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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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윤정
소속 동아리 북돋움
여행 지역 경남 하동군 박경리문학관, 토지마을
여행지 한 줄 추천 박경리 선생님의 발자취와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음
여행의 설렘은 계획을 세우고 상상하면서부터 아닐까? 2021년 시작부터 우리 북돋음은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매월 한 권씩 읽고 토론을 나눴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 소설 속 다양한 인물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고, 그들의 발자취를 좀 더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 하동 토지 문학 기행을 꿈꿔왔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지만, 다행히 우리가 여행을 기획하던 때는 10인 이상의 모임이 허락된 상태였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 주부들이라 2박 3일 동안 하동이라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행 일정은 나왔지만 10명의 구성원 중 5명만 참가가 확정됐다. 그런데 여행 계획을 브리핑하던 중, 한 회원의 ‘평사리 토지 장터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은 필수’라는 도발에 설득당해 결국 출발일 직전, 망설이던 3명이 극적으로 합류해 총 8명이 하동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일명 아줌마 부대의 용감함을 대동하고 가족 없이 떠나는 홀가분함에 ‘토지 문학 기행’이라는 모토는 잠시 뒤로한 채 우리는 이미 극한의 흥분 상태였다. 장장 5시간의 거리를 한시도 쉴 틈 없이 떠들며 하동의 평사리 들판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 여행의 원칙은 ‘이제 가면 언제 또 가나,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가자!’였기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3봉지, 맥반석 오징어 3마리, 소떡소떡 각 1꼬치씩, 각종 음료수까지 푸짐한 간식을 먹은 것은 물론, 하동 청뫼향식당에서 산채비빔밥, 도토리 무침까지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며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하동 근처에 있는 청학동 삼성궁도 둘러보았다. 청학동 삼성궁은 환인, 환웅, 단군 을 모시는 성전이라는 점도 생소했지만, 돌로 정성껏 쌓은 건축물과 호수 색깔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더욱이 삼성궁은 천지인의 상징인 ○△□을 곳곳에 새겨 놓았는데, 그 당시 한창 인기였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상징과 교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원방각 상징이 나올 때마다 ‘깐부손가락을 걸어 편을 함께하는 팀이나 짝꿍’를 외쳤고, 그렇게 우리는 정말 깐부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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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하동으로 떠나는 『토지』 문학 기행도 큰 기대였지만, 숙소에서의 이벤트도 마음 설레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저 술만 마시고 수다만 떠는 기행이 아니라 『토지』라는 책이 인생에 생생하게 남도록 세밀한 기획을 한 것이다. 첫날밤의 이벤트는 바로 ‘토지 오락관’이었다. ‘가족 오락관’ 게임 중 유명한 게임을 『토지』에 응용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게임 준비와 진행은 레크리에이션과 웃음치료사 자격증이 있는 내가 맡았다. 『토지』에 나오는 단어를 설명해서 맞추는 ‘스피드 퀴즈’, 역시 『토지』에 나왔던 사자성어를 동시에 말해서 상대방이 맞추는 ‘이구동성’, 등장인물을 온몸으로 표현해서 맞추는 ‘온몸으로 말해요’, “청백리 똥구멍은 소꼿부리 같다”와 같이 해학이 넘치는 말의 ‘뜻 알아맞히기’ 등 다양한 게임을 자정이 넘도록 진행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승부욕이라고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고, 모두 깍두기를 자처할 정도로 의지가 없어보이던 우리들이 게임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승부욕으로 ‘정답!’을 외치느라 목이 쉴 정도의 적극성을 보인 것이다. 코로나19로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순수한 문학소녀로 변해가고 있었다.
