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4

뜻밖의 여행, 뜻밖의 선물

저자소개

신현주
독서 동아리 ‘오후 네 시’ 회원


글  신현주

소속 동아리  오후 네 시

여행 지역  인천 강화군 양도면

여행지 한 줄 추천  김중미 작가, 김금숙 작가, 함민복 시인 등 문인들이 많이 계시는 강화도에는 호젓한 시골 책방 ‘국자와 주걱’이 있음.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작가와의 북 토크가 열리기에 책방에서 더욱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


친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6월에 강화도에서 김중미 작가님 북 토크 열린대. 너 생각나서 보낸다. 시간 되면 가봐~”


소설 『느티나무 수호대』를 선물했던 친구였다. 날짜는 6월 21일 오후 7시, 장소는 강화도의 시골 책방 ‘국자와 주걱’이었다. 주말이라면 두말없이 간다고 신청했을 텐데 하필 날짜가 평일인 수요일이었다. 직장이 끝나고 가면 도저히 시작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호젓한 시골 책방이라니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오후 네 시’ 독서동아리 모임 방에 먼저 말을 건넸다.


“혹시 6월 21일 수요일 오후 시간 되는 분 있으신가요? 이번에는 강화도 책방에서 북 토크도 참여하고, 독서 모임도 같이 하면 어때요?” 

“와! 좋아요. 그런데 7시까지 도착할 수 있겠어요?” 

“저 정말 가고 싶어서 그날 반차 휴가 쓰고 가려구요.”


그렇게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책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으나 한 가지가 남았다. 바로 아이들 어린이집 하원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독서동아리 ‘오후 네 시’는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만난 엄마들과 함께 만든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함께 읽을 책을 정해, 한 편의 에세이를 써서 나눈다. 책과 사람이 좋아 모인 우리들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4시가 되면 모임을 끝내야 해서 동아리 이름은 ‘오후 네 시’가 되었다. 북 토크가 열리는 날도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누군가 돌봐줘야 했다. 고민 끝에 서점에 연락해서 혹시 아이들이 같이 참여해도 되는지 여쭤봤고, 기쁘게 초대해 주셨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도착한 강화도 양도면의 시골 책방 ‘국자와 주걱’. 이름이 독특해서 여쭤보니 책방에 자주 오시는 함민복 시인이 지어주셨단다. 김중미 작가도 강화도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시고, 그래픽 노블로 유명한 김금숙 작가도 책방 근처에 머무르신다고 알려주셨다. 이곳을 좋아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싶어 더욱 친근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방에 도착해 주인분이 알려주신 읍내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만두 라면을 맛있게 먹고, 책방 뒤편으로 해바라기와 접시꽃들이 나란히 반기는 골목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캠프힐 까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셨다. 그곳은 자립한 발달장애인들이 양봉을 하고, 빵을 굽고, 닭을 키우며 운영하는 곳이었다. 닭이 갓 낳은 달걀을 아이들 아침 반찬 해줄 겸 한 판 사고, 꿀도 한 병 사서 두 손 가득 들고 책방으로 돌아왔다. 북 토크가 시작되기 전에 김금숙 작가의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에 나오는 산책길을 걷고 싶어서 강화의 노을 아래 시골길을 걷고 돌아왔다.


7시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고, 작가님도 도착해서 북 토크가 시작되었다. 5살 아이부터 60대까지, 작은 책방이 북적거렸다. 평소 작가와의 만남에 가서 보는 PPT나 화려한 사회 없이 모두가 책방의 서가에 편안히 기대앉아 “안녕하세요”라고 소박한 인사를 나누며 시작했다. 시골 책방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작가님은 우리에게 궁금한 것을 편하게 물어보라고 하셨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김중미 작가가 글을 쓰게 된 계기, 방송에 나왔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관한 에피소드, 인천에서 운영하시는 공부방과 공동체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의 책과 삶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작가님께 『모두 깜언』, 『곁에 있다는 것』, 『꽃섬 고양이』 등 끊임없이 글을 쓰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언제 글을 쓰시는지 물었다.


“글 쓰는 시간이 따로 있지 않아요. 특히 농사를 지으니까 농번기나 포도를 수확할 때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그냥 시간이 날 때마다 써요.”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고 독서동아리에서 한 페이지 글 쓰는 것도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함에 속상해하기보다 할 수 있는 틈틈이 읽고 쓰려 애쓰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북 토크 내내 아이들이 사탕을 먹고 싶다고 하고, 작가님 앞으로 불쑥 나가 죄송했는데 “괜찮아요. 아이들인데요. 저도 아이들 어렸을 때 봐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데리고 다녔어요.” 하시며 오히려 아이들을 챙겨주셨다. 북 토크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질문의 시간이 다가왔다.


“저희가 독서동아리를 함께 하고 있는데, 작가님의 여러 작품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책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너를 위한 증언』이 많이 읽히면 좋겠어요.”


『너를 위한 증언』은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에게 새겨진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지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오늘 북 토크에 참여하기 위해 독서동아리 모임에서 읽었는데, 고통과 싸우면서도 딸들과 동생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증언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중학생인 조카와 북 토크를 소개해 준 친구가 떠올라 두 권을 더 샀다.



북 토크가 끝나고 김중미 작가님이 어린이를 위해 쓰신 책 『종이밥』, 『내 동생 아영이』, 『도깨비가 등장하는 6번 길을 지켜라 뚝딱』에도 사인을 받았다. 다음 달 독서동아리 책도 책방에서 고르려고 둘러보는데 김금숙 작가님의 신간을 발견했다. 작년 독서동아리에서 일본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풀』을 같이 읽고 토론했었다. 나도 모르게 독서동아리에서 김금숙 작가님을 좋아하는 분이 생각나 사인을 받아 선물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염치불구하고 혹시 잠깐 뵐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걸어가면 5분인데. 잠깐만요. 시간 되시는지 전화해볼게요.” 시간은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김금숙 작가님이 지금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큰나무 카페 마당 벤치에서 잠깐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이게 웬일인가? 떨리는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작가님의 책을 두 손으로 품고 기다리는데 저 멀리 작가님이 뛰어오셨다. 노란 등불 아래 책장을 펼친 채, 정성스러운 그림 사인을 해 주셨다.


이번 책 여행은 모든 것들이 뜻밖이었다. 평일에 반차를 쓰고 여행을 떠난 것도, 시간이 맞아 독서동아리와 같이 떠날 수 있게 된 것도, 시골 책방에서 김중미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벤치에서 우연히 김금숙 작가님을 뵙고 사인을 받은 것도 뜻밖의 여행에서 받은 뜻밖의 선물들이었다.


인생은 수많은 우연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 싶어 웃음이 난다. 반차를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떠난 스스로가 뿌듯했고, 흔쾌히 같이 손잡고 달려와 준 독서동아리 언니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책이 있어 좋았고, 함께 읽는 이가 있어 더 좋았던, 책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는 여행이었다.


책방을 나와 돌아가는 길, 창밖에 깜깜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위해 밤하늘이 배웅해 주는 듯하다. 내일부터 바쁜 날들이 이어지겠지만 책 여행에서 보낸 시간과 풍경, 향기들이 분명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책으로 만날 또 다른 뜻밖의 여행과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