이의 자택으로 보냈더니 도이치는 답신에 “재미있게 읽었다”라며 호의적이고도 자세한 감상을 적은 뒤 “내가 내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전부 실화였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것을 이 작품에 대한 가장 큰 보증으로 여겨 이렇게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이 책을 집어 든 분 가운데는 당연히 히로바 도이치의 저작을 좋아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분은 도이치 본인이 이미 발표한 「괴테의 미발표 편지에 대하여」http://www.hakugei.site/backnumber/123도 함께 읽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드린다. 이 작품의 학술적 기술에 오류가 있다면 모두 저자의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뭐든지 싫증을 잘 내고 쉽게 잊어버리는 저자가, 이 작품을 집필할 때 이야기의 주제와 구조를 한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트북의 항상 보이는 위치에 붙여둔 괴테의 두 문장을 여기에 옮겨 적어두고자 한다(전자는 토마스 만의 강연에서 재인용한 것이지만, 만이 이를 괴테의 말이 지닌 명언적 성질과 연관 지은 점까지 포함해 이 구절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느낀 것, 관찰한 것, 생각한 것, 경험한 것, 공상한 것, 이성적인 것과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말을 찾아내려는, 피할 수 없고도 날마다 새롭게 반복되는 근본적인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잠언과 성찰》 388항



자연계에서는 색채의 전체성을 구현하는 보편적 현상을 결코 볼 수 없다.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 현상을 보여주는 것은 실험이다. 그러나 그 완전한 색채 현상이 둥근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음을 이해하려면 직접 종이에 안료를 칠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색채론》 교시편 815항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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