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원스와 함께 떠난 책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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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옥
소속 동아리 북원스
여행 지역 전남 구례군, 광양군
여행지 한 줄 추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음
‘북원스’는 2014년 10월 말, 2박 3일 일본 키조 그림책 마을을 다녀온 후 결성된 모임이다. 매월 1회의 책 모임 외에도 책방, 도서관, 문학관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책방, 도서관 기행교토, 오사카, 윤동주 기행교토, 후쿠오카, 부산보수동 책방거리, 김성종추리문학관, 맨발동무도서관 등, 순천그림책도서관, 김승옥문학관, 전주독서대전, 삼례책마을, 대만국가도서관, 베이터우도서관, 대만대 앞 서점 골목 등 여행을 통해 책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켰다. 북원스는 책, 여행, 사람을 챙기며 1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기 전인 지난해 10월 말경, 젊은 시절의 꿈이었던 섬진강 따라 걷기를 했다. 구례에서 섬진강 오른쪽으로 내려 걷다가 하동에서 섬진교를 건너 광양 정병욱 가옥까지 걷는 코스다. 섬진강 걷기 일정을 짜면서 구례 지역을 샅샅이 살폈다. 문척면, 월평교, 간문교, 외곡삼거리, 화개, 평사리, 하동, 정병욱 가옥까지 거리, 숙소, 식당을 찾아 며칠을 지도 검색에 매달렸다. 2박 3일 동안 아침 일찍부터 두 발로 걸어 다녀온 여정이 뿌듯했다.
그리고 북원스에서 올해 1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섬진강, 구례 중앙초등학교, 오거리, 문척면 등의 지명이 나오는 순간 나의 두 다리는 다시 구례로 가야겠다고 보챘다. 반내골을 꼭 가봐야겠다. 그리고 정지아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 2009년 「봄날 오후, 과부 셋」이, 2011년 「목욕가는 날」이 실려있었다. 그리고 『빨치산의 딸 1, 2』, 『자본주의의 적』을 읽었다. 발로 걸으며 바라본 구례, 지리산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친근한 장소로 다가왔다. 다시 한 번 떠났다. 올해 3월 초, 4박 5일, 이번에도 두 발로 걸어서다. 그리고 ‘북원스’ 멤버들과 같이 하고 싶은 생각에 꼼꼼하게 동선을 체크했다.
벚꽃이 꽃잎을 막 흩뿌리기 시작한 4월 첫날, 우리는 승용차 2대로 이른 새벽 출발했다. 만나는 장소는 아리의 아버지 고상욱 씨가 나온 중앙초등학교 앞이다. 고상욱은 중앙초 35회 졸업생이다. 중앙초에서 오거리가 가깝다. 오거리 실비집은 아버지가 하동댁 궁둥이를 토닥토닥 두들기자 다섯 살 배기 아리가 세모눈으로 하동댁을 째려보며, 아버지를 끌어낸 곳이다. 실비집은 어디쯤이었을까? 실비집 대신 세모눈을 뜬 다섯 살배기 아리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중앙초등학교를 지나 ‘봉서리책방’과 ‘섬진강책사랑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책쟁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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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척면 반내골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문척교를 지나 이 소설의 주 무대인 문척면으로 향한다. 먼저 도착한 곳은 1972년 문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섬진강 문척 나루터 자리를 확인시키는 ‘문진정’이다. 당시 나루터는 주막, 뱃사공들과 구례 읍내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단다. ‘문진정’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리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이곳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아버지를 따라 읍내 나들이를 했다. 하동댁 궁둥이를 두드린 날도 입이 댓발이나 나온 채 이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지와 담배 친구인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17살 소녀에게로 옮아간다. 아버지는 어떻게 불량소녀와 친구가 됐을까? 아버지의 열린 세계관과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가능하게 한 것 아닐까. 이곳이 소설의 배경지였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저 오거리라는 지역에 감정이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거리는 소설 속 오거리로, 아리와 아버지가 걸었을 곳으로, 우리의 여정 속에 들어왔다.
지금의 ‘수달생태로’는 아리가 고3 때 연좌제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공부를 작파하고 서울로 떠나려고 집을 나서 면소재지를 지나 전천저수지를 지날 때 작은아버지가 자전거로 데리러 온 길이다. 아리는 작은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앉아 등에 밴 쉰내에서 혈육을 느낀다. 걸어서 2시간 남짓 걸리는 이 길에서 작은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탄 아리를 상상해 본다.
