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4

인문마실 문학 로드, 광주 가는 길

저자소개

이지혜
독서 동아리 ‘인문마실’ 회원


  이지혜

소속 동아리  인문마실

여행 지역  광주광역시

여행지 한 줄 추천  소설과 장소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경험


김해 ‘인문마실’ 독서동아리의 역사는 깊다. ‘인문마실’은 2012년, ‘인문 독서아카데미’에서 만난 회원들이 뜻을 모아 만든 모임이다. 인문학을 마실 가듯 산책하듯,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천천히 오래 공부하자는 취지로 인문과 마실을 합쳐서 동아리 이름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서상동 ‘소리작은도서관’에 터를 잡고 독서 모임을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 7년은 멘토를 둔 독서 모임이었고 지금은 멘토 없이 회원 주도적인 독서 모임을 유지 중이다. 몇 번의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글을 쓴다.


2017년 2월의 기억을 소환하고자 한다. 모임 5년 차에 동아리를 열심히 운영하던 시기였다. 평소에는 사회 현실과 연결하여 사회철학서 위주로 책을 공부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8주 과정의 문학 특강을 가졌다. 문학 멘토인 교수님이 오셔서 동시대 작가의 소설을 소개하면 우리는 매주 한 편씩 작품을 읽으면서 소감을 나눴다. 매년 특강의 주제가 달랐는데, 2017년 겨울 특강의 주제는 ‘기억 투쟁-역사적 트라우마를 넘는 공통의 힘’이었다.



광주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을 소설을 통해 알아보고, 그 트라우마를 넘어서려면 어떤 공통의 힘이 필요한지 고민해 보고자 기획된 수업이었다. 특강 때는 알음알음으로 다른 독서동아리 회원과 예비 대학생들도 참여했는데, 도서관 한쪽의 작은 강의실은 스무 명이 넘는 회원들로 꽉 찼고 열정적인 멘토 교수님과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수업 분위기는 뜨거웠다.


8주 동안 함께 읽은 작품은 윤정환의 희곡 『짬뽕』,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임철우의 단편 「봄날」이었고 영화 「꽃잎」, 「화려한 휴가」, 「박하사탕」, 「26년」도 연결해서 함께 보았다. 다양한 작품 속 광주는 한 가지 얼굴이 아니었다.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제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수업 도중 누군가가 책에 등장하는 분수대와 도청, 시계탑, 묘지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가 말 나온 김에 광주를 직접 가보자고 했다. 대다수가 격렬하게 좋다고 반응하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았던 문학 여행이 갑작스레 추진되었다.


‘인문마실 문학 로드, 광주 가는 길’의 하루 코스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25인승 버스를 대절하고 간식을 준비했고 멘토 교수님은 여행 길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2월, 여행 당일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14명의 인원을 태운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려 우리를 광주 5.18 민주 광장에 내려주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광장은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했고 도청 건물 안은 재정비 공사 중이라 진입 금지였다. 분수대, 도청, 상무관, 시계탑, 금남로 거리를 직접 눈으로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한강 작가는 이곳을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각자 상상하면서 천천히 광장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분수대에 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라는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몇몇 회원이 시계탑 앞에서, 도청 앞에서 소설 속 구절을 낭독했고 나머지는 그들의 낭독을 조용히 들으며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 식사 후, 이동한 곳은 5.18 민주묘지신묘역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넓은 묘역에 높이 솟아있는 위령탑이 보였다. 뭔가 인공적인 느낌이었지만 장소가 주는 위압감과 비장함이 느껴졌다. 회원들과 함께 합동 참배 의식을 치르고 묘를 하나씩 둘러보며 희생자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맑았던 하늘이 서서히 흐려지면서 잿빛으로 변하더니 조금씩 눈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5.18 추모관에 들어가 영상과 해설을 듣고 나오니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짧은 찰나에 눈이 펑펑 쏟아졌고 넓은 묘역이 순식간에 흰 눈으로 뒤덮였다.



눈을 보기 힘든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는 하얗게 쌓인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며 조용히 눈밭을 거닐었다. 발자국으로 길을 내면서 공원을 한 바퀴 걸었고 서로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탐방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입구를 나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고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정말 기묘했다. 


다음 들른 방문지는 망월동 구묘역. 신묘역에 비해 소박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누군가의 무덤들이 일렬로 가득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슬픔의 기운이 장소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소설 속 소년처럼 많은 혼령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는 것 같은 장소였다. 나무에 걸려 펄럭이고 있는 검은 플래카드까지도 비장했다. 우리는 반드시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모 돌판을 야무지게 밟았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비가 길게 이어져 있는 ‘시가 있는 길’에서 회원 몇몇이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고 교수님의 시비 해설을 들었다. 여기저기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가 몰랐던 기억들이 너무나 많았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광주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가 기억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이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 획일화된 기록만으로는 ‘5월의 광주’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잘 정리된 역사적 기록이 아닌 파편화되고 해체된 모습이 ‘5월의 광주’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고 했고, 5월의 광주의 진실에 이르고자 하는 각기 다른 얼굴들과 이야기를 꼭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오래 남았다.



이 날의 여행은 소설 속 소년의 혼이 지나간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본 듯한 시간 여행 같았다. ‘광주 가는 길’에 담긴 무게감은 있었지만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한 시간은 특별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접하면 광주로의 여행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그곳에서 낭독했던 구절들이 기억나면서 아련해진다. 사람과 책, 여행이 어우러진 깊은 시간이었기에 2월에 만난 ‘5월의 광주’ 여행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독서 모임 10년 차. 우리는 다시 새로운 책 여행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 찾을 장소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다른 장소, 바로 ‘제주도’다. 현기영 작가의 신작 『제주도우다』와 함께 제주 4.3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을 함께 찾아 읽고 그 현장을 방문해 보려 한다. 10년의 세월을 함께한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떠날 책 여행 2탄은 어떤 특별한 기억을 우리에게 안겨다 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