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

저자소개

전현주
독서동아리 ‘시소’ 회원


전현주

소속 동아리 시소

여행 지역 몽골 고비사막

여행지 한 줄 추천 책을 읽는 것은 삶을 미리 겪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됨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 그랬듯 그들의 인생에도 시간의 폭풍이 불어닥쳤고, 그렇게 그들은 겹겹이 쌓인 깊은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중


바얀자그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소설을 읽다가 ‘시간의 지층’이라는 말에 발이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다. 읽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중에 말 대신 울음들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바꾸는 것처럼, 미래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이 현재의 삶을 다르게 인식하도록 해준다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현재를 살라는 단순한 말처럼 들리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소설 속 이야기들은 기필코 설득해 내고야 만다.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하나인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와 함께 보낸 과거 시간에 매여있던 주인공이 방송 촬영 차 몽골 고비사막의 바얀자그에 가게 되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이다.


책 모임을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최근 혹은 수년 전 겪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떠올렸고, 삶이 이토록 허무한 것임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고자 했다. 그 이유를 아는 데서 힘을 얻고자 했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처럼 우리도 거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막 연한 생각들이 모여 몽골행 비행기표를 끊게 했다.



고비사막은 자유 여행이라 하더라도 기사와 가이드가 포함된 푸르공 차를 예약해서 떠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중교통이 없고, 대부분 비포장 길에, 없는 길도 만들며 나아가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비사막 5박 6일 일정으로 푸르공을 예약 했다. 푸르공에는 기사와 가이드 두 사람을 제외하고 6명까지 탈 수 있다. 우리는 4명이 이 여행에 함께 했다.


저녁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해서 자고, 다음날부터 6일간 '차강소브라가-욜링암-홍고린엘스-바얀자그-바가가즈링촐로-울란바토르 복귀' 순으로 발음도 낯선 지명 속 여행을 시작했다. 숙소는 울란바토르 2박을 제외하고 모두 현지인 게르 또는 여행자 게르였다. 하루에 최소 4시간~8시간까지 털털거리는 푸르공으로 비포장길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다. 별이 쏟아질 듯 많이 뜰 거라는 것과 매일 밤 은하수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가 긴 이동을 견디게 해주었다.



첫날 차강소브라가까지 8시간을 달리는 동안 사방에 펼쳐진 지평선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 황야를 보았다. 끝일 거라고 달려간 곳은 다시 시작점의 풍경으로 나타났다. 걷거나 달리는 것을 삶에 대한 비유로 본다면 각자가 사는 공간에 어떤 길들이 펼쳐지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삶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는 치열함의 이미지와 달리, 몽골 사람들은 어쩌면 좀 더 멀리 눈을 두고 죽음까지 꾸준한 걸음을 계속하는 것을 삶으로 여기지 않을까. 오래전에는 바다였던 곳이 융기, 침식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차강소브라가의 절벽 사이 길을 내려가 석양으로 물든 바다 밑바닥을 거닐자니, 2023년의 시간은 지워지고 고생대의 어느 시간을 사람이 아닌 무엇으로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첫 게르 위로 밤하늘은 은하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별들로 너무나 소란하여 다들 잠을 설쳤다.


다음날 욜링암으로 가는 길에 고비사막에서 가장 큰 도시 달란자드가드에 들렀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달란자드가드공항을 통해 바얀자그로 향한다. 우리는 짐비라는 전통음식을 점심으로 먹고, 이곳 사막 도시에서 가장 커피 맛이 좋다는 스트릿 카페로 가서 펑크난 푸르공의 바퀴가 수리되기를 기다렸다. 사막 여행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카페 직원이 한국말을 잘해서, 우리 여행에 달란자드가드가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를 설명해 주고 일행 한 명이 가지고 있던 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전해주었다. 그는 지금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을 다 읽었을까. 자기 동네의 아름다움을 먼 나라 작가의 눈으로 새삼 다시 보고 있을까. 욜링암은 고도가 제법 높은 곳의 협곡으로 겨울 내내 얼었던 얼음이 여름에도 녹지 않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시간이 더디 흐른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주 어린 시절 보고 그만이었던, 일곱 빛깔 선명한 무지개가 땅끝과 땅끝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우리가 예전에 잃어버린 것들이 한가득 모여 있다.


홍고린엘스는 모래 언덕이 있는 고비사막의 중심부다. 수행자처럼 터벅터벅, 속도를 내지 않고 걷는 낙타의 등에 올라 사막 언덕 입구까지 걸어간다. 굽은 팔과 약간 저는 다리로 고삐를 잡고 걷는 낙타 주인도 수행자 같다. ‘노래하는 모래’라는 이름처럼 바람이 모래알들을 한 겹씩 일으켜 소리를 낸다. 석양이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무수한 전생 중 한 번은 필시 이곳의 모래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삶에 부여한 과도한 무게를 털어버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지향하며 몽골 여행에서 돌아가게 될 것만 같다. Nobody로.



드디어 바얀자그로 가는 아침. 우리 넷은 준비해 온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등쪽에 책 표지 그림을 인쇄해서 제작했다. 바얀자그 부근 게르로 이동해서 낮 시간을 보내고 바얀자그가 말 그대로 ‘불타는 절벽’이 되는 저녁 무렵을 기다렸다. 한낮의 고비사막 햇빛은 따갑게 내리쏘지만, 나무로 된 2x2미터 정자 그늘이 온전한 피신처가 되어 주었다. 그늘을 따라 돗자리를 옮겨 다니며 누워 소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을 돌아가며 서로에게 읽어주었다. 바얀자그를 잘 만나기 위한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듯이. 울란바토르, 달란자드가드, 고비 같은 소설 속 지명들이 목소리를 얻자 온몸 속을, 혈관 속을 살아 돌아다닌다. “그들은 겹겹이 쌓인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는 구절에 이르러 결국 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엉엉 소리 내어 울려고 이곳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은 길고도 넓다. 우리 역시 시간의 지층 속으로 한 걸음씩 내려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몸으로 통과한다. 소설 속 장소에 와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사람일 뿐 아니라, 소설을 겪는 사람이 되었다.


바얀자그에서 지평선으로 저무는 해가 한 때 공룡이 살았던 이곳의 붉은 절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찍은 사진 속에서 사람은 한결같이 거대한 시공간 속 점이거나 막대로 들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몽골로. 이렇게 묻고 답해 본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2019년에 50의 나이로 돌아간 친구 은옥, 나를 키우다 말고 1983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모두 이곳 몽골로 와 있는 게 아닐까. 이 초원의 풀꽃으로, 홍고린엘스의 모래로, 바얀자그의 지층 속으로.


사막의 바람을 마주 보고 입을 오므리면 아버지가 예전에 불던 것과 같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나고, 고비사막 한중간에 핀 작고 노란 꽃들은 은옥이 비로 와서 키우고 간 것 같이 따스하다. 가서 남은 만큼을 잘 살다가 몽골의 어떤 것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만나러 오고 싶어졌다.


‘카타무 호갸’


소설 속 정미의 주문을 따라 외면서 우리는 조금 낙관주의자가 되어 몽골을 떠나왔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