문진정에서 반내골에 가려면 수달생태로를 따라 문척면 소재지를 지나 월평교 못 미쳐 오른편에 중산천을 안고 있는 월평마을회관 앞으로 가면 된다. 아리의 집이 있는 반내골, 어머니가 아리가 좋아하는 곶감을 만들려고 허리 통증을 견디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곶감을 뒤집던 곳, 방물장수를 재워줬더니 코티분과 벼룩을 남기고, 마늘 반 접을 가져간 곳. 문자에 대한 확신으로 ‘공산당 선언’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된 아버지가 ‘새농민’에 의지한 문자 농사로 늘 망쳤던 밭이 있던 곳이다.
반내골에서 남쪽으로 아버지의 활동 지역인 ‘백운산’을 네이버앱에서 찾았다. 아버지는 젊음이 매료된 굳은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 산속을 나르듯 다녔을 것이다. 동쪽으로 섬진강을 지나면 어머니가 구빨치로 활동한 지리산이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아들을 잃었고, 매서운 겨울을 짚신 한 켤레로 버텼다. 어머니에게 지리산의 겨울은 혹독했다. 그래서 ‘지켜낸 것은 무엇이었을까?’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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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의 옛집을 찾다
정지아 작가의 집은 아주 우연히 찾게 됐다. 사전 답사에서 중산마을 유래 표지석을 보고 1600년경 영일 정씨가 중기마을에 거주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중기마을에 정지아 작가의 집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주민에게 물었다. 다행히 한 분이 잘 알고 계셨고, 친절하게 집의 위치를 알려 주셨다. 정지아 작가의 집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 줬다. 낮은 언덕 아래 자리 잡은 집은 문풍지는 뚫리고, 동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마루에는 철조망을 쳐놓아 허름해 보였으나 궁색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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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가옥―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보존 장소
반내골을 나와 정병욱 가옥을 가기 위해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망덕포구에 정병욱 가옥이 있다. 한 줌의 바람에도 벚꽃잎이 흩날린다. 와~ 하는 탄성으로 막힌 길을 뚫는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 후배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켜낸 사람이다. 정병욱은 일제 강점기 때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가면서 어머니께 윤동주의 시집을 꼭 지켜 달라고 당부한다. 어머니는 마룻장을 뜯고, 항아리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명주천으로 싼 시집을 보관했다. 정병욱의 꿋꿋함과 어머니의 지혜가 윤동주의 시집을 지켜냈다. 정병욱 가옥이 있는 망덕포구 인근은 윤동주 관련 장소로 바뀌었다.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윤동주 시비 공원, 윤동주 쉼터, 윤동주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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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송림 앞 모래사장 ‘동학농민군 돌아가신 곳’ 팻말
광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이제 섬진강 오른쪽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이 길은 남파랑길 47코스 일부여서 경치가 아름답다. 신월습지, 하동대나무숲길을 지나 하동송림공원에 도착했다. 휴식을 위해 멈춘 곳이었는데 의외의 장소를 알리는 작고 조악한 팻말을 만났다. ‘동학농민군 돌아가신 곳’―하동송림공원의 백사장은 비극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팻말은 또다시 과제를 준다. 동학과 관련된 책은 오래전 문순태의 『동학 기행』을 읽었을 뿐인데, ‘책을 읽고 떠나는 여행’에서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의신마을과 지리산역사관
화개에서 화엄사 쪽으로 들어서 15km 정도 가면 의신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빨치산의 딸 2』에 나오는 ‘피의 전적, 원한의 대성골’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그리고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빗점골이 5km 남짓이다. 왕성초등학교 의신분교 터에 마련된 ‘지리산역사관’에는 빨치산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의신마을은 깊은 숲속에서 만나는 선물 같은 장소였다. 그리고 역사관에서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차일혁의 아들 차길진이 쓴 『또 하나의 전쟁』을 구입했다.
이번 책 읽고 떠나는 기행은 사전 답사에서 알게 된 의신마을과 하동송림공원 모래사장에 있던 ‘동학농민군 돌아가신 곳’이라는 팻말에서 또 다른 책 읽기 과제를 얻었다. 이러면서 눈 밝은 독자가 되어 사고의 폭을 넓혀 갈 것이다. 오는 가을에는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의 문학이 꽃피운 장흥으로의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