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인내천 사상이 구현된 진주농민항쟁 유적지를 찾다

저자소개

박종현
독서동아리 ‘시아리’ 회원


박종현

소속 동아리 시아리(시가 아름다운 이유)

여행 지역 경남 진주시, 하동군

여행지 한 줄 추천 민중시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의미 캐기와 진주농민항쟁 희생자 추모


‘시아리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시 읽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는 50대, 60대가 중심이 되어 2018년 9월부터 운영 중인 순수 독서동아리다. 주경야독하는 직장인과 주부로 구성된 동아리 회원들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독서토론회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짬짬이 시간을 내 시를 읽고 쓰면서 정서적 깊이와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시아리’란 이름으로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모임에서 정동주 선생의 시집 『논개』를 읽고 독서토론을 할 때, 서 모 시인이 정동주 선생의 소설 『백정』을 언급하면서 소설에 나오는 민중시민요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회원 다수가 그 시의 탄생 배경을 알아보고 진주농민항쟁 유적지를 답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독서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최초의 민중시를 찾아서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진주 지역 농민들이 농민항쟁을 결의한 장소인 내평마을 이명윤 재각-대평면 당촌마을 류계춘 선생 묘소-수곡면 창촌마을 진주농민항쟁기념탑-하동 옥종 동학혁명군 위령탑-하동편백자연휴양림을 탐방하면서 거룩한 일을 하다 희생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그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아리 회원 11명이 승용차 3대에 나누어 타고 독서 여행을 떠났다.


진주농민항쟁은 조선 말, 조세 제도가 문란해지고 수령과 아전의 비리와 토호의 수탈이 심해지자 류계춘 선생을 필두로 진주지역 농민들이 뜻을 모아 일으킨 항쟁이다. 첫 모임 장소가 진주시 내동면 내평마을 이명윤 재각인데, 지금은 진양호에 잠겨 마을 위쪽에 재각만 남아있었다. 농민들이 항쟁을 결의한 장소인 재각을 답사한 뒤 농민항쟁 지도자였던 류계춘 선생 묘소가 있는 대평면 당촌마을로 향했다.


마을 뒤에 있는 류계춘 선생의 묘소는 덤불로 무성했다. ‘시아리’ 회원들은 우선 큰 풀만 제거한 뒤 묵념부터 올렸다.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께는 묵념을 올렸지만 농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추모하는 일은 드물었는데, 마침 현충일을 맞아 참배하게 되어 그동안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무덤 옆 빗돌에는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진주 망건 또 망건

짝발이 휘양건 도래매 줌치 장도칼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월에 무서리 동지섣달 대서리


   -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회원 중 제일 연장자인 정 모 시인께서 시 낭송과 함께 빗돌 뒷면에 써 놓은 시에 얽힌 이야기를 읽자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철없던 시절, 뜻도 모른 채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불렀던 노래, 이 시가 생겨난 유래와 노래 속에 담긴 의미를 안 뒤부터 차마 이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란 양반의 갓을 걸어두는 역할밖에 안 되는 농민의 처지를 한탄한 것이고, ‘진주 망건 또 망건’은 뇌물을 주고 벼슬을 산 가짜 양반들까지 농민을 수탈해가는 정도가 극심함을 의미하며, ‘짝발이 휘양건’은 짝 벌어진 휘양건처럼 양반과 지방 관리들이 부정 축재를 위해 폭정을 일삼았고, ‘도래매 줌치 장도칼’은 양반과 관리들이 돈과 식량을 모으기 위해 악랄하게 농민을 수탈했음을 뜻하며, ‘머구밭에 덕서리’란 백성들을 의미하는 머구밭에 서리가 내렸으니 이는 아전들이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행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칠팔월에 무서리’와 ‘동지섣달 대서리’는 삼정 제도의 폐해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하도 심해 백성들의 삶이 매우 궁핍해져 있는 상황을 말함과 함께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이 담긴 시”라고 빗돌에 새겨져 있다. 회원들은 당시의 시대상과 농민들의 고통, 그 고통을 감싸준 류계춘 선생을 떠올리며 수곡면 창촌마을에 농민항쟁기념탑이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인내천 사상이 깃든 진주농민항쟁기념탑과 동학혁명군위령탑


진주농민항쟁기념탑을 가운데 두고 희생된 농민들의 이름을 새긴 작은 빗돌이 울타리 말뚝처럼 빙 둘러 세워져 있는데, 어떤 빗돌은 새겨진 이름이 훼손되어 있었다. 참되고 정의로운 행동을 한 조상을 일부 후손들이 부끄럽게 생각해 훼손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웠다. 진주농민항쟁이 도화선이 되어 32년 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농민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만든 행동이었으니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사람이 곧 하늘이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처음으로 부르짖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살았던 진주에 우리가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동학혁명군 위령탑의 횃불이 기념탑 옆으로 흐르는 덕천강 건너편 하동 옥종 고성산 이마에 우뚝 솟은 채 시아리 회원들을 부르고 있었다. 동학혁명 때 서부 경남 농민들이 일본군에 저항하다 농민군 186명이 전사한 고성산성,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 앞에서 한참 동안 묵념을 올린 뒤 동학 농민군의 참담한 희생을 이야기하며 내려왔다. 회원들은 옥종 한식뷔페인 정티움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10분 거리에 있는 하동편백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하동 출신 독림가 김용지 선생께서 무상 기부 채납한 편백나무숲을 하동군에서 휴양림으로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힐링 공간으로 찾고 있는 하동편백자연휴양림에서는 수령 50년이 넘은 편백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상상의 길, 마음소리길, 힐링길 총 5.9km의 편백숲길을 1시간 30분 동안 걸은 뒤, 숲속 팔각정에 앉아 숲멍을 때리면서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준비한 유인물에 실린 시를 낭송하는 시간도 가졌다. 11명 회원 모두 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특별히 시 낭송가로 활동하는 하 모 시인의 낭송에는 회원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배경음악 대신 숲속에서 우는 꾀꼬리, 직박구리, 박새가 낭송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회원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알차고 의미 있는 현장 체험인 독서여행


진주농민항쟁 유적지인 이명윤 재각과 류계춘 선생 묘소 및 농민항쟁기념탑, 서부경남 동학군들이 희생된 하동 고성산성에 조성된 동학농민군위령탑,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시아리’ 회원 11명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모두가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이번 독서 여행은 실내에서 진행되는 독서토론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 못지않게 알차고 의미 있는 현장 체험이자 힐링의 시간이었다. 독서 여행 평가회에서 모두가 흡족하다는 말을 남겼으며, 독서회 대표인 오 모 시인은 앞으로 독서 여행을 통해 회원들이 지식과 교양을 쌓음과 동시에, 독서한 내용을 내면화하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돌아오는 차창 너머로 저녁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