둘째 날이 밝았다. 사실상 둘째 날 모든 투어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일정이 빠듯했다. 하지만 오늘 답사 일정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토지 마을이었다. 평사리의 들판에서 서희가 되어보고, 길상이와 용이, 월선이, 봉선이, 임이네를 만나기 위해 우리들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물론 하동의 재첩국 정식도 빼놓지 않고 한 그릇 뚝딱하고, ‘매암 제다원’ 차茶밭에서 각자 인생 사진도 하나씩 남겼다. 드디어 평사리 마을과 최참판댁에 도착했다. 늘 책에서 보던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이렇게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니... 이곳에서 월선과 용이가 만나서 사랑했겠구나. 용이네, 임이네, 영팔네가 이렇게 가깝게 살았구나. 책에 줄곧 나왔던 최참판댁 별당 앞 연못을 보면서는 ‘서희가 이 연못을 바라보며 조준구에게 복수를 꿈꾸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책에서의 많은 장소가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일반 관광객들에게 이곳은 그냥 하동의 가 볼 만한 관광지이겠지만 우리에게 평사리 마을과 최참판댁은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칠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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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박경리문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우리 모두를 한순간 잠재우고 멈춰 서게 한 곳이 있다. 바로 박경리문학관의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라는 글귀와 박경리 선생님의 생전 영상이었다. 우리가 방금 보고 온 곳이 허구의 세계였다면 진정한 실재의 세계는 바로 박경리라는 사람이었다. “난 특별히 문학을 내 인생과 갈라놓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문학이고 지금 문학이 내 인생입니다.” 『토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것이다. 김훈 작가는 한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면 치아도 머리도 빠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25년의 집필 기간 방대한 세월의 삶을 써내려 가면서 박경리 선생님은 분명 그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으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토지』는 소설이 아니라 박경리 선생님의 삶 그 자체였다. 우리는 반백의 머리와 굵은 인생의 주름이 가득한 선생님의 영상 앞에서 한참 눈시울을 붉히고 나서야 돌아설 수 있었다. 그 여운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이후 일정은 모두 접고 토지 장터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는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주변 인물이었던, 하지만 평사리에 없어서는 안 될 봉기네, 야무네, 영팔이네, 이평이네가 되어 그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채워갔다. 아마도 그때 그곳에 박경리 선생님도 함께하셨으리라.
둘째 밤의 하이라이트는 일명 ‘토지 연극제’였다. 북돋음 회원 중에 현재 왕성히 활동 중인 드라마 작가가 한 분 계신데, 뜻밖에도 『토지』의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해 직접 연기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사실 처음 연기를 제안받았을 때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과 함께 창피함이 엄습했다. 하지만 작가님이 손수 준비한 다양한 소품과 어마어마한 경품을 보는 순간, 어젯밤의 열정이 다시 솟아났다. 리얼한 연극을 위한 소품 쟁탈전 또한 그러했으며 과감한 분장 또한 서슴지 않았다. 한 팀은 봉순이와 길상이가 티격태격 말싸움하는 장면을, 또 한 팀은 월선이가 죽고 임이네가 그녀의 재산을 탐내는 장면을 선정하여 대사 연습부터 발표까지 착착 진행되었다. 처음 해 본 연기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대하드라마가 아닌 시트콤 형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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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그때 찍어 둔 영상을 보다가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열심히 국어책을 읽고 있는 우리 모습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었다. 나는 연기를 하면서 계속 더듬어서 ‘버퍼링 상’을 받았고, 광주와 대구가 고향인 회원들은 ‘본토 사투리 상 ’을 받는 등 모두에게 상이 돌아갔다. 대망의 ‘대상 ’은 상투까지 틀고 길상의 역할을 멋들어지게 한 회원이 가져갔다. 숨겨진 대상 상품으로 작가님이 준비한 호텔 슬리퍼와 가운,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데코로 쓰였던 바가지 모양의 모형이 등장했다. 바가지 모양 왕관에 호텔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일명 퍼레이드를 하며 함께 깔깔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개 장터와 쌍계사 투어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2박 3일 일정은 끝이 났다. 이 여행의 기를 이어받아 작년에는 원주 박경리문화공원 기행도 다녀오고, 12월에 마지막 권까지 모든 토론을 순조롭게 마쳤다. 2년 동안 『토지』와 함께한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토지』 속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변치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과 비비대며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 『토지』”라는 박경리 작가의 말처럼.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